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마찬가지로 기업에도 흥망성쇠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문제는 나라가 망하면 국민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처럼 기업의 도산은 투자자나 주주들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낳는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가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 오면서 금융시스템 내에 감독기관이나 신용평가사 같은 ‘파수꾼’을 두는 이유는 미리미리 대비해 재앙이 가져 올 파장을 최소화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들 파수꾼이 제 몫을 다했다는 평가는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매번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뒷북 대응’이란 비난이 쏟아지곤 합니다. 굳이 대신 변명을 하자면 상장된 기업 수만 2000개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제한된 예산과 인력으로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비상사태를 완벽하게 대응하기란 녹록지 않습니다.
위안이 있다면 신평사들의 평가 등급조정이 과거에 비해 다소 신속해졌다는 점입니다. ‘신용등급 인플레’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늑장 대응이란 비난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이번 SRE 조사에서도 시장 전문가들은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신평사들의 예측가능성이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여전히 영업구조상 ‘갑(甲)’의 위치에 있는 기업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한발 빨라진 등급 조정은 신평사들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감독기관이나 신평사들의 감시 기능이 까다로워질수록 기업들의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문제없다’는 식으로 버텨서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려 순식간에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동양사태 여파로 모 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이 나돌자 회장이 직접 진화에 나서는 모습은 파수꾼의 순기능으로 평가됩니다.
이데일리가 10년 가까이 SRE에 정성과 노력을 쏟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때로는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시장 전문가들의 쓴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하고자 했던 것도 금융시스템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18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18th SRE는 2013년 11월13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mint@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