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보험금 청구 스트레스''

통원비 4만원 타는데 병원 서류 수수료 1만원
보험사마다 요구 서류도 틀려… "차라리 안받아"
  • 등록 2009-10-29 오전 8:44:37

    수정 2009-10-29 오전 8:44:37

[조선일보 제공] 최근 네 살 난 아들이 호흡기 질환에 걸려 고생하다 종합병원을 찾게 됐다. 집 근처 병원에선 치료비가 그리 부담되지 않았지만, 종합병원은 솔직히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지난 7월부터 대형 병원의 외래 본인부담률이 진찰료를 제외한 요양급여비용의 50%에서 60%로 높아져 예전보다 내야 하는 금액도 컸다. 하지만 이럴 때 요긴하게 쓰려고 어린이 보험에 가입해 두는 게 아니겠는가. 아들 앞으로는 A생명보험사와 B손해보험사 등 두 회사에 보험을 가입해 놨었다. 꼼꼼하게 따져보니 A생명보험사에서 1일 통원비로 4일치, 총 4만원을 받을 수 있었고 B손해보험사에서는 병원비를 실비로 전액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보험금을 청구하려니 정말 황당해졌다. A사와 B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와 발급비용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A사 콜센터 직원은 보험금 4만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병명이 기재돼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기자가 다니는 종합병원에선 병명이 기재된 서류를 떼려면 1만원을 내야 한다. 보험금 4만원을 받으려고 돈을 1만원이나 써야 한다니! 너무 억울했다. 반면 B사는 총보험금 청구금액이 50만원 미만으로 소액이면 초진차트(발급비용 3000원)만 복사해서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똑같은 병원에서 같은 치료를 받고 나서 보험금을 청구하는데도 왜 보험사마다 계약자에게 요구하는 증명서 종류는 이렇게 천차만별인 걸까? 그 실태를 속속 해부해 봤다.

◆보험금 청구서류, 회사별로 제각각

우리나라의 보험체계는 환자들이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면 먼저 내 돈으로 치료비를 낸 다음 나중에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해 돌려받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때 환자 본인이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이 너무 복잡하고 제각각이어서 불필요한 시간·비용 낭비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기자는 생명보험사 12곳과 손해보험사 7곳에 의뢰해 하루 통원비로 10만원이 나왔을 때 계약자가 병원에서 떼어 가야 할 서류 종류가 무엇인지 조사해봤다. 통원비 관련 상품을 지난 70년대부터 오랫동안 팔아온 7개 손해보험사는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계약자들이 준비해야 할 서류를 대폭 간소화시켰다. 총보험금 청구액이 50만원 미만으로 소액인 경우엔 병원 영수증만 갖고서도 보험금을 내 주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영수증이야 어차피 치료비를 내면 나오는 서류이니, 보험 가입자는 잘 챙겨 두기만 하면 된다. 초진차트도 병원별로 발급비용이 다른데, 무료이거나 많아 봤자 몇천원 수준이다.

반면 생명보험사들은 회사별로 차이가 컸다. 보험금 청구액이 단 1만원에 그치더라도 반드시 병명이 기재되어 있는 서류(발급비용은 병원별로 1만~3만원)를 제출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보험사가 있는가 하면, 알리안츠생명처럼 통원비를 신청할 때 발급비용이 비싼 진단서 대신 질병분류기호가 기재된 처방전이나 진단명이 기재된 진료기록부 등으로 대체할 수 있게 배려한 보험사도 있었다.

보험금 청구시 비용이 드는 서류 제출을 고집하는 A보험사 관계자는 "보험금 지급 절차를 너무 간소화하면 보험사기가 늘어날 소지가 크다"고만 해명했다.


◆보험금 지급 '너무 깐깐'

보험 계약자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는 보험사가 보험료를 받아갈 때와 보험금을 내줄 때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는 데에 있다. 보험료는 제날짜에 칼같이 통장에서 뽑아가면서 막상 보험금을 내줘야 할 때는 미적미적대고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보험금을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서류들을 복잡하게 해 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이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게끔 유도하려는 얌체 전략이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보험사마다 요구하는 서류 종류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보험사에 먼저 확인해 보고 발급받으라고 권한다"며 "치료가 끝나고 나서 진단서나 통원확인서 등 증명서를 받으려면 별도 진찰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환자 비용 부담은 더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험금 청구와 관련한 불만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상품이 바로 실손의료보험이다. 실손의료보험은 환자 본인이 낸 병원비를 전액(자기부담금 제외, 10월 신규부터는 90%까지만 보장) 보상해 주는 상품이다.

소소하게 들어간 병원비를 보험사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실손보험은 이미 가입자 수가 1780만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문제는 실손보험을 청구할 때 병원비 3000원을 돌려받기 위해 1만~2만원 넘는 서류 발급비용을 써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보험 가입 전 그저 상품 내용이 어떤지 따질 게 아니라, 나중에 정작 보험금을 청구할 때 애프터서비스(AS)는 어떻게 해주고 있는지 반드시 체크해야 낭패 보지 않는다. 보험제도 개선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나도 아이가 다쳐서 상해 보험금을 청구하려고 했는데 진단서 발급 비용만 2만원이더라"며 "비용이 너무 들어 보험금 청구를 관뒀는데 아마 이런 식으로 계약자들이 몰라서 혹은 귀찮아서 청구 안 해 사장(死藏)된 보험금도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보험금 청구와 관련한 제도를 정비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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