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오매불망 K, 난 그 사랑에 반댈세

  • 등록 2015-12-14 오전 6:06:00

    수정 2015-12-14 오전 6:06:0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부장] 그 처음을 선명히 기억한다. K를 향한 지독한 사랑이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 그때 말이다. 한번 더듬어나 볼까.

1990년대 서태지가 불을 놓은 한국의 가요는 이전과는 확 달랐다. 랩 풍이라고는 “서울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나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전부인 줄 알았던 세대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순간이었다. 여기에 유려한 몸동작으로 띄운 볼거리까지 내세운 파워풀한 ‘멜로디, 랩, 댄스’는 한국가요의 ‘3종세트’가 됐다. 때마침 판이 깔린 것도 호재였다. 드라마가 비장하게 개척한 한류의 등에 덥석 업혀서는 세계로, 아니 일단 아시아로 뻗어나갔다. 선배가 띄운 운을 후배 아이돌이 받아쳤다. 노래가 좀 떨어지면 어떠랴. 잘생긴 외모로 우르르 몰려나와 정신만 쏙 빼놓으면 됐지. 시각적 즐거움, 그게 우리 무기인데.

그래서 뭔가 대접받고 싶었다. 서구의 팝은 맞지만 ‘완전 한국식’인 이 특별한 놀이판을 확실하게 가름할 그것! 코리안 팝? 그래 K팝(K-Pop)이야. 이후 K팝이란 용어는 LTE급으로 언론·정치·경제영역을 관통하는 신조어로 우뚝 섰다. 단순히 한국가요,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결같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엉뚱하게 정치·경제적 이유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어찌 됐든 훌륭히 정착했다. 2012년 ‘K팝’이 옥스퍼드사전에 등재되기에 이르렀으니.

그런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발 빠른 움직임이 드러났다. 온갖 문화상품에 ‘K’라는 성씨(?)를 부여하기 시작한 거다. K드라마, K뮤지컬, K발레, K무용, K클래식, K북, 이 모두를 탈탈 털어 K컬처. 좀더 지나자 문화상품만이 아니었다. 어디에든 가져다 붙였다. K스마일, K푸드, K투어카드, K익스피리언스. CT에도 붙여 K문화기술이라 하고 가장 최근에는 국내 대규모 할인행사인 K세일데이까지 찍었다. ‘닥치고 K’가 돼버린 거다.

한해가 저무는 마당에 되돌아보니 올핸 유난히 K에 대한 사랑이 컸다. 특히 정부가 극진했는데, 연초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한마디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K가 우리 문화의 글로벌경쟁력인 것이 확인됐으니 K를 우리 고유의 브랜드로 정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더랬다. 야심 찬 마스터플랜도 냈다. “글로벌시장서 경쟁하는 서비스산업을 모두 K서비스라 칭하겠노라.” 그러곤 K메드, K투어, K에듀, K디자인 등을 줄줄이 불러내 글로벌서비스화하겠다고 했다.

다 좋다. 잘해보겠다는 거니까. 경쟁력을 갖자는 거니까. 굳이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하나만 짚자. K가 없으면 일이 안 되나. 사실 K가 생겨난 건 대한민국 이외의 국가가 ‘한국의 것’을 가리키고 부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한국이 앞장서 먼저 K를 부르짖고 하물며 한국 내에서만 통용할 법한, 한국인을 상대로 한 영역에도 K를 달아준다. K스마일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잘 웃어주자는 캠페인이고, K익스피리언스는 서울 송현동 대한항공 호텔부지에 조성하겠다고 한 복합문화허브를 말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지난달 K세일데이 때는 경남 어느 전통시장터에까지 깃발이 나부꼈다. ‘K세일데이 특별판매행사’를 한다고.

처음에는 신선했다. 의미도 있었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외국인이 더욱 열광했으니. 자진해서 K를 불러줬으니. 그런데 이쯤 되면 아니다. 과연 오매불망 목을 매는 K가 한국의 품격과 독창성을 휘날리는 공을 해외에서 제대로 세우고 있긴 한 건가. 한국적인 DNA를 찾아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는데 정말 그런가. K부터 달고 보자는 것이? ‘너무 아픈’ 아니 ‘너무 많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난 그 사랑에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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