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등록 하면 대출·세금 규제 무력화..부작용 많은 정책 결국 유턴

  • 등록 2018-09-02 오전 11:00:01

    수정 2018-09-02 오전 11:26:11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6월25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정책 성과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나 “등록 임대주택에 주어지는 세제 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작년 6월 취임 이후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줘서라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것이 낫다고 고집해온 김 장관이 결국 정책 실패를 인정한 꼴이다.

김 장관은 작년 8·2 부동산 대책에서 처음으로 다주택자 임대주택 등록 유도 방침을 밝힌 뒤 당초 예정보다 3개월이나 늦은 12월에야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방안을 발표했다. 세금정책을 수립하는 기획재정부와의 줄다리기가 길어졌던 탓이다. 그 정도로 국토부는 다주택자들의 임대주택 등록을 끌어내기 위해 많은 혜택을 담으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주택임대사업자와 임대주택 등록 실적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부동산 자산가인 다주택자들에게 돌아가는 세금혜택이 과도하다’는 세무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당시 국토부는 민간 임대주택시장의 안정이라는 순기능이 더 크다는 논리로 일관했다.

고집을 꺾지 않던 김 장관이 9개월만에 슬그머니 입장을 바꾼 것은 최근 집값이 다시 무서운 기세로 오르기 때문이다. 임대주택 등록제도가 시장의 매물 공급을 줄인 동시에 다주택자들의 투기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사실 여부를 살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
임대시장 안정 위해 세수 일부 포기했지만..투기억제책 구멍

주택 보유자가 임대주택을 등록할 경우 취득세와 재산세, 임대소득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5가지 세금에 대해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임대소득이 신고되면서 늘어날 수 있는 건강보험료에 대해서도 부담을 줄였다.

임대사업자에게 이처럼 많은 혜택을 준 것은 등록 임대주택은 사실상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가 적용되고 정부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등록 임대주택에 입주한 세입자는 귀책사유가 없는 한 집주인의 임대의무기간 4년 또는 8년 동안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또한 재계약 시 임대료 인상률은 5%를 넘지 못하게 돼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급격한 임대료 인상과 이사 걱정없이 안정적인 거주가 가능한 셈이다.

집주인으로서는 임대료를 시세 변화에 맞춰 올리는 것이 불가능해지지만 여러가지 세제 혜택을 받기 때문에 불리할 것이 전혀 없다. 특히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지난 4월부터 적용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고 내년부터 강화되는 종부세 합산에서도 배제된다. 당장 집을 처분하지 않아도 자금 계획에 문제가 없는 다주택자라면 임대주택 등록이 정부의 고강도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인 셈이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투기억제책의 핵심은 다주택자에게 무거운 세금 부담을 안기는 데 있는데, 등록 임대주택 특혜로 인해 규제가 무력화되는 결과가 빚어졌다”며 “임대주택등록제는 부동산 투기에 꽃길을 깔아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혹평했다.

등록 임대주택 세금 및 건강보험료 감면 혜택(자료: 국토교통부)
주택임대사업자엔 대출 한도 2배..신규 주택 구매 꽃길 깔아줘

임대주택을 등록한 주택 임대사업자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준 것만이 문제라면 세금을 걷는 정부가 감내하면 될 일이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주택 임대사업자에게 내주는 사업자대출이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점을 간파한 다주택자들이 앞다퉈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하고 추가 대출을 받아 신규로 주택을 구매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부동산 규제가 역대 최고 수준임에도 최근 서울 집값 상승률을 사상 최대치로 끌어올린 배경으로 의심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8월 넷째주(8월 27일 기준) 서울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0.45% 올라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2년 5월 이래 가장 큰 상승폭으로 기록됐다.

현장 대출상담사 등에 따르면 임대사업자대출의 경우 LTV(주택담보인정비율)가 80%까지 적용된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서울 전역에서 적용되는 일반 주택담보대출 LTV(40%)의 두배다. 집값의 20%만 있으면 새로 주택을 구입한 뒤 임대주택으로 등록해 여러 세제 혜택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의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정책을 회피할 수 있다. 기존 보유중인 임대주택에서 사업자대출을 일으켜 또다른 주택을 취득하는데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어명소 국토부 대변인은 “우선적으로 서울 등 일부 과열지역에서 다주택자들이 기존 보유주택의 임대주택 등록이 아니라, 투자 목적의 신규주택을 취득하면서 임대주택 등록을 통해 과도한 차입 억제를 위한 대출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시장 과열의 원인이 되고 있는지를 관계부처와 검토 중에 있다”며 “신규주택 구입에 대해 일부 세제 등에 있어 과도한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
“정부 어떻게 믿나”..기재부와 사전 협의 없이 여론떠보기?

부동산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정책 신뢰성과 일관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가 이렇게 일희일비하면 국민들이 정책을 신뢰할 수 없다”며 “다주택자들에게 민간 임대주택 공급자 역할을 해달라고 하면서 자긍심을 줘 놓고 이제 와서 혜택을 줄인다고 하면 앞으로 누가 임대주택 등록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세금 혜택 등을 통해 임대주택 등록을 유도하겠다고 한지 1년도 안돼 혜택이 너무 많다고 하면 정책 신뢰도에 문제가 생긴다”며 “혜택을 줄여 다주택자가 집을 팔길 바라는 걸로 보이는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독일이나 미국의 경우 임대주택을 하게 되면 각종 세제 혜택은 물론, 건축비와 수리비용도 저리로 지원하는 등 우리보다 더 많은 혜택을 준다”며 “정부는 장단기적 효과를 고민해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지금 당장 집값이 오른 데 화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장관이라는 중책자가 관계부처와의 사전 협의도 없이 단순 구상 단계의 방침을 언론에 흘린 것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장관은 기획재정부와 합의된 것이냐는 질문에 “저 혼자 하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기재부 한 관계부서 책임자는 “국토부한테 사전에 전혀 얘기들은 바 없다. 김 장관도 그냥 최근 문제제기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한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명소 대변인은 “김현미 장관의 발언은 최근의 국지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서울 등의 일부 주택시장에서 새로 주택을 구입해 임대주택을 등록하는 다주택자에게 부여되고 있는 혜택의 적절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며 “사적 전월세 주택 세입자도 안심하고 오래 살 수 있는 주거환경 조성을 위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는 지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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