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다른 무대, 언니가 책임진다

연말 공연계 주름잡는 '우먼파워'
남자주인공 앞세운 연말 대작 속
실력파 여배우 출연작품 인기몰이
뮤지컬 '시카고'…최정원 아이비 관능미 폭발
연극 '꽃의 비밀'…한예주 등 연기파 총출동
뮤지컬 '바람사'…김지우 '스칼렛' 완벽 변신
  • 등록 2015-12-17 오전 6:48:36

    수정 2015-12-17 오후 5:38:25

뮤지컬 ‘시카고’의 최정원. 2000년 초연부터 무려 15년간 장기근속한 최정원은 내년 2월 6일까지 이어갈 공연에서 벨마 켈리 역을 맡아 원캐스트로 98회를 소화한다(사진=신시컴퍼니).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부부끼리 전화를 왜 해?” “어떻게 하면 입맛이 없냐.” 예상치 못한 상황, 허를 찌르는 대사 덕에 객석 곳곳에선 빵빵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연극 ‘꽃의 비밀’에는 내숭 같은 건 전혀 없다. 네 명의 여배우가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19금 대화는 갈수록 우스꽝스러워진다.

연극 ‘꽃의 비밀’의 한예주(왼쪽)와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김지우
‘언니’들이 돌아왔다. 연말 대작 속 8할이 남자주인공 일색인 무대 위 여배우의 돌풍이 심상치 않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시카고’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연극 ‘꽃의 비밀’ 등. 최정원·전수경·바다·김연재·한예주 등 믿고 보는 여성 주인공들이 매일밤 무대를 누빈다. 객석점유율도 80% 이상으로 순항 중. 이 추세는 내년 초반까지 이어져 뮤지컬 ‘레베카’ ‘맘마미아’를 시작으로 ‘마타하리’ 등에서 여성파워가 맹렬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주요 공연소비층은 20∼30대 여성이 압도적. 멋진 남성배우가 대거 등장하는 작품에 상대적으로 관객이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실력파 여배우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남배우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보이던 공연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 공연기획자는 “무대를 휘어잡을 만한 여배우가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역량 있고 참신한 여배우 발굴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정원·아이비 명품 콤비…뮤지컬 ‘시카고’

뮤지컬 ‘시카고’에서 록시 역의 ‘아이비’(사진=신시컴퍼니).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의 ‘캐시카우’(돈을 잘 버는 상품)로 불리는 ‘시카고’(내년 2월 6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는 2000년 국내 초연 이래 이번이 무려 12번째 공연이다. 더블·트리플 캐스팅이 대세인 뮤지컬시장에서 아이비와 최정원을 원캐스트로 내세워 승부수를 띄웠다. 두 사람은 각각 매력적인 살인자 록시 하트와 벨마 켈리 역을 맡아 98회를 소화한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살인과 질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끈적한 재즈와 관능적인 미국식 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성인’ 뮤지컬이다.

신시컴퍼니는 “통상 뮤지컬은 20~30대 여성관객이 대다수지만 ‘시카고’의 관객은 연령층이 다양한 편”이라며 “시카고란 이름 자체가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을 대표하며 브랜드화됐다. 시카고의 흥행은 배우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그간 인순이, 최정원, 아이비, 전수경 등 실력파 배우의 ‘전매특허’ 같은 연기가 힘이 됐다는 뜻이다.

2007년 벨마로 변신해 초연부터 무려 15년간 장기근속한 최정원이 ‘올 댓 재즈’를 요염하게 부르며 등장하는 장면이 백미다. 관록의 전수경은 웃음 포인트를 살리는 코믹함이 강점. 아이비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 공연에서도 록시로 출연해 최정원과 명품콤비로 활약 중이다. 두 사람의 환상적인 호흡이 관전 포인트다.

13년 만에 장진 신작…베테랑 여배우 총출동

연극 ‘꽃의 비밀’(내년 2월 7일까지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은 대학로에서도 오랜만에 여배우가 중심으로 선 작품으로 꼽힌다. 영화감독 장진이 13년 만에 새로 쓴 신작으로 연출까지 했다.

연극 ‘꽃의 비밀’의 한장면(사진=수현재컴퍼니).
‘박수칠 때 떠나라’(2000), ‘웰컴 투 동막골’(2002) 등 장 감독의 영화와 연극을 오간 인연이 있는 베테랑 여배우가 대거 참여했다. 김연재·추귀정·한예주·조연진·한수연 등이다. 장 감독은 “안전하게 티켓을 팔 수 있는 유명배우를 선택하지 않았다”며 “오래전부터 함께 작업해온 실력있는 배우들이다. 캐릭터 이미지와 어울리는 배우를 우선 캐스팅했다”고 소개했다.

작품은 네 명의 아줌마가 죽은 남편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해 벌이는 유쾌·통쾌한 해프닝을 다룬 코믹극. 폭소를 부르는 분장은 단순한 스토리를 재치 있게 보완해주며 엉뚱하고 능청스러운 1인2역이 볼거리다. 특히 한예주의 재발견은 소득이다. 장진 식 순발력 있는 대사와 엇박자 유머, 소박한 감동도 여전하다. 아내들의 아픈 사연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반전은 여운을 남긴다.

10개월 만에 재연 ‘바람사’…싱크로율 100% 김지우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가장 유명한 한 장면(사진=클립서비스).
영화에 대한 향수로 중·장년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던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내년 1월 31일까지 샤롯데씨어터)는 지난 1월 초연한 뒤 10개월 만에 앙코르공연 중이다. 초연에서 지적받았던 부분을 대폭 보완했다.

우선 연출자를 비롯해 새 제작진을 투입해 음악·대본·안무·영상 등을 전면적으로 수정·보완했다. MR 대신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하고 주요 배우의 드라마를 부각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레트 버틀러와 딸 보니가 부르는 새로운 넘버도 추가했다.

덕분에 산만함을 줄이고 개연성을 높여 지난 공연보다 나아졌다는 평. 하지만 워낙 방대한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끼워맞춘 것 같은 태생적인 한계를 벗지는 못했다. 다만 ‘여배우’ 김지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공연에 처음 합류한 김지우는 주인공 ‘스칼렛’과 99.9% 싱크로율을 보이는 풍부한 표정연기가 압권이다.

뮤지컬 ‘시카고’의 한 장면(사진=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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