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경제 먹거리산업 바뀐다]물건이 아닌 문화를 팔아라

6차 산업 시대..구매 가치 달라져
구매를 결정하는 건 물건 자체가 아닌 과정
까다로워진 소비자 잡으려면..마음을 움직여야
  • 등록 2016-03-25 오전 7:00:00

    수정 2016-03-25 오전 7:00:00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섬유산업이 지고 패션산업이 뜰 무렵, 그동안 내다 팔던 원단으로 디자인해 넥타이를 만들었더니 가치가 수십 배 올라가더라. 지금도 패션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전자산업 등과의 융합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남성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루이스클럽(LOUIS CLUB)’ 가로수길점. 이곳에선 의상부터 액세서리, 소품, 헤어까지 남성 스타일링에 관한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매장에선 전시회도 열린다.
1년 전 한국패션협회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성기학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은 축사를 통해 이 같이 말했다. 그가 한국패션산업의 역사를 되짚으며 강조한 것은 시대에 따라 더해지는 ‘가치’였다.

한국경제는 1차 산업(농수축산업), 2차 산업(제조업), 3차 산업(서비스·문화·관광업)의 시대를 지나 6차 산업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6차 산업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의 개념이다. 단순하게 각 산업을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융합해내는 것을 말한다. 융합의 키워드는 ‘기능’이 아닌 ‘가치’다. 이는 제조사도, 유통사도 마찬가지다. 제조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가치’를 생산하고, 유통사는 이를 세상에 널리 전파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품 루이비통 가방 대부분은 합성피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고 한결같은 ‘명품’의 가치를 인정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덴마크 주얼리 ‘판도라’도 달라진 소비 패턴의 예가 될 수 있다. 판도라의 모토는 ‘마이 스토리, 마이 디자인(My Story, My Design)’이다. 팔찌 줄을 구매한 뒤 고객이 저마다의 의미를 담고 있는 참(Charm·줄에 끼우는 장식)을 골라 끼우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주얼리가 완성된다. 몸에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따른다는 탄생석 반지도 인기다.

이렇듯 사람들의 필요 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 혹은 문화를 바탕으로 상품을 만들어 한 해 수십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는 디즈니 같은 회사도 있다.

유통업계에서도 변화의 흐름은 바로 읽힌다. 의류매장 안 이발소, 의류매장 옆 카페, 놀이공간이 요즘은 낯설지 않다. 동네 슈퍼마켓을 대체한 편의점, 전통시장을 대신하고 나선 대형마트 등도 개념이 바뀌고 있다. 물건을 사고팔던 공간에서 시간과 경험, 가치를 거래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패션과 전자 등 한 가지 품목만을 팔았던 1세대 쇼핑몰에서 백화점과 극장, 마트, 식당 등이 한 곳에 모인 복합쇼핑몰 형태의 2세대를 지나 최근에는 문화·레저 시설을 총망라하는 3세대 쇼핑몰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5층에 회전목마를 설치했다. 고객과 동행한 자녀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작년 6월 오픈한 이마트타운은 가전 체험공간, 피규어 전
현대백화점 판교점 5층에 마련된 회전목마.
시공간, 캠핑 시연 등 체험형 공간을 늘려 방문시간과 집객률을 높였다. 신세계는 오는 9월 하남에 문을 여는 복합쇼핑몰에 ‘쇼핑 테마파크’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단순한 쇼핑공간이 아닌 쇼핑과 여가, 레저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래 머물고 싶은 새로운 형태의 쇼핑 플랫폼의 등장을 예고했다. 모두에게 사랑 받는 ‘스타’와 같은 공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 수 있는 ‘마당’이라는 의미로 이 공간에 ‘스타필드’라는 이름을 직접 붙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고객들은 이제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곳을 찾아가 오랜 시간 머물며 상품이 아닌 가치를 얻고자 한다”고 변화의 배경을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물건을 비교해 구매하는 차원을 넘어 최근에는 종합적인 경험을 사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 물건을 사는 순간뿐만이 아닌, 과정 전체를 소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맥주도 산 정상에서 먹을 때와 지하 단칸방에서 마실 때의 맛이 다르지 않은가. 같은 이치다. 중요한 건 콘텍스트(context), 맥락이다. 만약에 옷을 사러 갔다고 치자. 소비자는 옷 자체의 품질, 가격만 보지 않는다. 주차는 편한지, 직원은 친절한지, 쇼핑 이외의 볼거리가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본 뒤 구매의사를 결정한다. 만약 온라인으로 산다면 배송은 빠른지, 결제는 편한지 등이 판단 요소다. 요즘 사람들은 물건 자체가 아닌 그 물건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을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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