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서독을 찾은 박 대통령은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던 서독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 영감을 받는다. 그 중 하나가 식생활이었다.
특히 독일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우유를 마시는 모습이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유는 한국에서 마시기 어려운 귀한 음료였기 때문이다. 마침 서독은 캐나다산 젖소 200마리를 한국에 공수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서독에서 젖소를 들여온 이후 여러 난관 끝에 한국도 우유생산국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흡사 막걸리를 닮은 희멀건 우유는 국민들에게 낯설었다.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우유를 많이 마실수록 국민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 박 대통령은 ‘우유 소비 장려 정책’을 주문한다. 사업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는 ‘사업보국’을 사시로 했던 한화그룹 창업주 고 김종희(1922~1981)회장도 국민들의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김 회장은 1973년 부도 위기에 몰린 낙농업체 대일유업(현 빙그레)을 인수하고 유제품 생산에 뛰어든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도 박 대통령의 ‘우유 소비 장려 정책’에 공감하고 빙그레 개발팀에 직접 우유 신제품 개발 목표를 제시한다. ‘아이도 어른도 좋아할 만한 맛과 생김새를 지닌 새로운 우유를 만들자.’
물음표 얹은 도전, 우유의 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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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모양이 신기해서만은 ‘롱 런’ 할 수 없다는 게 연구팀 판단이었다. 실용성에도 공을 들였다. 마실 때 용기가 기울더라도 내용물이 흐르지 않도록 입구 부분에 턱을 만들었다. 용기는 바나나의 노란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반투명으로 제작했다. 내용물 담기에 급급했던 당시 업계 분위기에 기능과 모양, 색상 그리고 한국적 정서까지 고려한 포장 전략은 혁신을 넘는 실험이었다.
1974년,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이렇게 탄생했다. 국내 유통업계의 전례없는 도전이었기에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당시 업계의 기대도 반신반의. 각진 우유가 판치던 시대, 빙그레가 내놓은 신상품은 마치 ‘UFO(미확인비행물체)’처럼 낯설었다. 노란 빛깔의 우유를 담은 뚱뚱한 우유 앞에 수많은 물음표가 찍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바나나 향을 통해 천편일률적이었던 ‘흰우유’에서 벗어나 국민들이 원하는 맛을 찾아냈다. 고향 뒷동산의 부드러운 곡선을 닮은 ‘달 항아리’ 모양의 디자인에 남녀노소 모두 호감을 보였다. 맛과 용기의 혁신을 동시에 이룬 것이다. 이후 44년이 흐르면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국내 유업계를 대표하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빙그레는 지난해 바나나맛 우유 용기를 특허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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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바’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1998년 300억원, 2001년 6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데에 이어 2007년 가공유 제품으로는 사상 최초로 연매출 1000억원대 기록을 달성했다. 2012년 매출 1600억원 고지를 밟은 후 2013년 173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2015년까지 17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유지했다. 작년에는 1950억원으로 역대 최대 연매출을 기록하면서 회사 전체 실적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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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맛 우유는 2004년부터 미국에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10여 개 국가에 진출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한류 우유’로 불리며 인기가 뜨겁다. 2010년 약 7억원이던 매출은 2016년 약 150억원까지 증가했다. 빙그레는 2014년 상하이에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중국 유통망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박영준 대표이사는 “바나나맛 우유는 고객들의 큰 사랑 덕에 국내 가공유 시장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며 “이제는 바나나맛 우유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제품이 되도록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