미 신용등급 12년만에 전격 강등…금융시장 ‘충격’ 우려

AAA→AA+ 강등…세계 최대 채무국 美 '돈풀기' 후폭풍
피치 “20년간 재정악화·채무부담 확대…3년 더 지속"
전문가들 “급작스런 결정…美경제 강해 이해 어려워”
글로벌 금융시장 충격 우려…S&P·무디스 행보 ‘촉각’
  • 등록 2023-08-02 오전 8:59:45

    수정 2023-08-02 오전 9:16:18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방성훈 기자] 3대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전격 하향 조정했다. 피치는 지난 20년 동안 부채한도 협상의 반복적인 교착 등으로 정부 재정에 꾸준히 문제가 발생하고 국가채무 부담이 커진 것을 강등 이유로 제시했다. 세계 최대 채무국으로 미국의 ‘돈풀기’ 문제가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12년 만에 처음으로 신용등급 강등이 ‘실제로’ 이뤄진 것이어서 금융시장 충격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FP 제공)


AAA→AA+ 강등…“3년간 재정악화·채무부담 커질것”

1일(현지시간) CNBC 등에 따르면 피치는 이날 뉴욕증시 마감 이후 보도자료를 내고 “향후 3년간 미국 재정이 악화하고 국가채무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미국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했다. 피치는 다만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은 기존 ‘부정적 관찰 대상’에서 ‘안정적’으로 바꿨다.

피치는 “미국 정치권이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대치하고 이를 마지막 순간에 해결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며 “재정 운영에 대한 신뢰도를 손상 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결정은 최근의 부채한도 교착 때문만이 아닌, 재정 및 부채 문제와 관련해 지난 20년 동안 ‘거버넌스 기준의 꾸준한 악화’에 의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무분별한 돈 풀기 이후 한도에 다다르면 다시 상향하는 과정을 오랜 기간 거치면서 재정 상황이 지속 악화했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은 세계 최대 채무국이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31조달러를, 올해는 32조달러를 넘어섰다. 피터슨파운데이션에 따르면 이날 현재 32조 6086억달러로 미 국민 1인당 9만 7537달러의 빚 부담을 지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미국 다음으로 부채가 많은 중국(14조달러), 일본(10조 2000억달러), 프랑스(3조 1000억달러), 이탈리아(2조 9000억달러)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118.6%에 달한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추산한 올해 1분기 전 세계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95.5%)을 상회한다.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이자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미 의회예산국(CBO)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2053년까지 지속적인 재정 적자 및 금리 상승으로 GDP 대비 이자 비용이 3배로 불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 “급작스런 결정…美경제 강해 이해 어려워”

미국의 재정 및 부채에 대해선 그동안 꾸준히 문제가 제기돼 왔다. 앞서 피치도 지난 5월 연방정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과 관련해 등급 하향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당시엔 경고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지만 돌연 실행에 옮긴 것이어서, 신용등급 강등 시점과 관련해 의문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뒷북 대응’이란 비판도 나온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GDP 대비 부채비율 급증 △거버넌스 약화 △거시경제 악화 등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 조건 세 가지를 열거하며 “미국은 분명히 AAA에 속해 있다. 부채비율 급증은 올 상반기 없었고, 부채한도 협상도 전체 거버넌스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거시적으로도) 올해 미 경제는 지난해보다 나아졌다. 지금 현 시점에 (신용등급을) 하향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피치의 결정에 강력히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 피치의 신용등급 변경(강등)은 임의적이며 오래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고 꼬집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도 트위터에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더 강해 보이기 때문에 피치의 결정은 이상하고 부적절하다”고 썼다.

글로벌 금융시장 충격 우려…S&P·무디스 행보 ‘촉각’

문제는 신용등급 강등이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피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와 함께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 꼽힌다. 3대 신용평가사가 미국 신용등급을 낮춘 것은 2011년 8월 이후 12년 만이다. 당시 S&P가 사상 처음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고, 그 직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채권 금리가 급등했다.

이번에도 상승 랠리 펼치고 있는 뉴욕증시에 돌발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선 충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당장 미국 뉴욕 증시에서 3대 지수 선물은 모두 하락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유럽, 아시아도 변동성이 급격히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CNN방송은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부터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각종) 계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잠재적인 반향과 함께,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서의 국가 이미지가 타격을 입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S&P, 무디스가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을 따라갈 것인지에도 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미 정부 관계자는 CNN에 S&P와 무디스의 하향조정 가능성엔 말을 아끼면서 “피치는 미국을 유일하게 부정적으로 보는 회사”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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