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속도에 헉헉거리며 겨우 한 숨 돌리나 싶었는데 엄청난 게 나타났다. 단 몇 줄의 프롬프트만으로 영화 예고 한 편이 뚝딱. 골든 러시 시대의 다큐멘터리부터 최신 애니메이션까지 ‘간식 먹는 시간’ 정도면 만들어내는 동영상 생성AI가 등장했다. 오픈AI가 공개한 소라(Sora)다.
현존하는 최고의 영상 생성AI 라는 평가를 듣는 소라는 ‘텍스트 투 비디오(Text to Video)’ 방식으로 최대 1분 분량의 영상을 만들어낸다. 기존의 영상 생성AI가 기껏해야 20초 내외의 영상을 만드는 것에 비하면 탁월한 제작능력이다. 생성된 영상 수준도 경이롭다. 고화질에 자연스럽고 섬세한 표현, 다양한 캐릭터뿐 아니라 명령어로 제시하지 않은 내용까지 적절한 연출 기법을 통해 스스로 서사를 만들고 결과물로 완성한다. 이 같은 정교한 영상은 소라가 명령어를 이해할 뿐 아니라 현실의 물리적 규칙을 이해하고 이를 영상에 적용했음을 보여준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디자이너와 영상편집자가 주 고객인 어도비가 직격탄을 맞았다. 소라 공개 후 어도비 주가는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기대든 우려든 소라의 등장은 챗GPT 이래 콘텐츠,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또 한 번 몰아친 폭풍이다. 지난 해 미국 할리우드의 작가와 배우 노동조합의 동반파업을 되짚어보자. 명분은 OTT플랫폼에 대한 정당한 대가 요구였지만 생성AI로 인한 생존 위협에 대한 호소가 적지 않았다. 챗GPT가 쓴 초고와 수정에 따르는 저작권 인정 문제, AI 딥 페이크로 인한 배우의 초상권 침해 문제, 성우 목소리를 활용한 AI보이스 등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새롭게 발생한 이 문제들은 할리우드만의 것이 아니며 대부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쌓여있다.
사회적인 혼란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딥 페이크부터 가짜뉴스까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AI영상은 시각 이미지 기반으로 살아온 우리의 인식 방식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딥 페이크 콘텐츠의 금지나 삭제 대신 의무적으로 워터마크를 붙이기로 했지만 실효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접근이 용이하고 사용법이 쉬울수록 기술의 오용과 남용은 증가하기 마련이다. 프롬프트 몇 줄에 만들어진 영상을 SNS에 올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확산되는 세상. 그 엄청난 영향력을 미처 느끼지 못할 만큼 기술이 가벼워진 건 기술을 만든 사람들 탓일까, 아니면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 탓일까?
소라의 극사실적인 영상에 신기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건 다가오는 위협을 직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현실감각을 위협하는 기술 앞에서 넋을 놓고 서 있다. AI 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데 AI로 인해 생겨난 사회적 문제 대응에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AI로 인해 재편되는 일자리, 삶의 방식과 구조, 사회적 성숙도, 어느 것 하나 예측대로 ‘행복하게’ 전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흘러갔다.
샘 올트먼은 2024 세계경제포럼에서 “전 세계가 AGI에 더 가까이 갈수록 위험과 스트레스, 긴장 수위가 모두 올라갈 것이고 낯선 일이 더 많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감히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것 같다. AI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지혜롭게 공존하기 위한 첫 걸음, 부지런히 AI 리터러시를 익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