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정책 일관성 필수, 中과 윈-윈할 협력·교류 늘려야”

[중국 첨단기술 역습(下)] 우리 대응 방안·협력 과제는
“中 과학기술 정책 기조 오랫동안 유지, 실패도 용인”
“미·중 갈등 한국에 기회 될 수도, 기술 경쟁력 필요”
“中 천인계획, 日 사쿠라사이언스처럼 인재 양성 시급”
  • 등록 2024-06-27 오전 7:56:55

    수정 2024-06-27 오전 7:56:55

지난 8일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열린 ‘이데일리 중국 첨단기술 진단’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베이징=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26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5월까지 대미 수출액은 533억달러로 대중 수출액(526억9000만달러)를 앞질렀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이 아닌 미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중국 수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가격이 수출액에 영향을 미치지만 근본적으로는 중국의 기술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한국 의존도가 낮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술 경쟁력을 키운 중국이 내수뿐 아니라 해외 진출을 확대하면서 한국과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이데일리는 중국 현지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좌담회를 열고 중국 첨단 기술 발전에 대한 대응과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좌담회에는 △김기환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양자기술 부문) △김정식 베이징항공항천대 중국-프랑스 공학부 교수(수소 부문) △김종명 상하이과기대 화학과 교수(이차전지 부문·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장) △서행아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 △이우근 칭화대 집적회로학과 교수(반도체 부문) △정용삼 난징농업대 수의대 교수(첨단바이오 부문) 6명(이상 이름 가나다순)이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연구개발(R&D) 예산이나 보조금 등에서 일관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적 영향이 덜한 분야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중이 공동 이익을 이룰 수 있는 분야에서는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양국이 신기술 분야에서 성과를 내면 향후 국제 표준을 세울 때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술 발전에는 인재 양성도 필수다. 중국의 고급 인재 유치 정책인 ‘천인계획’이나 지일파(知日派)를 키울 수 있는 일본의 ‘사쿠라사이언스’ 같은 인적 교류·육성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정식 북경항공항천대 중국-프랑스 공학부 교수
-중국의 첨단 기술이 발전하면 결국 세계 무대에서 한국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어느 정도 되는 것인가


△김정식=수소에너지와 연료전지 등을 포함해서 수소 분야의 경우 중국은 내수 시장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면 자동으로 세계 일류가 될 것이라는 게 주류 의견이다. 워낙 생산을 많이 하고 소비도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시작부터 수출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데 수소에너지 특성상 어디에서 수소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기술이나 가격이 많이 달라진다. 수소라는 최종 제품을 만들기 위해 돈이 들어가는 과정부터 시작이 서로 다르다. 또 한국은 현재 소수 대기업만 수소에너지 개발을 하고 있어서 정부가 지원할 경우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표준화인데 최근 유럽연합(EU)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에서 목소리를 내려고 하고 있다. 국제 기준은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담당하는데 현재 한국 교수가 수소에너지 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어 입지를 많이 다진 상태다.

△김기환=양자 기술은 기초과학 분야여서 산업과 큰 연관은 없다. 다만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투자에 굉장히 신중한 반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사람도 많고 자원도 많다. 많은 중국 학자들이 연구만 잘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투자도 활발한 편이다. 양자 기술 분야에서 격차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학계에 중요한 가치의 논문을 얼마나 많이 내느냐인데 중국은 대규모로 내는 편이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시작하는 단계다. 실제 학계에서도 중국권이 점점 주목을 받고 있다.

서행아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
-미국 등 서방은 관세 인상, 수출 제한 등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한국 영향은 어떻게 보나


△서행아=미국의 대중 기술 제재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미국의 블랙리스트를 살펴봤는데 중국의 웬만한 기술기업은 거의 다 들어가 있을 정도다. 여기서 중국이 대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에게도 반사이익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중국이 제재받지 않는 분야에서는 우리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좁은 마당, 넓은 장벽’(첨단·전략 부문만 집중 견제) 정책을 펼치는데 사실상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도 기술 경쟁력이 없으면 피해를 입을 것이다.

△정용삼=첨단바이오 부문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미·중 갈등에서) 한국이 얻을 이익이 있는 편이다.

바이오파운드리를 보면 국제협약이나 표준이 없다. 표준은 먼저 공장 지은 사람이 제정을 젱나할 수 있는데 한국이 당장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협업하면 공동으로 제안이 가능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과 함께 해서 서방에 대응이 가능하고 우리는 중국의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김기환=내가 알고 있는 중요한 중국 기관·회사들이 대부분 (미국의) 제재 대상에 들어갔다. 중국도 심리적으로는 굉장히 많이 위축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미국의 제재가) 금방 끝날 것 같진 않다고 한다. 미국이 제재를 새로 하는 것은 그만큼 중국 기술이 미국에게 실질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기한 것은 미국 제재 때문에 사려고 했던 해외 장비를 들여오지 못했는데, 중국 내에서 괜찮은 성능의 장비를 5분의 1 정도 가격에 팔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제재에도 중국은 버텨나갈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 셈이다.

이우근 칭화대 집적회로학과 교수
-중국과의 기술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또 우리가 얻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익은 무엇인가

△이우근=반도체는 한·중간 기술 유출이나 첨예한 부분이 많아 쉽지 않지만 ‘한국식 쌍순환’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글로벌 밸류체인을 서방과 중국으로 나누는 것이다. 중국부터 동남아, 중동, 멀리는 아프리카까지 공급망을 구축하고 표준화해서 시장을 양분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중요한 것은 (한·중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물꼬가 터질 것이다. 다만 미국 대선이 지난 후에나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서행아=한·중 협력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우리가 중국을 잘 모르는 것이다. 막연한 중국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없애려면 정부에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 한·중간 협력이 가능한 기술, 일명 ‘블루존’을 만들어서 민간에게 서방의 제재를 받지 않고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아마 중소기업에게도 이러한 블루존이 필요할 것 같다.

△김정식=한국과 중국 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수소를 제일 많이 만들고 사용하는 나라이고, 또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좋은 파트너십이 구축된 것이다. 한국이 가진 기술 중 특화된 것이 있고 중국이 갖고 있는 수소 기술도 다양하다. 시장을 같이 보고 협력하는데 타이밍이 중요할 것 같다.

△정용삼=중국 정부에서 한국 바이오 기업들을 자주 초대하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중국에 물건 파는 이야기만 한다. 그러면 기술 협력을 원하는 중국측과 제대로 된 협상도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버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모든 기업 CEO들이 중국을 찾을 때 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이는 아무도 중국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시장을 노리자면 기업 개인에게 맡길 수만은 없으니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모델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인적 인프라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용삼 난징농업대 수의대 교수
-우리가 과학기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은 무엇일까

△이우근=중국의 포괄적이고 일관적인 정책에 크게 놀랐다. 한국 반도체는 7~8년 전만 해도 반도체에 대한 정책이 제대로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를 점검한 계기가 몇 년 전 일본의 수출 제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국회 등을 보면 보면 반도체가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실제 정책엔 반영하지 않는다.

대만·일본·미국은 반도체 공장을 세운다고 하면 산업용수 대주고 길을 닦아주고 하는데 우린 대기업들이 엄청난 돈을 내야 하는 게 코미디다. 우리도 중국처럼 공무원들이 과학기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중국은 전문가들이 정책을 세우면 거기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칭화대 총장 서기가 과학기술 원로들을 초청했는데 두시간 넘게 앉아있으면서 단 한번도 의자에 기대지 않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우리 고위 관료들도 그럴 수 있을까.

△김기환=중국은 과학기술에 대해 굉장히 장기간에 걸쳐 일관된 계획을 갖고 계속해서 추진하는 시스템이다. 과학기술은 정권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인데 우리나라는 정권에 따라 변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정권과 상관 없이 합의가 잘 이뤄져서 중장기로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지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김종명=올림픽을 보면 1등만 아니라 2등도 칭찬하라고 하는데 그게 과학기술에도 적용해야 한다. 이차전지를 보면 삼원계(한국의 주류 방식)가 최고라고 하지만 가성비는 인산철(중국의 주류 방식)이 낫다. 중국에서 보면 무수히 많은 음극재와 양극재 연구를 하고 있다. 이 말은 어디에서 무언가 또 (신기술이)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국은 1등을 안해도 상관없다는 기조가 강하다. 그래서 꾸준히 투자를 계속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2등이 뭔지 보고 중요성을 인지하고 피드백을 계속할 통로는 만들어야 한다.

김종명 상해과기대 화학과 교수(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장)
△정용삼=변하지 않는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 정부 지원을 받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백신을 개발 중인데 모든 사람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만류했다. 실제로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 중국에서 문책을 하지 않았다. 결국 세 번째 개발에서 매우 고무적 성과를 냈다. 중국에선 실패하는 이유만 확실하면 된다.

우리도 실패 가능성이 다분히 기술 개발에 다른 사람과 똑같은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 안된다. 최근 한국도 그런 기조가 생겼다는 건 알고 있는데 분야에 따라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김정식=얼마 전 중국에서 우리나라 연료전지 1세대 교수를 만났는데 중국에서 자유롭게 연구하고 있다. ‘학부생 뽑아 2~3년 가르쳤더니 이만큼 성장했다’고 평가하더라. 민간 차원에서 교류가 많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 정보가 있다고 하지만 뻔하다. 직접 서로 다녀가서 보면 협력할 타이밍도 잡힐 것이다.

△서행아=중국을 잘 알기 위해선 중국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중국은 해외 연구자를 찾기 위한 천인계획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가 아시아 학생들이 일본에서 유학하는 프로그램인 ‘사쿠라사이언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많은 지일파를 만든다. 우리도 중국 등 해외에서 한국을 찾는 유학생, 한국에서 해외를 나가는 유학생을 많이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길 바란다.

김기환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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