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읽기)역사에 남을 코미디 `2008 미네르바 현상`

  • 등록 2009-10-12 오전 11:30:00

    수정 2009-10-12 오전 11:30:00

[이데일리 최용식 칼럼니스트]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당신은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공연히 미움을 받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연설 솜씨가 뛰어난 몇몇 사람들이 그는 진짜 나쁜 놈이라고 떠들었고, 그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고 외쳤다. 군중들이 가세하여 그를 때렸고, 그 사람은 중상을 입었다. 군중을 선동했던 사람 중 하나가 범인으로 체포됐고 재판이 열렸다. 그는 `내가 진짜 범인이며 단독범`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변호사도 똑같이 주장했다.
 
이게 과연 일어날 법한 일일까? 감옥에 가서 죄수들에게 물어 보라. 억울하지 않는 사람이 혹시 있냐고. 그러면 대부분의 죄수는 무죄라거나 종범에 불과하다고 답할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범죄 심리이다. 또한 범죄자의 변호사는 어떻게든 그의 죄를 가볍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벌어질 법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은 가상의 소설이 아니다.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지난해의 `9월 외환위기설` 및 올해의 `3월 금융위기설`과 관련한 어떤 재판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바로 `미네르바 사건`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왜 벌어졌겠는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세상물정에 밝은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 제기에 당혹했을 수도 있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모두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으로 믿었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미네르바의 예측은 예측이 아니었다. 특히,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리고 어떤 저명인사는 TV방송 토론에서 `경제전문가들이 어떻게 미네르바보다 더 못하냐?`고 힐난했지만, 그것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베어스턴스가 도산위기에 처했던 3월부터 미국 언론은 `다음 차례는 리먼브러더스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고, 그것은 국내에도 즉시 전달됐다. 더욱이 6월경에는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기 위해 실사를 벌이고 있었다(실사 결과 부실이 너무 커서 인수를 포기했다). 이것을 어떻게 예측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그가 환율 폭등을 예측했고 그것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고 해서 그에게 더욱 열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어떤 사람이 `저 극장에서 대형 사고가 터질 것`이라고 예측한 뒤에, 영화가 상영 중인 그 극장 안에 들어가 `불이야!`를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다가 부상당하고 몇 사람은 죽기도 했다. 그럼 그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해야 할까? 2008년 9월 이후의 환율 폭등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 세계적으로 저명한 해외 언론들도 우리나라가 심각한 외환위기에 휩싸인 것처럼 보도했다. 국내의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그 권위 앞에서 눈을 내리깔아야 했으니, 외환위기설이 진짜로 믿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저명한 의사가 `당신 체온이 36.5도로서 너무 높으므로 생명이 위독하다`고 진단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사람의 평균적인 체온에 불과한데 어떻게 생명이 위독할 수 있겠는가? 당시 우리나라 외환사정도 다른 나라들의 평균적인 수준과 비교하여 위험성을 판단해야 했다. 단기외채나 가용 외환보유고가 문제라면 타국의 사정을 먼저 살펴야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각한 나라들이 많았다. 그리스의 국제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3.3%, 스페인 9.8%, 남아공 7.6%, 호주는 5.0% 등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0.7%에 불과했다. 그런데 해외 언론은 유독 우리나라의 외환위기설만 반복 보도했다. 그 이유는 당시에 외국계의 몇몇 금융회사들이 국내에서 무려 350억 달러 이상 챙겨갔다는 사실을 참고해 스스로 판단해볼 일이다. 그거야 어떻던, 외환위기설의 여파로 우리 환율은 외환보유고가 고갈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 즉 폴란드와 헝가리와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의 통화에 대해서조차 30~40%나 더 높아졌다. 이게 과연 상식적인 일일까?

올해 `3월 위기설`은 더욱 가관이었다. 미네르바는 `노란 토기(엔화 자금)`가 우리 외환시장을 공격해 초토화시킬 것이며, 환율은 2000원에 이르고, 주식지수와 부동산 가격은 반 토막이 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엔화 자금이 우리 외환시장을 공격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나라에 투자됐던 엔화 자금은 이미 엄청난 환차손을 입고 있었다. 엔화 환율(100엔 기준)은 2007년 말 829원에서 2008년 11월 말에는 1552원으로 폭등했었다. 만약 2007년 말에 100억엔을 우리나라에 투자했다면, 2008년 11월 말에는 겨우 53억엔을 찾아갈 수 있었을 뿐이었다. 환율이 더 오르면 그 환차손을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란 토끼`가 우리 금융시장을 공격한다? 그 결과로 더 엄청난 손실이 감당할 일을 스스로 저지른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3월 위기설은 실현되지 않았다. 환율이 3월 초에 한 때 1597원까지 치솟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너무 참혹했다.

환율이 폭등해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피해가 수조 원에 이르렀다. 또한 미네르바의 예측을 믿고 환율이 폭등한 때에 달러를 사들인 사람들은 환율이 줄기차게 떨어지는 바람에 엄청난 손해를 봐야 했다. 국가적인 피해는 더욱 컸다. 전전주에 연재한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환율 폭등은 국내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을 불렀고, 그 바람에 국내경기가 급강하해 2008년 4분기의 전기비 성장률은 -18.8%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환율 폭등은 우리 외채에 엄청난 환차손을 입혔다. 연평균 환율이 929원으로 근래에 가장 낮았던 2007년에는 외채가 1231억달러 증가했다. 우리 돈으로 114조원을 한 해에 빌려온 셈이었다. 2008년 3분기까지도 외채는 계속 증가해 4255억달러를 기록했다. 2009년 3분기까지 평균 환율은 약 1012원이었는데 그 사이에 432억달러가 증가함으로써 우리 돈으로 44조원을 빌려온 셈이었다. 이렇게 빌려온 돈을 2008년 말 환율인 약 1258원에 갚아야 했다면 얼마나 환차손을 입었을까? 158조원을 빌려서 209조원을 갚아야 했으므로 이자를 제외하고도 무려 51조 의 손해를 봐야 했다. 이 금액은 2007년과 2008년에 들여온 외채만 계산한 것이므로, 그 이전에 들여온 외채를 모두 합하면 환차곤의 규모는 더 크게 늘어날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미네르바 문제를 이제 와서 굳이 거론하는 것은 그 여파가 최근의 주식시장에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주가지수는 올해 들어 줄기차게 상승했다. 3월 말까지는 1100 수준에 머물렀었는데, 4월 말에는 1300선을 넘어섰고, 7월에는 1500을, 8월에는 1600을, 9월에는 1700을 넘어섰다. 그럼 그 혜택은 누가 봤을까? 불행하게 가장 큰 이익을 남긴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그들은 주가지수가 본격적으로 상승을 시작한 4월부터 8월 말까지 우리 주식을 무려 20조원이나 순매수했고, 9월에도 5조원 이상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우리 주식을 값이 오르기 전 상대적으로 싼값에 사들였고, 내국인은 그만큼 헐값에 팔았다. 이런 일은 올해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계속해 일어난 일이다. 왜 이런 불행한 일이 반복해 일어날까?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용식(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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