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
| 지난 14일 서울에 남아 있는 ‘민들레 영토’를 직접 찾았다.(사진=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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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어머니의 정을 판매하는 카페가 있었다. 직원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하는 유니폼을 입고 가게에 들어서는 모든 손님에게 웰컴 티를 건넸다.
그곳의 이름은 ‘민들레 영토’다. 줄여서 민토. 1994년 서울 신촌 연세대 ‘어머니점’이라 불리는 1호점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종합문화공간이다. 창업자인 지승룡 대표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 30분 만에 쫓겨난 경험을 바탕으로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민들레 영토를 생각해 냈다.
| 서울 동대문구 인근 민들레 영토 외관. (사진=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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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영토에서는 마시고 싶은 음료 등을 주문하고 자리를 이용하는 요즘 카페와 달리 3시간의 기본요금을 내면 다양한 음료를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다. 소정의 장소 사용료를 받고 음료 등 서비스를 제공한 것인데, 이는 카페가 많이 없었던 당시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민들레 영토를 찾는 이는 점차 늘었고 창업 10년 만에 일 평균 고객 1만 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위기는 서서히 찾아왔다. 1997년 이화여자대 앞에 처음으로 들어선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다양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가 생기면서 카페에 머무는 동안 일정 시간을 보장하는 민들레 영토만의 독자적인 강점이 더는 빛을 보지 못했다.
| 가게 입구에 비치된 토끼모양 장식 (사진=송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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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민들레 영토는 스터디룸을 만들거나 잡지를 비치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2009년 민들레 영토의 모태가 된 신촌점이 문을 닫았고 서울에선 동대문구에 있는 경희대점만이 유일하게 남았다.
기자는 지난 10월 8일 자 기사(‘ㄱㅣ억ㄴr 니…? 그 시절 우리들의 캔모ㅇr’ 편)의 댓글을 보던 중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해당 글에는 민들레 영토는 어찌 됐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 담겼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 가게 앞에는 이러한 설명이 붙어 있다. (사진=송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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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대로 지난 14일 오후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민들레 영토 경희대점을 직접 찾았다. 가게는 주택을 개조한 듯 카페보다는 가정집 느낌이 물씬 들었다. 가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소개 글이 보였다.
글에는 ‘이곳은 도시 속 작은 문화공간으로 저렴한 가격의 음료와 식사를 나누면서 대화, 독서,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세미나실,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심리치료 및 휴먼 이벤트 등을 통해 신(新)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열린 문화터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 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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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들어가니 중년의 남성 사장이 환하게 반겼다. 손님은 5팀 정도 있는 듯했다. 사장은 민들레 영토만의 이용 방법을 친절히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1인당 이용금액은 5000원. 민토 간식과 음료가 포함된 금액이다.
음료는 기본 음료(아메리카노와 각종 차, 탄산음료, 에이드 등)에 한해 무제한으로 리필이 가능하다. 민토 간식은 해쉬브라운 포테이토, 소시지구이, 토스트, 미니 와플, 컵라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된다. 단 컵라면은 500원의 추가 금액이 발생한다.
| 2008년도 낙서. 사장이 직접 사진 찍어 간직하고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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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주문한 메뉴는 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 그리고 미니 와플과 컵라면이다. 여기에 치즈 오븐 떡볶이(7000원)을 꼭 먹어보라는 한 방문객의 후기가 떠올라 해당 메뉴도 추가했다.
2층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둘러보니 곳곳에 손님들의 낙서가 보였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2008년도 낙서였다. 내용에는 ‘입학 축하해 너의 꿈을 이루어봐 이루어진다!’ ‘너무 먼 당신 보고 싶습니다’ ‘시험이 끝났는데 왜 기분이 안 좋지?’ 등이 담겼다.
| 가게에 두고 간 손님의 편지. (사진=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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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상적이었던 건 손님이 남긴 한 통의 편지였다. 가게 한쪽 벽에 붙어 있는 편지에는 ‘민들레 영토. 대학 신입생 때 대학로, 신촌 등 놀러 가는 데마다 보인 카페다. 이름도 예쁘고 외관도 귀여웠다. 그런데 다들 많이 가는 곳이라 굳이 나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는 사이 어느 순간부터 민토가 안 보인다는 걸 느끼게 됐다.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잘 가게 되지 않았다. 잊고 지내다 지난달 생일쯤 민토가 경희대점 하나만 남았다고 해 방문했다’라고 덧붙여 있었다.
| 웰컴티. 일명 민토차라고 불린다. (영상=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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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구경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제일 먼저 맛본 것은 웰컴 티였다. 일명 민토차라고 불리는 이 차는 사실 수국차다. 첫맛은 현미 보리차와 같이 고소했고 뒷맛은 깔끔했다. 특유의 천연 단맛과 박하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입안에 향긋하게 남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곁들여 먹은 치즈 오븐 떡볶이는 마치 경양식당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떡볶이 위에 올라간 치즈는 부드럽게 늘어났고 오동통한 떡은 쫄깃했다. 치즈와 떡을 함께 맛보니 묵직하고 다채로웠다. 맵지 않았고 적당히 입맛을 당기는 단맛이었다.
| 치즈 오븐 떡볶이. 치즈가 부드럽게 늘어난다. (영상=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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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와플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의 준말) 그 자체였다. 약간의 메이플 시럽이 뿌려져 있어 달콤했다. 이 밖에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는 목을 축이기에 제격이었다. 특히 살구 에이드는 새콤달콤한 맛이 어릴 적 먹던 쥬시쿨과 비슷했다.
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다. 중년의 여성 사장은 가게 문을 연 지 20년 정도 됐다며 단골 대학생 손님들은 벌써 마흔이 넘었고, 10년 전에 일하던 남녀 아르바이트생은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해 한가족이 됐다고 회상했다.
| (사진=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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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테이블마다 사연이 다 있다”라며 가게에서 일어난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같이 가게에 와서 공부하던 한 학생은 어느 날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찾아오는가 하면, 해도 해도 안 된다며 하소연하는 손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여학생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때였다. 사장은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한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있었다. 당시엔 3시간의 시간제한이 있었는데 골똘히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학생을 차마 내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 가게 벽에 적힌 수많은 낙서들. (사진=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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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 학생은 늦은 밤이 돼서야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가게를 나서면서 편지 한 통을 전해주고 갔는데 편지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라며 “읽어보니 자신을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었으나 그의 마음을 몰라줬고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자신도 그 남학생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 말미엔 늦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적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사장은 당시 편지를 읽는데 마음이 애잔했다며 비슷한 일화로 한 남성 손님이 가게 2층을 빌렸던 사연도 전했다. 그는 “어느 날 남성 손님이 찾아와 2층을 잠시 대관하고 싶다고 했다”라며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지만 연인과 이별하기 위해 빌리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허락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그렇게 남성 손님은 2층에서 ‘이별 이벤트’를 꾸몄다”라며 “연인을 데려와 그간 자신의 잘못들과 미안함을 고한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 사장은 어느 날 손님으로 온 학생들이 꽃 선물을 하고 갔다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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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사장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만난 수많은 인연을 기억해냈다. 그는 “어렵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많은 이들을 만나며 위로를 받고 웃는 날이 더 많았다”라며 “그 덕에 지금까지 가게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참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요즘 근황에 대해선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으나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이 꾸준히 있어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있다”라고 밝혔다. 방문하는 손님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주로 자주 오는 이들은 20대에서 30대가 많다고 했다.
| 가게 2층 테라스. (사진=송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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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게 아직도 있네”다. 사장은 “어떤 분들은 ‘이제 민들레 영토 말고 다른 이름으로 운영하셔도 되지 않느냐’ 하는데, 그럴 때마다 더욱 굳건히 민들레 영토를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민들레 영토는 나에게 있어 삶의 전부”라며 “20년을 어떻게 했나 싶은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여전히 한 곳에서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말했다.
|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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