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점령지서 투표조작…총구 겨누며 "푸틴 찍어라"

자포리자·헤르손·도네츠크·루한스크 등서도 대선 투표
무장 군인과 집집마다 방문, 신분 확인하며 투표 강요
"점령지 관리들 충성경쟁…높은 투표율·득표율 예상"
투표 거부하면 체포…우크라 "점령지 선거 불법·무효"
  • 등록 2024-03-17 오전 11:09:35

    수정 2024-03-17 오전 11:09:35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투표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AP통신 등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날 시작된 러시아 대선은 17일까지 사흘 간 진행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5선 연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 이틀째인 16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도네츠크에서 한 여성 주민이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AFP)


러시아 대선 이틀째인 이날 자포리자·헤르손·도네츠크·루한스크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네 곳에서도 투표가 이어졌다. 러시아는 2022년 이들 지역을 ‘새 영토’로 강제 편입했다.

외신 보도, 현지 주민들의 목격담 및 증언, 소셜미디어(SNS)에 게재된 영상 등에 따르면 점령지 네 곳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선거관리요원으로 선정된 러시아 여성 공무원과 남성 군인이 짝을 이뤄 주민들의 집을 일일히 방문하며 사전 투표를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공무원은 대부분 학교 선생님 또는 정부 사무원으로 현지 유권자 목록을 들고 신분증을 확인하며 사전 투표 용지를 전달했다. 여성 옆에는 남성 군인이 마스크를 쓰고 총을 든 채 서 있었으며, 인근엔 무장 군인들이 가득찬 차량이 정차돼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투표 용지에는 푸틴 대통령을 포함해 총 네 명의 후보자 이름이 기재돼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푸틴 대통령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입을 모았다. NYT는 푸틴과 함께 대선에 출마한 나머지 세 후보는 모두 친(親)크렘린 정당의 지도자들로 이번 대선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치러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마리우폴의 한 주민은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점령지에 거주중인 가족 및 친구들이 이같은 방식으로 사전 투표를 실시했다며 “투표는 대개 아파트 입구 근처에서 이뤄졌다. 비밀은 없었다”며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정권에 복종해야 하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지지하는 척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루한스크에서는 지난달부터 곳곳에 “우리 대통령에게 투표하세요. 우리는 함께라면 강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러시아 국기 색으로 된 표지판이 세워졌다. 루한스크 주민인 아나스타샤는 NYT에 “누가 이길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실제 선거가 아닌데도 이를 홍보한다”고 꼬집었다.

일부 주민들은 점령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를 바라며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 제한이 풀리면 점령지 탈출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러시아가 점령지의 높은 투표율을 부각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점령지 주민들은 “투표율이 120~150% 정도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의 분석가인 알렉세이 쿠쉬도 100%에 가깝거나 그 이상의 투표율과 지지율을 기록할 것이라며 “각 점령지 관리들은 푸틴 대통령에게 더 높은 득표율을 보고하기 위해 충성 경쟁을 할 것이기 때문에 대규모 투표 조작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투표를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주지를 비우거나 투표소를 방문하지 않는 것이지만,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 우크라이나 비정부기구 동부인권그룹(EHRG)에 따르면 헤르손과 자포리자에서는 투표를 거부한 주민 27명이 일명 ‘지하실’이라고 불리는 비공식 감옥에 체포·수감됐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선거 첫 날인 전날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점령지에서 진행하는 선거는 무효”라며 “(이는) 국제법 규범과 원칙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시적으로 점령된 지역에 거주하는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 주민들과 러시아 영토로 강제 이송된 국민들에게 선거에 참여토록 강요하는 것도 똑같이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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