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레이건의 리더십

  • 등록 2004-06-07 오전 9:04:12

    수정 2004-06-07 오전 9:04:12

[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현대 경영학에서 주요하게 떠오르고 있는 연구대상중의 하나는 바로 "리더십"(leadership)이다.리더십이란 무엇인가.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누군가를 이끄는 것이다.리더십이 이루어지려면 리더와 추종자,그리고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경영학에서 리더십이 점점 중요해지는 것은 기업내에서 CEO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CEO야말로 그 기업조직의 진정한 리더이기 때문.여기에서 파생돼 경영학의 다양한 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리더십이란 타고 나는 것일까,길러지는 것일까.현대화된 기업조직에서 필요한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가.기업조직에서 유용한 리더십이 국가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등등. 리더십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장황하게 풀어놓은 이유는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때문이다.전현직을 막론해 "미국민으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대통령"이라는 레이건 전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운명을 달리했다.향년 93세.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에선 애도의 물결이 넘쳐나고 있다.백악관을 비롯한 관공서엔 일제히 조기(弔旗)가 게양됐다.CNN등 방송사들은 레이건 추모 특집방송을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레이건 전 대통령의 장례는 오는 11일 워싱턴에서 미국 국장으로 치러진 뒤 그의 유해는 캘리포니아 소재 레이건 도서관 언덕에 안장될 예정이다. 레이건 전대통령은 위대한 전달자(Great communicator)로 통한다.논리적인 설명이 아니라,직관적인 감각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갔다.배우 출신이었기 때문일까.알아듣기 쉬운 말로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힘은 탁월했다.영국의 BBC방송은 레이건의 이런 능력을 가르켜 "단순함이라는 자신의 최대약점을 장점으로 변화시킨 힘"이라고 평했다.백악관 집무실에 방송 카메라를 불러들여 국민들과 의사소통했고,지금은 정례화된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방송을 처음 만든 이도 레이건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레이건 전대통령은 즉석 연설같은 순발력에선 뛰어났지만 국정의 현안을 파악하는 능력은 다소 모자랐다.특히 경제문제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이었다.기자들이 경제문제를 질문하면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렇다고 기자들을 만나지 않을 수도 없는 일.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헬기앞 브리핑"이다.백악관 뒷뜰에 헬기를 준비시켜놓고 간단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다.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고-레이건은 이런 연설에선 발군이었다-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헬기로 이동한다.대통령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면 즉석에서 답하지만 다소 이해가 안되는 질문이 나온다거나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귀에다 손을 대고 "뭐라고?"하는 표정을 짓는다.마치 헬기 프로펠러 소리때문에 질문이 잘 안들린다는 듯이..국민들에게 비쳐지는 대통령의 모습은 "헬기를 타기위해 걸어가는 몇십초 동안조차도 낭비하지 않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이다. 레이건은 분석적이지 못했으며 전략적인 사고와도 거리가 멀었다.그러나 그는 언제 어떻게 힘과 권력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아는 지도자였다.레이건은 결단이 필요할 때 흔들리지 않았다. 레이건 집권 초기인 81년 당시 연방정부에 소속돼 있던 항공기 통제사들이 파업을 일으켰다.통제사들은 모든 항공기를 세워버리겠다고 정부를 위협했다.당시 항공기 통제사들의 파업은 불법이었다.레이건은 단호했다.파업에 참여한 만여명의 통제사들을 즉각 해고해버렸다.결과적으로 통제사들의 파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만여명의 통제사들은 단 한명도 직장에 복귀하지 못했다.이들중의 많은 이들은 다시는 통제사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레이건의 결단력을 보여주는 일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이란 등을 "악의 축"이라고 불러,파문을 일으켰지만 80년대 미국과 경쟁하던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처음 부른 것은 레이건이었다.87년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는 고르바쵸프 당시 소련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거명하며,"여기에 와서 이벽을 허물라"고 외쳤다. 경제적으로 레이건은 "레이거노믹스"라고 불리우는 공급중시 경제정책으로 미국 경제회생의 기틀을 마련한 대통령으로 평가된다.그의 경제정책은 4가지로 압축된다.감세,저인플레,정부지출 축소,규제완화 등이다.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도 레이건 행정부시절의 감세정책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역설적으로 그의 재임기간중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8년 재임기간중 7년간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에 시달렸으며 그의 경제정책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그러나 레이건 집권기간 동안 마련된 경제정책의 틀은 이후 미국 경제가 최장기간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배경이 된다.레이건 재임기간 동안 개인소득세 최고율은 70%에서 28%로 낮아졌으며,기업법인세는 48%에서 34%로 떨어졌다.연방정부의 재정적자 규모 자체는 커졌지만,정부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카터 행정부때의 4%에 비해 훨씬 낮아진 2.5%를 기록했다.금융산업을 비롯해 장거리전화사업, 정유산업,천연가스,운송업 등의 규제가 크게 완화된 것도 그의 치적으로 꼽힌다.인플레이션도 확실히 잡았다.그의 재임기간중 인플레이션은 10.4%에서 4.2%로 곤두박질쳤다.실업률은 7.0%에서 4.5%로 떨어졌다.경제대통령으로 꼽히는 앨런 그린스펀 현FRB의장을 처음 지명한 것도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뉴욕타임즈는 레이건 사망기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영웅에 목말라했던 시기.베트남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렸고,워터게이트 추문과 이란 인질사건으로 국가적 자존심이 추락했던 때,레이건은 미국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상기시켰다.미국이 다시 세계에 우뚝 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중에 최고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지만,가장 젊게 산 낙천주의자 레이건.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엇갈리지만,그의 리더십에 대한 향수는 미국인들 사이에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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