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의 문화재 읽기]조선 최초의 금속활자 '계미자'

태종 3년인 1403년 제작
구텐베르크보다 40여년 앞서
"왕권 강화하고 유학 전파하는데 큰 역할해"
  • 등록 2020-07-20 오전 6:00:00

    수정 2020-07-20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구텐베르크는 1455년 유럽에서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기를 발명해 성서를 찍어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고 유럽에는 인쇄소가 1000곳 이상 생겼으며 성서는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퍼졌다. 이는 이후 문예부흥운동, 루터의 종교개혁, 프랑스 대혁명과 영국 산업혁명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과거 인쇄술은 혁명과도 다름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선 1377년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발명해 ‘직지심체요절’을 펴냈다. 서양과 같은 혁명은 없었지만 금속활자는 조선 초기 왕권을 안정시키고 유학을 전파하며 백성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전파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고서 전문 사설 박물관인 화봉 책 박물관은 ‘한국과 세계의 고활자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소장하고 있는 고활자 80여점을 공개했다. 여승구 화봉 책 박물관 관장은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찍은 ‘동래선생교종북사상절’ 일부를 이번 컬렉션의 백미로 꼽았다. 계미자는 태종 3년인 1403년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동활자로 그 해의 간지를 붙여 ‘계미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미자가 나온 시기도 구텐베르크보다 50년 앞선다.

고려시대에 이미 금속활자 기술이 존재했지만 조선을 건국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금속활자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 3대 왕인 태종 때 와서야 조선왕조는 비로소 그 기틀이 잡혔다. 왕조의 기반이 안정되자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왕 중심의 통치 체제를 정비했다. 또 숭유억불정책을 국시로 해 숭문정책(문과를 숭상하는 정책)을 펴나갔다. 이를 위해 태종은 유생들에게 학문을 권장했는데 책의 인쇄 보급이 절실했다. 또 중국에서 사신으로 가면 서책을 가져오곤 했는데 그것을 왕이나 주요 인사뿐 아니라 지방에서 민관이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 목판을 일일이 만들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에 태종은 1403년 2월 고려 말의 서적원제도를 본받아 주자소를 설치하고 금속활자를 제작했다. 활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동철(銅鐵)이 필요한데 당시만 해도 철은 몹시 귀했다. 태종은 부족한 동철 수급을 위해 왕실의 재정이나 물품을 맡아보던 관청인 내부(內府)의 것을 모두 내놓았다. 또 종친·훈신 등의 신하들에게도 자진 공출하게 했고 소요경비는 임금이 개인적으로 내탕금(內帑金)을 내놓아 활자주조에 착수했다.

계미자로 찍어낸 책은 13~14종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서삼경’이나 ‘주자책’같은 유학 이념을 담은 책이 주를 이뤘지만 꼭 필요한 농서, 의서, 법서 등의 책도 있었다. 장원연 청주 고인쇄박물관 학예사는 “통치와 관련된 유학 서적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아픈곳을 치료하고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책들을 찍어내 국가로서 꼭 해야 하는 역할을 태종 때가 돼서야 시작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계미자는 세종 2년인 1420년 경자자를 주조하기까지 18년 동안 사용됐다.

다만 조선시대는 유럽과 달리 상업적으로 책을 인쇄하지 않은 만큼 인쇄술의 발전은 다소 느렸다. 장 학예사는 “유럽에서 인쇄는 상업적 성격이 강해 돈이 되는 건 다 찍어 인쇄술이 빠르게 발전했다”면서 “조선은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꼭 필요한 책을 국가 주도로 만들다 보니 유럽과 다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가 돼서야 민간에서도 책을 만들기 시작했고, 책 판매는 1800년대부터 이뤄졌다.

1403년 조선 최초 금속활자 ‘계미자’로 찍어낸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일부(사진=화봉 책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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