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신설은행이 생겼다. 2009년 출범한 피도르다. 설립목표부터 ‘남다르다’. “새로운 형태의 상거래에 필요한 요소를 다 모아 모든 은행서비스와 함께 한 장소에서 제공한다”다. 물론 보통의 은행업무를 한다. 형태가 좀 특이할 뿐. 각각의 전문업체와 제휴한 크라우드펀딩, 스마트폰월렛이 기본이고 소셜대출서비스라는 것까지 시도하니까. 그런데 가장 재미있는 건 ‘좋아요’에 따라 금리를 조정하는 일이다. 피도르은행의 페이스북 홈페이지가 ‘좋아요’를 많이 얻을수록 고객의 예금금리는 점점 더 높아진다. 그래도 은행인데 성과는 제대로 내고 있을까. 그렇단다. 간단히 마케팅 비용만 보자. 지난 3년간 7만 5000명의 고객을 확보하는 데 10만유로(약 1억 2000만원)를 썼다는데. 환산하면 고객 1명을 확보하는데 단돈 1.33유로(약 1600원)가 든 셈이다.
비슷한 장면은 미국에도 있다. ‘진정한 소셜 모바일 금융서비스’를 목표로 2013년에 띄운 모벤이다. 여기선 SNS의 소셜 영향력에 따라 개인의 신용등급을 조정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드인 등 다양한 SNS 안에서 개인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만큼 신용등급을 향상하는 시스템이다. 이들의 판단은 단순하다. 사회적으로 신뢰가 있을수록 금융의 신용도도 높을 것이란 거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겠지만 이 ‘만화풍경’은 바로 지금 진행 중인 금융권의 지축 변화를 의미한다. 늘 중심에 있는 은행이 여전히 주역이다. 그런데 실체가 없는 은행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점이 없는 은행, 현금기반을 무너뜨리고 ‘선을 넘은’ 은행이다. 단순히 재밋거리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왜냐고? 이 장면들이 은행의 미래니까.
영국의 금융시장분석가인 저자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디지털뱅크’라는 카테고리로 내세워 은행의 안팎을 헤집고 다녔다. 당장의 문제의식은 오프라인에 찍었다. 휴대폰 속 지갑에다가 모바일뱅크, 비트코인, 핀테크까지 다 나온 판에 왜 은행들은 아직도 지점 유지에 목숨을 거느냐는 거다. 책은 저자에게 딱 걸린 은행의 보수주의에 대한 강도 높은 경고다. 아직도 자신의 경쟁상대가 옆집 은행이라고 믿는 발상 자체가 ‘웃긴다’는 것이다. 눈앞에 진짜 적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구글, 페이스북, 애플, 삼성 말이다.
▲“은행은 다음번에 쓰러질 도미노”
당연히 경보가 울렸다. ‘은행은 다음번에 쓰러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도미노’라는. 아무리 ‘고고한 척’ 해도 은행은 예전의 서점이나 음반가게가 거쳤던 길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우물쭈물하다간 그저 ‘문 닫는’ 순서만 기다리게 될 터. 마침 벤치마킹할 대안이 있었다. 아마존이다. 저자는 인터넷서점서 출발했던 아마존이 데이터마이닝 기술을 도입해 세계 최대의 온라인 종합쇼핑몰로 변모하지 않았느냐고 조목조목 설명한다. 은행이라고 특별할 게 없다는 논지다. 변신이나 진화를 꾀하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저물어가는 건 ‘섭리’다.
▲A은행 경쟁자가 B은행? 아니 페북!
경쟁상대를 한번 볼까. 디지털혁명은 이미 IT와 은행의 구획을 모호하게 지워놨다. 아마존의 ‘페이팔’과 애플의 ‘애플페이’,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등이 대표적이다. 누가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이들은 ‘알아서’ 모바일결제시장에 발을 뻗었다. 삼성, 다음카카오의 ‘삼성페이’와 ‘카카오페이’도 한국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카드회사의 움직임도 무시할 수 없다. ‘앱카드’다. 모바일앱에 아예 신용카드의 기능을 박아버린 것이다.
▲‘은행 털다’ 없다 ‘온라인 털다’만 있을 뿐
한때 세상은 디지털 유목민의 처지를 살폈다. 디지털기기를 장비처럼 챙겨 들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직업과 정체성에서 자유로운 기질을 드러내는 이들. 그런데 그새 다시 변했다. 이들이 이내 디지털 원주민으로 정착한 것이다. 결국 책은 바로 이들 원주민을 끌어안아야 할 은행의 자세에 대해 묻고 답한 것이다.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무늬만이 아닌 진짜 디지털 유통구조를 고려하라는 말이다. 전자채널은 물론 물리채널까지 다 동원하는 것. 다시 말해 오프라인 따윈 날려버리고 뼛속까지 디지털이 되라는 얘기다.
은행, 엄밀히 말해 은행 지점에는 ‘돈’이 없다. 대신 데이터만 꽉 들어차 있다. 정작 돈은 어디에 있나. 디지털뱅크라는 온라인에 있다. 덕분에 ‘은행 털다’란 말도 의미를 잃었다. 이젠 ‘온라인 털다’가 맞는 표현일 게다.
이 모든 배경은 저자가 지점 토대의 뱅킹은 끝났다고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단지 기술 때문인가. 아니다. 기술로 인해 가능해진 것들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들이 모바일과 PC에 달려든 건 그 기기들이 좋아서가 아니란 말이다. 그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관계와의 연결이 있어서다. 책의 강점은 이런 분석을 은행에 적용해낸 ‘스마트한 매핑’에 있다. 그 판을 무기로, 돈이 아닌 데이터를 걸고 일전을 앞둔 은행에는 일갈을 날렸다. “고객과 다시 연결되고 싶은가. 방법을 내놔라. 쉽고 단순한 디지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