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독감백신 향방에 관심이 쏠리는 건, 특수를 노릴 수 있는 독감백신이 다른 사업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다만 녹십자는 백신과 혈액제제 사업을 넘어 희귀질환 혁신신약으로도 포트폴리오를 확장한다는 전략이지만 신약 파이프라인은 대다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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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특히 국내 독감백신 시장을 양분해온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19 백신에 집중하면서 독감백신 생산 중단을 결정한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당초 국내 독감백신 시장은 녹십자가 40%, SK바이오사이언스가 30% 정도를 점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공백을 녹십자가 채운 모습이다. 2021~2022년 국내 독감백신 공급 물량 2680만도즈(1회 접종 분량) 중 녹십자는 1700만도즈를 담당했다. 시장점유율은 63%로 올랐다.
물론 국내에 다른 경쟁사도 있다. 그러나 원액을 자체 생산해 제품을 판매했던 SK바이오사이언스 점유율을 가져오려면, 원액부터 직접 생산할 수 있어야 물량을 감당할 수 있다. 자체적인 독감백신 원액생산 기술을 보유한 곳은 녹십자와 일양약품 정도로 알려졌다. 나머지 기업은 원액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든다.
특히 코로나19 엔데믹이 가까워졌다는 점도 녹십자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독감이 사라지기는 불가능하다. 각국 간 교류가 시작되면 오히려 독감백신 수요가 늘 것”이라며 “기업들이 독감과 코로나19를 동시에 노린 콤보백신을 개발하는 것도 독감백신 수요가 계속되리라 보기 때문이다. 콤보백신이 나온다고 독감백신 수요가 줄어들 거라 보기는 어렵다. 독감백신은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꼭 맞아야 하는 백신이라는 인식이 있어 판매가 더욱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최대규모로 잠정 확정된 독감백신 수주물량도 올해 실적으로 전량 반영될 예정이다. 녹십자는 지난해 12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의 2022년도 남반구 의약품 입찰에서 4891만달러(약 574억원)의 독감백신 잠정 수주물량을 사전 통지받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남반구 지역으로 수출한 물량보다 22% 증가한 수치다. 독감백신의 경우, 내수는 국책사업(NIP)으로 이뤄지고 해외는 PAHO 등 국제기구를 통해 물량이 납품된다.
혁신신약 파이프라인 확장을 위해 회사가 올해 R&D 확대 여력을 특히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은, 독감백신 외에 희귀의약품 사업분야의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다. 회사에 따르면, 헌터라제 매출은 2019년 407억원, 2020년 467억원, 지난해 532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해외에도 적극 진출 중이다. 중국에서 2020년 허가를 받았고, 일본에서는 기존 정맥주사에서 뇌실내 직접투여로 제형을 변경한 ‘헌터라제 ICV’로 허가받았다.
혈액제제 사업 역시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32%(3742억원)를 차지할 정도로 녹십자의 내실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다. 다만 혈액제제 사업에서는, 주력 제품으로 기대를 모은 면역글로블린 주사제 ‘IVIG-SN 10%’의 허가가 지연되는 상황이다.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최종보완요구서한(CRL)을 받아 올해 허가 및 매출 발생은 어려울 전망이다. 회사 관계자는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BLA(품목허가신청)을 재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