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퇴계의 마지막 1년9개월

  • 등록 2020-12-07 오전 6:00:00

    수정 2020-12-07 오전 6:00: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2020년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자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450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깊은 해를 맞아 퇴계의 고향 안동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이틀간 추모행사가 열렸다.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래와 연극, 퇴계선생의 시 창수(唱酬), 어록 낭송 등으로 꾸몄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의 해결 방안을 ‘큰 사람 퇴계’에게 묻고 찾자는 것이 행사의 기획 취지였다.

퇴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먼 역사 속 위인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퇴계는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롤 모델이다. 그는 최고 권력자도 아니고 전쟁 영웅도 아니었다. 시골 평범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와 수양을 통해 스스로 이룩한 인격으로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으며 선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살아간 70평생의 시간과 만남 속에서 일구어낸 배움과 배려 그리고 아는 것을 반드시 실천했던 지행병진(知行竝進)의 자세 때문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믿고 따르며 존경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퇴계는 그런 삶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일상을 떠나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높아지면 남들을 얕잡아보고 특혜를 누리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퇴계는 그럴수록 더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보듬었다. 남다른 사명감도 두드러진다. 퇴계는 벼슬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였다. 그것은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흔 번 이상 사직을 간청하였고, 마침내는 고향으로 물러나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현대인이 퇴계에게 가장 배울 점은 이러한 삶을 생의 끝자락까지 지속하였다는 사실이다. 1569년 3월 69세 노인 퇴계는 귀향 허락을 받고 고향에 돌아와 그처럼 하고 싶은 학문 연마와 강학에 마지막 힘을 기울였다. 제자와 후학들에게 편지를 쓰고 시를 짓고 편액 글씨를 써 보내면서 평생에 걸쳐 이룬 것을 세상에 돌려주었다. 이때 그가 보낸 편지 분량이 놀랍다. 마지막 1년 9개월간 573통을 보냈는데, 한 해 300통 이상이다. 내용도 주목된다. 대를 이을 증손자에게 젖을 먹일 여종을 보내달라는 손자의 편지에 대하여 여종의 갓난애가 죽을 수 있다면서 보내지 않은 것도 작고하기 몇 달 전 편지의 내용이고, 고봉 기대승과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 문제를 토론하며 자신의 학설을 수정한 편지를 보낸 것은 세상 떠나기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일이다. 이렇듯 퇴계는 마지막까지 자제와 후학들을 위해 아낌없는 가르침을 베풀었다.

훌륭한 삶은 당연히 후세에 그 만큼의 깊은 울림을 남긴다. 사후 퇴계는 도산서원을 비롯하여 34개소에 달하는 서원에 모셔졌고, 역대 국왕의 지극한 예우와 선비들의 당파를 초월한 존경을 받았다. 국권침탈기에는 후손과 학맥에서 의병장과 독립운동가가 쏟아져 나왔다. 지난 10월 기준 전국의 독립유공자 1만6282명 중 안동 출신이 368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국제퇴계학회를 필두로 다양한 기관과 단체에서 퇴계학을 연구하고 보급하고 있다. 그의 선비정신을 배우려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을 찾는 발길 또한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제 오늘의 우리가 지향할 바가 명확해졌다. 단순히 건강하게 오래 사는 차원을 넘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우리 앞에는 그 길을 먼저 걸어간 퇴계가 있다.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성찰하고 공부하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착한 사람이 많아지길 염원하며 살아간 삶이다. 퇴계선생 서세 450주년은 단순한 시간의 마디가 아니라 앞서 간 그의 삶을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우리 삶의 품격을 높이는 계기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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