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환의 크레딧스토리)정치와 경제

  • 등록 2009-07-20 오전 9:19:45

    수정 2009-07-20 오전 9:19:45

[이데일리 윤영환 칼럼니스트] 최근 고등학교의 사회 교과를 보면 예전에 한 과목이던 정치경제가 각각 정치와 경제로 분리되어 있다. 과연 정치와 경제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 하긴 한 과목으로 묶여 있을 때도 정치와 경제는 교과의 앞과 뒤였을 뿐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공부한 기억이 없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Paul Robin Krugman) 교수의 근저 "미래를 말하다(원제: The Conscience of a Liberal)"를 읽기 전까지는 이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와 경제를 묶어서 생각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해 왔다. 시장에서 정치를 말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으니까.

그런데 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책의 서두부터 정치 이야기로 일관한다. 경제가 정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경제를 바꾼다는 주장을 입증하는데 적지않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그리고는 불온사상으로 취급되던 복지국가 정책이 대공황 국면에서 어떻게 뉴딜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고 또 70년대 등장한 보수주의 운동이 어떻게 복지국가 정책을 무력화 시켰는지를 담담하게 설명한다.

크루그먼의 주장은 원제에서 보듯이 뚜렷이 진보주의적이다. 상대적으로 복지와 분배가 잘 되어 있을 때 미국 경제는 성장했고, 복지와 분배가 퇴보할 때 침체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결국 `부자들이 대우 받아야 부자나라가 된다`는 보수주의 운동을 극복해야 미국 경제의 미래가 있다는 주장이다.

자기 검열이 습관화되어 있는 새 가슴 크레딧 애널리스트가 굳이 이런 당파적인 주장을 옮겨 적는 것은 위기 이후의 정책 대응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0년대 초반 금융 빅뱅 이후 두 번의 대형 금융위기를 거쳤다. 1990년 전후의 주택대부조합(S&L) 사태와 2001년의 엔론 사태가 그것이다. 두 위기 사이에는 몇 가지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

은행의 디레버리징과 회사채 시장 확대, 성장 동력의 재편, 그리고 이행 과정에서의 긴 고통의 터널(경기 침체와 부도율 및 실업률 급등) 등은 대략 비슷하다. 이번 위기에서도 금융시장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무엇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부상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이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차이점도 적지 않다. 그 중 특히 재미있는 것이 세금이다. 미국의 최고 세율(Top US Marginal Income Tax Rate)은 S&L 때 올랐고(’90, 28% → ’93, 39.6%) 엔론 때 내려갔다(’00, 39.6% → ’03, 35%). 진보 정권과 보수 정권의 위기 대응 방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미국에서는 부자 증세 논쟁이 뜨겁다. 1차 라운드는 의료보험 개혁과 관련한 추가 예산의 확보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의 기본 입장은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서 재정부담 확대없이 복지예산 지출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은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소기업 소유자의 피해를 앞세우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유시장에서 부자에 대한 징벌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도 달랐다. 진보 정권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새로운 시스템을 선호한다. 하지만 보수 정권은 가능하면 기존 시스템을 크게 바꾸지 않으려 한다. 위기 이후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S&L 때는 정보통신기술(IT)이었고, 엔론 때는 주택 산업이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위기는 절묘하게 정권 교체 시기에 걸쳐있다. 위기 관리의 초반은 보수 정권이, 후반은 진보 정권이 담당하고 있다. 막대한 유동성 공급에 치중하던 초반의 위기 대응 방식이 오바마 취임과 `빅3(Big3)` 구조조정을 전환점으로 크게 선회했다.

미국 진보진영의 논객들은 의료보험 개혁을 오바마 정권이 추진하는 개혁 프로그램의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 또 한 사람의 대표적 진보 논객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V자 또는 U자로 대변되는 경기회복 논쟁에 대해, 경기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 논리를 보라고 일갈한다.

진보 진영의 또 다른 대표 선수인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동력이 `소비에서 수출로`, `에너지 과소비에서 친환경으로`, `금융 공학에서 생명·소프트웨어·토목 공학으로`, `소수 고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옮겨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은 더 이상 수입 소비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므로 글로벌 불균형에 기대어 성장해 온 국가들의 노선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도 했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종래의 세계 질서를 완전히 새로 쓴다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감안해야겠지만, 진보 진영이 그리고 있는 새로운 미국은 그 지향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다.

그러면 우리의 위기 대응에서 정치와 경제의 논리는 과연 어떤 것인가. 과거의 위기 대응 논리는 물론 작금 미국의 선택과도 많이 다를 것이다. 환경적인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지향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 회복도 관점에 따라서는 시기와 모양이 달라진다. 주식시장은 대략 1년 뒤에 돌아섰지만 기업의 투자가 본격화된 것은 2005년에 이르러서다. 주식시장도 이때서야 비로소 위기의 그늘을 다 털어냈다. 그 막간에도 신용카드 거품으로 또 한번의 쓰나미를 겪었다.

이렇게 보면 최근 시장의 경기 바닥 논쟁이 어쩐지 공허해진다. 중요한 것은 지표가 아니라 펀더멘탈이 아니던가. 결국 위기의 극복은 한계를 드러낸 펀더멘탈이 달라져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 펀더멘탈의 변화 방향을 좌우하는 것이 정치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윤영환/굿모닝신한증권/Credit analy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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