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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저마다 마음을 차분히 누일 수 있는 곳이 한두 곳은 있을 게다. 누구에게는 그게 산 중턱일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겐 탁 트인 강이나 바다일 수도 있다. 제주도가 좋은 것은 그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가 있고 산도 있다. 억새나 갈대가 바람에 일렁이는 넓은 대지가 있고, 가슴 벅찬 일출과 먹먹한 일몰이 있다. 섬 자체가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 사람의 손길을 조금 보태 갖가지 색을 입히고 모양을 덧붙인 곳이 있다. 예술의 기운 듬뿍 품은 건축물과 그림·조각이 가득한 미술관 돌담길. 진정한 제주의 속살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지붕 없는 미술관… 서귀포 ‘유토피아길’
제주에 올레길만 있는 게 아니다. 더 깊은 제주가 궁금하다면 서귀포의 유토피아길을 추천한다. 유토피아길은 제주 서귀포시 송산동·정방동·천지동·서귀동을 끼고 있는 길. 길이는 4.3㎞다. 걸어서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천혜의 자연포구와 섬, 기암이 줄지어 들어선 해안절경으로 이뤄진 비경만을 좇는 길이 아니다. 제주를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예술풍경이 이 길의 주요 테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걸음이 한없이 느려지듯 유토피아길에서도 마찬가지. 2시간이면 충분한 거리가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길은 샛기정공원에서 시작해 칠십리공원, 천지연로, 자구리해안, 서복전시관, 소암전시관, 이중섭미술관을 거친다. 제주 올레길 6·7코스와도 이어진다.
샛기정공원 입구에는 제주 전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담을 형상화한 이승택의 ‘제주돌담’을 세워 여정의 시작을 알린다. 다양한 크기의 현무암에 제주의 상징인 귤의 단면무늬를 색유리로 새겨 의자로 만든 조성구의 ‘샛기정원’, 한라산 중산간에 남아 있는 고사목을 수집해 제주 조랑말의 형상을 만든 이승수의 ‘영원한 생명’ 등 제주 특유의 자연환경과 삶을 다룬 작품 12점을 ‘숲’이란 주제 아래 설치했다.
화가 이중섭을 테마로 한 작품도 여럿 선보인다. 바다를 주제로 자구리해안길에 설치한 정미진의 대형조각 ‘게와 아이들: 그리다’는 한국전쟁 때 서귀포로 피란 온 이중섭이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을 그리는 장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길을 주제로 한 김범수의 ‘이중섭의 꿈’ 역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중섭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이고, 송재경의 ‘길 떠나는 가족’도 이중섭과 가족이 피란길을 떠나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
이중섭거리는 서귀동 일대에 있다. 유토피아길의 종점이기도 하다. 서귀포시는 이중섭과의 짧았지만 소중한 인연의 끊을 놓지 않았다. 1997년 그가 살았던 옛 삼일극장 일대를 ‘이중섭거리’로 이름 짓고 이중섭이 세들어 살던 초가를 복원했다. 2002년 11월에는 초가 바로 옆에 이중섭미술관을 세웠다. 이 거리에는 야외 전시대, 창작 스튜디오, 공예공방, 갤러리, 카페 등이 늘어서 있다. 이중섭의 작품 중 ‘울부짖는 소’ ‘물고기와 아이’ 등 그림을 형상화한 가로등도 볼거리다. 매월 넷째 주 주말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예술시장도 열린다. 이중섭은 가고 없지만 예술혼은 남아 사시사철 제주도를 문화의 향기로 적신다. 이외에도 기당미술관, 김영갑갤러리 등 서귀포를 빛내는 미술관이 꽤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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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보석처럼 점점이 박힌 거장의 건축물
제주 섬 동쪽의 섭지코지에는 눈에 띄는 건축물이 있다.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나란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건물. 바로 세계적인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글라스하우스’다. 갤러리와 레스토랑이 함께 들어있는 건물로 화려함보다 콘크리트나 유리 등 재료 자체의 심미적 요소를 극대화했다. 또 치밀한 공간구성은 관람객의 탄성을 이끌어내기 충분하다. 건축물로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다양하게 연출하는 능력이 새삼 돋보이는 곳이다.
글라스하우스 뒤쪽에도 안도의 설계로 지은 ‘지니어스 로사이’가 있다. 지니어스 로사이란 ‘이 땅의 혼령’이란 뜻이다. 명상의 공간으로 꾸몄지만 구조가 독특하다. 거대한 벽에 바람의 통로를 내고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며 제주의 하늘을 올려다보게 했고, 건물의 외벽을 액자 삼아 바다 건너 성산일출봉을 배치했다. 건축물에 들어선 사람의 시선을 유도해내는 건축가의 솜씨는 가히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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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에는 또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솜씨도 볼 수 있다. 빗살처럼 창을 낸 서울 강남구의 교보문고 건물을 설계하기도 한 그는 섭지코지에다 단순하되 상징적이고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세웠다. 유리로 만든 피라미드 ‘아고라’다. 낮에는 태양의 기운을, 밤에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서귀포 중문단지 내 자리한 켄싱턴제주호텔은 호텔 자체가 거대한 갤러리다. 일단 외관부터가 독특하다. 거대한 크루즈를 연상케 한다. 마치 서귀포의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느낌을 자아낸다. 내부는 더 화려하다. 작가 30여명의 작품 200여점을 들여놨다. 호텔 로비와 매층 복도가 온통 미술품으로 가득하다. 로비부터 눈길을 끈다. 소나무작가로 유명한 배병우 사진작가의 미디어아트가 프런트데스크 바로 위에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은 지하 2층에서 2층 로비까지 한쪽 벽면을 채운 중국 최고의 도예가 주러겅(朱樂耕)의 ‘도자벽화’다. 주러겅 스스로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자랑한 이 작품은 생명을 키워드로 한다. 여기에 더해 제주화가로 유명한 이왈종을 비롯해 이영학, 또 중국의 자호이·장리천 등까지 다양한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호텔 측은 정기적인 교체를 통해 지역예술가의 작품 공개 통로역할도 한다고 귀띔한다. 함께 운영하고 있는 갤러리 투어 프로그램(064-735-8971)은 호텔 고객에게 미술관처럼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게 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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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즐겁다…동심에 깃든 박물관
1층은 헬로키티 역사관이다. 헬로키티의 탄생과 연도별 변화를 담았다. 또 미디어아트와 미술교육을 즐길 수 있는 교육관과 음악공연관도 있다. 2층은 온몸으로 헬로키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물 놀이터인 에어 포켓은 뛰어놀기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인기. 그 옆에는 홀드를 부착해 암벽타기 체험도 할 수 있다. 27개국의 헬로키티를 만날 수 있는 갤러리관도 있다. 각 나라별로 헬로키티의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다. 빛과 그림자 조명과 음악분수로 헬로키티와 그 친구들이 연출하는 갤러리도 볼 수 있고, 별자리관에서는 타고난 자신의 운을 알아볼 수 있다. 3층은 3D극장과 옥상정원으로 꾸몄다. 3D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3D관을 지나 출구로 나오면 옥상정원과 이어지는데 헬로키티 가족이 마중 나와 있는 듯 핼로키티패밀리 조형물이 서 있다. 날이 좋으면 옥상에서 주변 오름과 제주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도 있다.
제주도 중문단지 내에는 ‘박물관은 살아있다’가 있다. 초등학교 이하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필수코스다. 3만 3000㎡(약 1만여평)에 달하는 대규모 박물관을 착시아트, 미디어아트, 오브제아트, 스컬프처아트, 프로방스아트 등으로 구성했으며 총 148점의 작품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이들 중 매년 20~30%를 새것으로 교체한다.
그중 영화나 명화의 장면을 재미있게 재현한 ‘착시아트 코너’가 인기다. 100여점의 평면그림이 입체로 느껴진다. 관객이 벽에 손만 대고 있으면 인공암벽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에드가 드가의 작품 ‘발바를 이용해 연습하는 무희들’ 옆에서 다리를 걸치고 팔을 올리면 멋진 발레리나로 변신할 수도 있다. 성난 황소를 타고 로데오를 즐길 수도, 공포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1920년에 제작한 ‘얼라이브 통 오르간’(Alive 通 Organ)도 들여왔다. 가격만 3억원대다. 101개의 키와 600여개의 파이프로 제작한 오르간은 디지털 음악장비가 전무하던 당시에 연주자 없이 합주가 가능한 악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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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길=제주국제공항에서 서귀포 방면 1131번 도로를 타고 가다 비석거리에서 동문로터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이어 태평로를 따라 1㎞ 정도 진행해 서귀포중학교에서 우회전하고 500m가량 가면 이중섭미술관이 나온다.
△잠잘곳=서귀포 중문단지에 자리한 켄싱턴제주호텔은 다양한 옵션을 자유롭게 선택해 나만의 윈터 바캉스를 계획할 수 있는 ‘힐링 포 유 패키지’를 내년 3월 20일까지 선보인다. 오는 29일까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40%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부킹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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