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서 역삼동으로…고시생 '대이동'

법조인 양성 로스쿨로 일원화···강남 학원가는 북적
“사시 선발인원 줄어들며 독서실까지 공실률 높아져”
신림동 ‘사시 존치’ 주장, 로스쿨 준비생은 ‘폐지’ 기대
  • 등록 2015-04-03 오전 7:00:00

    수정 2015-04-03 오후 1:01:20

서울 신림동 고시촌 앞 도로에 설치된 현수막. 이달 29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관악을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사시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 신하영 기자)
[이데일리 신하영 조용석 기자] 2일 정오 무렵 서울 관악구 대학동(신림 9동) 서울신성초등학교 건너편. 대학동주민센터 옆 골목 경사 길부터 고시촌이 시작된다.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은 서울시내 다른 도심과 비슷하다. 하지만 정장차림의 직장인은 없다. 대부분 청바지나 트레이닝복 차림의 대학생과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다.

서울대가 지금의 관악캠퍼스 시대를 연 1975년부터 이곳에는 고시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일대에서 하숙을 하던 서울대생 중 사법시험(사시)에 합격하는 학생이 많아지자 타지역 고시생들이 모여들었다. 1990년대부터는 고시학원과 서점들이 잇따라 이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약 20여년간 호황기를 맞았다.

2001년부터 이곳에서 부동산을 운영했다는 정모(60)씨는 “한때는 어림잡아 3만5000명 가량의 고시생이 북적였다”며 “지금은 공시생(공무원 준비생)을 합쳐도 2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림동 고시촌이 흔들리기 시작한 때는 2009년 전국 25개 대학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개원하면서다. 법무부는 로스쿨 1기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법률시장에 진출하자 예고한 대로 사시 선발인원을 줄이고 있다. 2011년 700명이던 선발인원은 △2012년 500명 △2013년 300명 △2014년 200명으로 감축된 뒤 올해는 150명만 선발한다. 2017년에는 50명 선발을 끝으로 사시 자체가 폐지될 예정이다.

선발인원이 줄어들자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사시 준비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정 씨는 “과거에는 고시생 중 80%가 사시 준비생이고 나머지 20%를 외시·행시·회계사 준비생들이 차지했다면 지금은 사시생이 10% 미만”이라며 “2년 전에는 외시(외무고시)도 폐지돼 감정평가사·경찰간부·경찰공무원 준비생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로스쿨 졸업생들도 고시촌으로 모여들고 있다.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시험(변시)에 탈락한 이들은 변시 재수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이 때문에 ‘사시 대비’를 주업으로 삼던 고시촌 법학원들은 행시·감정평가사·노무사·세무사·관세사·경찰간부 대비반을 비롯해 변시 대비반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있다.

값싼 월세에 매력을 느낀 직장인들도 고시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곳 고시원의 방값은 싼 곳을 기준으로 월 15만~20만원 선에 불과하다.

하지만 직장인·공시생들이 빈자리를 채워도 지역경제가 되살아나지는 못하고 있다. 독서실 총무 한모(36)씨는 “로스쿨이 생기기 전에는 전체 열람석 235석을 모두 채우고도 자리가 없어 예약을 받았다”며 “지금은 60%(150석)만 채우고 나머지는 빈자리여서 한 달 매출이 많게는 1000만원이상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고시촌에 남아 있는 사시생은 대부분 3수 이상의 장수생이다. 로스쿨 개원 직후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 ‘로스쿨 진학’으로 갈아탔지만 수년째 사시에만 매달려온 이들은 이 같은 ‘전향’이 쉽지 않다. 로스쿨 선발전형에서 비중이 큰 영어나 학부성적, 스펙(인턴·사회봉사)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올해와 내년, 사법연수원으로 가는 막차를 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시 준비생 김모(36)씨는 “로스쿨 학비를 낼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로스쿨 진학으로 갈아탈 생각은 없다”며 “누구나 법조인을 꿈꿀 수 있는 사시 존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일대는 로스쿨 진학으로 법조인의 꿈을 이루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이날 오전 이 지역 로스쿨 입시 전문학원에서는 100여명의 학생들이 추리논증 수업을 듣고 있다. 추리논증은 언어이해, 논술과 함께 로스쿨 입학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 과목 중 하나다. 학원관계자는 “오전반 수업은 전업 로스쿨 준비생이 대부분이라 학생이 다소 적은 편”이라며 “직장인과 대학 재학생까지 가세하는 저녁 반 수업에는 지금보다 수강생이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강남역 인근에 2곳, 신촌역 인근에 1곳 등 모두 3곳의 캠퍼스로 구성된 이 학원의 등록생은 약 800명. 온라인 수강생까지 더하면 2000명이 훌쩍 넘는다. 전국 로스쿨 입학정원(2000명)과 비슷한 수치다. LEET시험 응시생 8000명 중 약 4분의 1이 이 학원수업을 듣는 셈이다.

수강생들의 나이와 경력은 천차만별이다. 23~27세가 가장 많지만 이보다 어린 수험생도 적지 않다. 간혹 사시를 접고 온 늦깎이 수험생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사법시험을 12차례 낙방한 최모(35)씨는 지난해 말부터 이 학원에서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사법고시 2차 시험을 본 뒤 바로 학원에 등록했다”며 “부모님께 눈치도 보이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계속 고시에만 매달릴 수 없다”고 말했다.

매년 낮아지는 변호사시험(변시) 합격률은 로스쿨 준비생들에게는 부담이다. 법무부는 변호사 과잉공급을 막기 위해 로스쿨 입학정원 대비 변시 합격률을 75%(1500명)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변시 재수생은 매년 누적돼 지난해 3회 시험 때는 응시자 대비 합격률이 67.63%로 급감했다. 학원에서 만난 이모(30) 씨는 “수강생 대부분이 변시 합격과 졸업 후 취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2017년 사법시험이 없어지면 결국 로스쿨 말고는 법조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합격률도 좀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림동 고시촌은 ‘사시존치’를, 로스쿨 학원가는 ‘사시폐지’에 목을 메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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