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역풍 맞은 배달앱…‘기능세분화·인식개선’ 유도해야

[흔들리는 배달공화국]①100일 지난 상생협의체, 결론은 '반쪽 합의'
전문가 6명에 배달앱 산업 방향성 들어보니
‘배달’기능만 있는 앱들로 ‘틈새’ 시장 찾아야
배달앱은 수단, 업주들도 직접 고객 접촉해야
정부 역할엔 “개입 과도해” vs “최임위처럼 해야”
  • 등록 2024-11-15 오전 5:35:00

    수정 2024-11-15 오전 5:35:00

[이데일리 김정유 오희나 한전진 기자] 급속도로 외형을 키워온 국내 배달 플랫폼(앱) 시장이 10여년 만에 고비를 맞았다. 배달앱 업체와 입점업체인 외식 자영업자들과의 상생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정부까지 나서 100일 넘게 ‘상생협의체’를 운영했지만 결국 일부 입점단체만 수용하는 ‘반쪽 합의’에 그쳤다. 또 다른 갈등이 예고되는 지점이다.

한때 혁신의 상징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자영업자들의 공적’으로 불리게 된 배달앱 산업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성장을 이어가야 할까. 이에 대해 유통·경영·소비자 분야 전문가들은 ‘수수료율’ 조정과 같은 단기적 처방이 아닌 배달앱 시장의 경쟁 촉진과 자영업자들의 인식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배달앱 시장 ‘틈새’ 만들어 경쟁 촉진해야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장)은 1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배달앱이 다양한 분야로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사실상 단순 배달 중개업이 아니라 외식산업의 종합 커머스 플랫폼이 된 상황”이라며 “배달앱이 기존 배달의 기능을 넘어서다 보니 이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생기게 됐고 (자영업자들과의)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학회장은 배달앱 시장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기능적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앱들이 어떤 기능까지 제공하는 게 시장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실증작업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오직 배달만 하는 배달앱을 등장시켜 기존 시장에 어떤 균열과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실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배달앱 시장은 ‘배달의민족’(배민)과 ‘쿠팡이츠’의 양강 구도다. 모두 외식 종합 서비스를 표방한다. 기능적으로 오직 배달 중개만 하는 앱이 등장한다면 고착화한 양강 구도 시장에 새로운 틈새를 만들고 동시에 경쟁까지 촉진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플랫폼법정책학회장)도 “현재 배달앱 시장은 당장 수수료율 인하가 문제가 아니라 자영업자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투자가 필요하다”며 “배달앱은 과점 시장인데 이 안에 있는 자영업자들은 과도한 포화 상황이다보니 협상력 자체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최근과 같은 갈등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며 “수수료율 인하에만 함몰되면 영세 자영업자들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자영업자 인식도 바뀌어야”…플랫폼 산업 전향적 접근 필요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1일 “수수료율 인상 행위가 시장지배력 남용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이라며 배달앱 압박에 나섰다. 수수료율 상한제 등 입법 규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정부 움직임에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소 엇갈린다.

박근혜 정부에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낸 임채운 서강대 명예교수는 “공공 영역도 아닌 민간 영역의 수수료율 문제에 정부가 관여하는 건 그동안 전례가 없다”며 “지금 수수료율을 낮춘다 해도 결국 다른 비용으로 부담이 전가되는 풍선효과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실상 ‘언발에 오줌누기’격에 불과하고 갈등도 매번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임 명예교수는 앞으로 자영업자들도 배달앱을 이용하는 데 있어 보다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지금처럼 수수료율만 매번 낮춰주면 배달앱에 자영업자들이 종속되기만 할 것”이라며 “자영업자들은 배달앱을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전시장’으로 활용하면서 이를 통해 주문한 소비자들과 향후엔 앱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접촉해 구매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도 “정부가 구체적으로 관여하고 입법을 한다면 배달앱 시장은 더욱 상생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배달앱을 포함해 플랫폼 산업에서는 해외 거대 기업들이 국내에 진입해 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감안해 조금 더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정부 개입·공공앱 활성화엔 의견 엇갈려

반면 배달앱 산업이 이미 ‘불신의 영역’으로 인식된 터라 정부가 앞으로도 일정 부분 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배달앱 시장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관점에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배달앱 수수료는 계속 오를 수밖에 없고 변화도 심할 수 밖에 없다”며 “최저임금위원회처럼 공정거래위원회가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매년 합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10차례 이상 상생협의체가 이어졌다는 건 자율 조정이 안 된다는 반증”이라고 꼬집었다.

향후 배달앱 수수료율의 기준과 근거를 제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배달앱은 소비자에 큰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이어서 정부가 세부적인 수수료율 자체를 규제하는 건 반대한다”면서도 “이에 대한 근거와 기준은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이어 “매번 배달앱 갈등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끊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대안으로 제기되는 공공앱에 대한 의견들도 엇갈린다.

임채운·정연승·이은희 교수는 “민간 앱과 경쟁해야 하는 공공 앱은 매우 효율적이지 못하고 결국 국민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위험한 발상해야 해서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동일·서용구 교수는 “민간 앱과 다른 접근으로 기능적 설계를 해서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봉의 교수는 이번 배달앱 사태가 향후 국내 유통산업에서 좋지 않은 하나의 선례가 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자영업자와 연관된 편의점, 프랜차이즈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가맹수수료가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배달앱 사태를 기점으로 다른 업계도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번 산업 내 근본적 해결이 아닌 단기요법으로만 때우는 건 유통의 혁신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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