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문화재 돋보기]獨서 실체 확인한 조선 軍용 모자 '전건'

조선시대 군사복식 중 하나
1795년 회화 속 군사들의 신기한 모자
韓에는 실물 전해지지 않아
독일 박물관에서 연이어 단서 찾아내
  • 등록 2020-12-30 오전 6:00:00

    수정 2020-12-30 오전 6:00:00

‘화성원행반차도’(사진=국립중앙박물관)
[박가영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유물이 간혹 해외 박물관에서 발견되는 예가 종종 있다. ‘전건(戰巾)’도 그 중 하나다. 전건은 조선시대 군사 복식 중 하나다. 위쪽에 드림을 늘어뜨린 고깔형의 검은 모자다.

필자는 조선후기의 그림과 문헌에 나오는 이 전건의 정체에 대해 수년간 궁금했지만 확인 가능한 실물이 없어 구체적인 생김새를 알기 어려웠다. 그러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나온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보고서에서 전건의 실물을 비로소 보게 됐다.

1795년 회화 속 군사들의 신기한 모자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을묘년, 즉 1795년(정조 19) 화성과 현륭원으로 행차했다. 필자는 이 8일 간의 원행(園行)을 그린 ‘화성원행반차도’, ‘수원행행반차도’, ‘화성능행도병’,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반차도를 살펴보던 중 생소한 형태의 모자를 발견했다.

신분이 낮은 군사들이 쓴 검은색 고깔형태 모자로서 위쪽에 꼬리처럼 생긴 드림을 늘어뜨린 모습이다. 드림의 모양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며, 더욱 신기한 것은 드림의 방향이 앞쪽에 있는 인물도 있고 뒤쪽에 있는 인물도 있다는 점이다. 이 모자가 의궤를 비롯한 문헌기록들에 나오는 ‘전건’임은 추정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구조나 제작 방식을 알 수 있을 만한 실물이 없었다.

전건은 훈련도감 초군이 썼던 모자다. 전건을 쓰고 협수 위에 오방색 호의를 입고 검을 차거나 총을 멨다. 국가의 재정과 군정을 정리한 책인 ‘만기요람’에 의하면 전건은 훈련도감의 군사만 착용했던 모자였다. 다른 군영에서는 같은 신분이라도 전건 대신 전립을 쓰도록 돼 있었다. 여러 기록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17세기 중반 훈련도감 군사들이 고급직물인 모단으로 만든 두건을 착용했다.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 전건(사진=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군사 전용 모자에서 여러 군영으로 확산

원래 훈련도감 전용 관모로 정해졌던 모단 전건은 점차 금위영, 어영청, 총융청 등 오군영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후 정조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이나 무위영의 군사, 삼도의 수군에 이르기까지 전건의 착용자가 확대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조시대 무예훈련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는 보군이 무예할 때 착용하는 복식 중 하나로 전건이 그려져 있다. 도설 속 전건은 드림부분에 좌우로 주름이 잡혀있고 모자 부분의 앞과 옆에는 구름 모양의 곡선 무늬가 가득 그려져 있다. 또 종이 쇼핑백처럼 측면이 안쪽으로 접혀 들어가도록 꺾여 있으며 양 옆에 끈이 달려있어 턱 밑에서 매는 구조다.

‘만기요람’에 기록된 제작방법을 보면 검정색 비단을 배접해 꿰맸다. 앞뒤는 네모나고 곧게 내려가도록 하면서 좌우로는 세 겹으로 접고 천의 끝부분을 뒤로 늘어뜨리며 금으로 문양을 그리도록 적혀 있다. 또한 19세기 군영 자료에는 전건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재료와 공임이 기록돼 있다. 1개를 만드는 재료로 청삼승, 홍면주, 소각장, 피금, 국화사 풀, 백지, 베실, 끈을 만들 옷감이 사용됐고, 공임 2전을 합치면 총 2냥 5전 6분의 비용이 들었다.

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전건(사진=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 박물관)
독일 박물관에서 연이어 찾아낸 단서들

2013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에서 출간한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조사보고서와 2017년 연구소에서 출판한 또 다른 조사보고서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에서 전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처음엔 유물의 손상으로 전건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17년에는 유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했고, 18세기 말부터 19세기의 회화 속에 반복적으로 보이는 전건의 모습과 일치했다. 현지조사 당시의 사진을 보면 전후 좌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어떤 구조의 모자였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유물이 독일의 박물관들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19세기 말 유럽의 아시아 유물 수집 열풍과 독일의 컬렉션 안목에 기인한다. 먼저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이하 라이프치히박물관)에는 3000여 점의 한국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외국 유물을 전문적으로 구입·판매하는 함부르크의 상인 H. 쟁어(H. Sanger)의 컬렉션이다. 쟁어의 컬렉션에는 무기, 깃발, 갑주 등 궁궐을 지키던 군사들의 복식과 물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이하 로텐바움박물관, 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은 2700여 점의 한국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절반 이상이 하인리히 콘스탄틴 에두아르드 마이어(Heinrich Constantin Edouard Meyer, 1841~1926)가 수집한 유물이다. 함부르크의 상인인 마이어는 1883년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에 무역회사를 운영하면서 고종을 알현하고 독일주재 조선영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로텐바움박물관 초대 관장의 요청으로 조선의 유물을 체계적으로 수집했다. 특히 신분을 구분하는 모자는 종류별로 모두 구입했다.

이 같이 현재까지 발견된 전건 유물 4점은 모두 독일의 박물관에 있다. 형태, 구조, 치수, 문양 등 모든 면에서 분명히 같은 모자이지만 세부적으로는 다른 제작기법을 보인다. 라이프치히박물관 소장품은 붉은색 직물과 금칠한 가죽을 붙여서 장식한 반면, 로텐바움박물관 소장품은 각각의 색상으로 그려서 장식했다. 유물을 종합해 보니 회화 속의 모습과도 일치했고, 문헌기록에 적힌 제작방식이나 재료와도 부합했다.

전건 유물의 공개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여러 수수께끼를 단번에 해결해줬다. 외국 수장고에 깊이 보관되어 있던 유물이 바깥으로 나오면서 조선후기 회화와 문헌에 들어있던 수많은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완성된 모습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처럼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사업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유물은 연구자로 하여금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게 할 뿐 아니라 소장기관에는 우리 한국문화재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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