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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비트코인(Bitcoin)이라는 첫 암호화폐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정체 불명의 인물 또는 집단이 지금으로부터 9년전인 2009년 1월3일 오후 6시15분5초에 첫 블록(=제네시스 블록)을 만들어내며 채굴 보상으로 50비트코인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탄생했습니다. 물론 이보다 앞선 2008년 10월31일 사토시가 비트코인 논문을 처음 발표한 날을 비트코인의 생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비트코인은 하나의 이론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암호화폐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실제로 무엇인가를 사고 파는 매개 역할을 함으로써 지급결제 기능을 가진 화폐로서의 첫 가능성을 보인 일은 그로부터 시간이 더 지난 2010년 5월18일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인 프로그래머 라스즐로 핸예츠는 인터넷 비트코인 포럼에 “피자 2판을 배달해주면 비트코인 1만개를 주겠다”는 글을 올렸구요, 뒤이어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샀다는 글과 인증사진을 올렸습니다. 지금 암호화폐 거래소 시세로 따지면 약 1억달러, 원화로 1000억원이 넘는 거액이니 비싸도 너무 비싼 피자를 먹은 셈입니다.
그러나 암호화폐 거래소가 등장하고 이를 통해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앞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가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1억달러에 맞바꾼 피자 2판을 비싸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적절치 않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비트코인을 처음 만든 사토시도, 피자 2판을 구입한 라스즐로도 지금처럼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왕성하게 비트코인을 사고 파는 일이 일어나리라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당시 거래소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거래소를 통해 웃돈(프리미엄)까지 얹어 비트코인을 사고 파는 게 초기 비트코인 정신에 위배된다는 일부 지적에 공감은 가지만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거래소 역시 암호화폐라는 생태계가 성장하고 진화하면서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겁니다. 지금과 같은 중앙화한 거래소가 불편하고 안전하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좀더 탈(脫)중앙화한 거래소로 변모할 수 있구요, 거래소가 또다른 형태로 바뀔 수도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향후에는 은행권과 유사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점치기도 합니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이처럼 거래소가 투기에 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내에서는 거래소에 대한 규제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암호화폐를 주식이나 선물, 옵션 등 전통적인 금융투자상품과 동일시하는 투자자들이 늘었는데도 암호화폐 거래소는 여전히 통신판매업자로만 등록돼 있다보니 적절한 내부통제나 투자자 보호장치 마련이 전무했던 게 사실입니다. 뒤늦게나마 국회나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를 규제하는 입법에 나서고 있다는 게 다행입니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거래소를 사실상 인가제에 부합하는 등록제로 운영하고 있지만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코인체크(Coincheck) 같은 거래소들이 난립하며 해킹사고를 일으키곤 합니다. 제대로 된 제도와 그 운영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