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따라 집값이 안 올라도 보유세 부담이 커지게 돼 집주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문제는 집주인뿐 아니라 세입자 걱정도 크다는 점으로, 집주인들이 세부담을 세입자에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에 ‘부동산 블루’(부동산 우울증) 현상이 번지고 있다.
집주인들 “눈 뜨고 코 베였다”…임대업자 “임대료 올려 메워야지”
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공시가 현실화 방안 추진으로 서울 마포구에 시세 15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집주인이 내야 할 보유세는 올해 243만7000원(재산세194만8000원, 종합부동산세 48만9000원)에서 3년 뒤 408만4000원(재산세 238만2000원, 종부세 169만2000원)으로 두 배가량 뛴다.
집값에 상관없이 집주인들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서울 송파구의 리센츠아파트 한 주민은 “10년 넘게 살고 있는 집에 갑작스럽게 인위적으로 세금을 끌어올린다니 눈 뜨고 코 베이는 것 같다”며 “주위에 은퇴하고 별 소득이 없는 어른들은 ‘정부가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라면서 격분을 토하더라”고 했다. 강서구 근상프리즘 한 주민도 “아직 주택담보대출도 못갚았는데 지출 늘어날 일만 생긴다”며 “아이 학교 갈 때쯤 무리해서라도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가고 싶었는데 빚까지 생각하면 감당이 안될 것 같다”고 한숨 지었다.
주택임대업자들은 늘어난 세부담을 임대료 인상으로 보전할 수밖에 없단 반응이다. 영등포구에서 임대업을 영위 중인 A씨는 “전세 새 계약 받을 때마다 상한 5%까지 받아 세금을 메울 생각”이라고 했다. 영등포구 S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열 평 남짓한 오피스텔 전셋값이 작년 1억3000만~4000만원에서 올해 1억 5000만~6000만원으로 오른 상황”이라며 “세금 인상으로 금방 1억 7000~8000만원으로 오를 게 확실하다”고 했다.
“집도 없는 세입자가 부담 떠안아…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세금이 오르면 그 부담은 가장 최하위 소비자에 전가된다”며 “전월세 가격 상승은 집값을 밀어올리고 다시 공시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을 낳는데 이 순환고리를 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리를 끊을 유일한 방법은 공급 확대이나 당장 적용이 어려운 해법”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집을 가진 이도, 세를 사는 이도 모두가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 우울이 언제 끝날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게 사회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