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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은 전날(14일·현지시간) 멕시코 국경장벽을 건설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선포한 국가비상사태를 무력화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공화당 53명·민주당 45명·무소속 2명으로, 공화당이 과반을 점한 상원이 이 결의안을 저지하지 못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까지 큰 숫자로 통과됐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공화당 의원 12명의 반란표 때문이었다. 앞서 로이터통신 등 미 언론들이 점쳤던 ‘5명 이탈’의 두 배가 넘는 숫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표결 직전까지 ‘결의안 찬성표는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격’ 등의 발언으로 공화당의 ‘단합’을 도모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무력화하는 내용의 의회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서명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취임 이후 첫 사례다.
더 치명적인 건 같은 날 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보고서 공개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는 점이다. 물론 하원은 민주당이 장악했지만, ‘만장일치’는 의외다. 물론 특검 보고서는 대외비로 분류돼 법무장관에게만 보고되며, 이를 공개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법무장관의 정치적 결정에 달렸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특검은 임명되지 않았어야 했고, 뮬러 보고서도 없었어야 했다. 특검의 수사는 범죄를 찾기 위한 불법적이고 모순된 것”이라며 보고서 공개 불가를 촉구한 이유다.
앞서 지난 13일엔 미군이 예멘 내전에서 완전히 발을 빼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결의안이 상원을 통과했었다. 여기서도 공화당 의원 7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표결에 앞서 백악관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었음에도, 아예 ‘나 몰라라’했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장악력 약화는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뜩이나 워싱턴 정가에 ‘비핵화 회의론’이 만만찮은 가운데, 공화당마저 등을 돌린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력은 탄력을 받기 어려워진다. 워싱턴의 분위기를 감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 파트너를 미국의 차기 정권으로 바꿀 여지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