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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윤여진 기자] “PP(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는 거기 넣으면 안 되는데….”
커피 전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크 아웃’ 전용 플라스틱 컵 뚜껑을 집어들자 강모(62)씨가 소리쳤다. 재활용품 쓰레기 선별 작업 경력 10년차 베테랑인 강씨는 신참인 기자에게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PP가 PET 보다 더 두꺼워. 탄산음료수병이나 생수병만 걸러내면 된다”고 알려줬다. 강씨는 “PP역시 재활용 대상이긴 해도 실제론 소각하는 게 현실”이라며 “PET보다 재질이 두꺼워 물 세척 때 둥둥 떠 사람이 일일이 세척해야 하기 때문에 분리수거로 얻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든다”고 설명했다.
작업 10분 만에 우유 썪는 냄새에 현기증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 체험에 나선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성산대교 남단 작업장. 작업장 책임자가 팔 토시와 앞치마를 내밀었다. 기본 복장에 마스크와 손수건 등 ‘옵션’까지 지급해 준 책임자는 “요즘 같은 여름에 팔 토시를 안 하면 피부병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겁을 줬다.
가만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에 고생깨나 하겠구나 싶었다. 이날도 낮 최고 기온이 32도까지 올라가며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문제는 날씨가 아니었다.
작업에 나선 지 30분쯤 지나자 후각은 아예 마비되다시피했다.
강씨는 “젊은 양반이 이런 냄새 맡기 쉽지 않지”하며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8시간 동안 작업장에서 일하고 나면 ‘우유에 술 탄’듯 한 냄새가 온 몸에 밴다”며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퇴근길 전철 안에서는 여전히 민망하다”고 했다.
실제 재활용 절반 안 돼…시민의식 아쉬워
컨베이어 벨트 위 재활용 쓰레기 중엔 ‘도대체 왜 이런 걸 재활용으로 배출했나’란 의구심이 드는 것들이 꽤 많았다. 땅콩 껍질이나 낙엽, 화분 흙 등 누가 봐도 재활용이 되지 않는 진짜 쓰레기 들이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 섞여 있었다.
영등포구 재활용 선별장엔 하루 35t가량의 재활용 쓰레기가 들어온다. 주로 관내 주택가에서 배출한 것들로 한 달 기준 950~1000t의 재활용 쓰레기를 이곳에서 분리수거한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면적 기준이 1000㎡ 이상인 주거시설은 자체적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선별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가 이 기준에 해당된다.
선별장은 지난 2014년 경기 부천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취수장의 유휴 부지에 들어섰다. 구청은 선별장에 체육시설 등 구민들의 여가 시설을 더해 체험 학습이 가능한 자원순환센터를 만들었다. 이 곳에는 작업자 30명, 구청이 직접 고용한 환경미화원 50명, 시설관리직원 20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영등포구 청소과 관계자는 “선별된 것 중 실제 재활용되는 건 45% 정도이고 나머지 50%는 소각, 5%는 매립된다”고 설명했다.
작업한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이곳 작업자들은 1시간 근무를 한 뒤 15분 동안 의무적으로 쉬게 돼 있다. 땀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마에 손수건을 묶었던 한 작업자는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낮 12시, 드디어 이날 목표치인 세 시간을 채웠다. 할당된 작업 분량을 마친 뒤 환경미화원 전용 샤워실을 찾았다. 땀에 전 몸을 씻은 뒤 작업자들과 함께 먹은 점심은 진수성찬 못지않은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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