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인터뷰] 윤영달 "직원이 예술가 되면 과자는 예술이 된다오"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직원들에 국악·조각·시 권하는 이유는…
골프장 계획 접고 아트밸리 조성
미술작가 20여명에 작업공간 내줘
지난가을 국악축제로 '떠들썩'
올겨울엔 아트밸리서 눈축제
직원 1000명 조각작품 전시
큰 눈 오는 날이 개장하는 날
  • 등록 2013-12-06 오전 8:31:15

    수정 2013-12-06 오후 2:45:43

“과자는 직원들이 알아서 잘 팔고 있다. 나까지 나설 게 뭐 있나.” 윤영달 회장은 시종일관 ‘껄껄‘하는 웃음으로 주위의 분위기를 바꿔놨다. 손에 쥔 것은 버려진 과자봉지를 모아 만든 소품. 한사코 같이 카메라 앞에 서겠다고 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마치 산허리에 칼을 꽂아놓은 것 같소.” 풍채 좋은 노신사가 한마디 던졌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한 아트센터에서 한창 진행되던 강의를 끊고 꺼낸 얘기였다. 열심히 듣고 꼼꼼히 메모하던 노신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던 끝에 던진 그 파장은 적잖았다. 그날 강의 주제는 ‘자연친화적인 건축.’ 빔프로젝터가 쏘고 있는 건축물은 국내 유명 건축가가 어느 산 중턱에 세운 작품이었다. 그런데 자연과 잘 어울린다고 강조하는 강사의 얼굴 위로 겹치는 그 건물이 노신사가 보기에는 영 아니었던 거다. “둥그런 산세에 예각이 쫙쫙 서 있는 건물을 자연과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나. 고도만 낮춰 파묻 듯 숨겨 놓으면 자연친화적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

노신사는 윤영달(68)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다. 윤 회장은 3년 전부터 건축강의를 들으러 다닌다. 이유가 있다. 그에게 새롭게 떨어진 고민 때문이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일대에 터를 튼 330만㎡(약 100만평) 부지의 아트밸리다. 그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를 고심하던 중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니 그날 던진 한마디가 그냥 해본 얘기는 아니었던 거다. “직선은 무조건 피하라고 했다. 아트밸리 내에선 곡선으로 길을 내고 집을 만든다.”

솔직하게 고백하자. 인터뷰를 위해 윤 회장을 찾은 건 그가 ‘국악하는 CEO’였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국악교육을 ‘무차별적으로 강요’하고 법고창신이란 옛 정신을 살린 국악제를 9년 동안 이끌어왔다. ‘창신제’라 이름 붙인 무대에 기어이 직원 100명을 세워 ‘떼창’도 시켰다. 떼창은 아이돌그룹이 무대에 설 때나 혹은 록페스티벌에서나 하는 건 줄 알았다. 무조건 만나야 했다.

그런데 만남 중 생각이 바뀌었다. 얘기를 풀어놓을수록 윤 회장에게 국악은 별스러운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타고 오르는 거였다. 삶 그 자체인 것에 어떤 치장을 씌워 말하는 게 더 유난스럽지 않나 싶었다. 아트밸리에 발을 딛고 난 뒤엔 확신이 들었다. 아트밸리는 예술을 품은 계곡이었다. 흐르는 물은 풍류가락을 싣고 숲을 채운 나무들은 줄지어 조각품과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 풍광을 앞에 두고 눈에 들어온 건 따로 있었다. 과자 만드는 기업의 회장이 과자보다 더 배려한 예술, 그것이다.

아트밸리에 머문 3시간 남짓 윤 회장이 하는 ‘과자’ 얘기는 끝내 듣지 못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 기자들과 나눠 먹으라며 밀어 넣어준 추억의 ‘종합선물세트’를 보고서야 그가 어떤 기업의 수장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화들짝했다.

▲골프장 될 뻔한 거대한 예술터

아트밸리가 본격적으로 조성된 건 6∼7년 전이다. 산 입구에 매물로 나온 모텔이 발단이었다. 놔두면 다시 모텔이 될 건물.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미술작가들에게 공간을 마련해주자.” 당장 건물을 사들이고 스튜디오로 꾸몄다. 입주작가를 찾았다. 그림을 전공하는 작가 한 명과 조각하는 작가 두 명. 크라운해태창작스튜디오는 그렇게 시작됐다. 현재 작가는 21명으로 늘어났다. 양주의 아트밸리는 물론 천안·아산·대구공장에까지 작가들이 내려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적 특성을 감안, 자연스럽게 조각으로 특화됐다. 이들 중엔 강덕봉, 김정연, 송운창, 전강옥 등 이름과 작품만 보면 알 만한 조각가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실제 아트밸리 안에는 동양에서 가장 큰 철근조각을 제작할 수 있는 거대한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다. 이 역시 모텔을 사들여 개조한 것이다. 굳이 조각가를 챙긴 이유를 물었다. 윤 회장은 그만이 할 수 있는 답으로 정리를 했다. “조각가들이 어려울 때 더 많이 웃더라.”

선대부터 30년째 가지고 있는 이 땅의 원래 목적은 골프장이었다. 선친이 의도한 바였다. 그 뜻을 거스른 건 윤 회장이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는 복합테마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우겼다. 결국 골프장 계획은 무산됐다. “아버님이 내가 반대한다고 사업추진을 안 하셨겠나. 부도가 나고 회사가 어려워지니 못하신 거지. 그래도 아버님은 임종 때까지도 이 일을 서운해하셨다.”

▲“여유 있는 30%가 70%를 리드할 수 있다”

아트밸리에는 조각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시 모텔을 개조한 ‘우리가락 배움터’도 있다. 이 장소는 2007년 창단한 락음국악단이 사용한다. 말 나온 김에 윤 회장의 국악사랑도 짚고 넘어가자.

윤 회장에게 붙은 별칭 중 ‘국악전사’가 있다. 싸우는 투사를 뜻하는 전사(戰士)가 아니다. 국악을 전하는 사람이란 뜻의 전사(傳師)다. 그 국악전사의 지론은 이렇다. “여유 있는 30%가 70%를 이끌 수 있다.” 오해는 말자. 그의 말에는 그 30%가 봉사만 하면서도 여생을 보낼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업이 이윤에 목을 맨다고 치자. 그렇게 쌓은 생산성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나. 사는 일에 풍류를 더한다면 아무도 굶어 죽지 않는다.”

윤 회장의 강고한 의지에 따라 올해 만들어진 프로그램도 있다. 아트밸리서 운영하는 ‘아카데미 국악공부’다. 황병기 명인, 조상현 국창, 안숙선 명창 등이 출동해 국악에 뜻있는 사람과 함께 공부를 한다. 이론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 강점. 민요는 물론 단소와 가야금, 거문고 등 실기의 비중이 절반이다. “모든 사람의 핏속에는 국악 DNA가 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이즘’이다. 그러니 국악하는 데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는 거다.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튀어나오는 것을. “당연히 효율이 좋을 수밖에 없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건 세계음악 중 국악에나 해당되는 일이다.”

국악은 윤 회장의 인생에서 지표이자 목표다. 모토는 이미 만들어졌다. ‘100세시대라는데 여생의 보람을 위해 국악과 함께 가자’다. 이젠 혼자서만 갈 수 없다. 다 이끌고 가겠다고 했다. 국악은 그에게 고비를 넘게 만든 작업이고 철학이다.

성낙중 작가가 작업하고 있는 철근조각 ‘불의 신’. 고뇌하는 인간상을 잡아낸 이 작품의 길이는 15미터에 달한다. 그 옆에 선 윤영달 회장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작품 설명에 열중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스노우페스티벌’은 눈을 기다린다

지난가을은 뜨거웠다.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위원장’을 맡은 윤 회장은 더할 나위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양주 스노우페스티벌’로 정신이 없단다. 스노우페스티벌은 크라운해태제과가 올 겨울 내내 진행하게 될 프로그램이다. 여기서도 고정관념은 깨진다. 흔히 상상하는 겨울레포츠장을 열겠다는 얘기가 아니라서다. 눈을 소재로 한 조각품을 아트밸리 곳곳에 전시하고 눈이 빚는 예술을 즐기자는 것이 취지다. 눈 조각들이 유명작가의 것이려니 지레 짐작하는 것도 아트밸리 안에선 허용이 안 된다. 전시는 온전히 기업 직원들의 작품으로 꾸며진다. 1000명 직원이 조각품 2개씩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아트밸리를 찾은 건 수요일 오후. 평일 그 시간에 크라운해태제과 직원 20여명은 페스티벌 현장에 가져다 놓을 조각품을 제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직원들은 초빙된 조각가의 지도 아래 배우고 다듬고 만든다.

작품이야 그렇다쳐도 산에서 펼쳐지는 페스티벌이 아닌가. 첫 행사인 만큼 찾아올 이들을 위해 산을 다듬는 일이 불가피하다. “길은 있어야 한다. 사람이 다닐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최소한이다. 깎아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말 그대로 자연친화적인 개발을 하려고 노력한다.” 산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구조물도 직접 고안해냈다. 이글루 같이 생긴 지오데식(geodesic) 조형물이다. 마치 커다란 공을 반으로 잘라 엎어놓은 듯한 이 공간을 여러 곳에 세우고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이들을 쉬게 할 생각이다. 이제 기다리는 건 눈이다. “큰 눈 오는 날이 바로 개장하는 날이다.”

▲1000명 직원이 즐거울 수 있다면

딴죽을 걸수록 불리해지는 형국이란 건 알아챘다. 그래도 한 번 시도나 해봐야겠다 싶었다. ‘태평성대일 때야 노래가 절로 나오는 거 아닌가. 기업이 잘 되면 무엇을 못하겠나. 힘들어지면 제일 먼저 쳐내는 것이 문화고 예술이다.’ 그런데 전혀 당황하지 않고 되돌아온 윤 회장의 대답은 이랬다. “과자도 조각이다.” 결국 일상이 문화고 기업이 예술이란 얘기다. “과자가 예술품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예술품에 대한 감동은 멋·디자인·포장까지 포함해서다. 직원들에게 창을 부르게 하고 조각품을 만들게 하고 시를 쓰라 일렀더니 전부 예술가가 되더라. 떼창꾼이 만든 과자, 조각가가 만든 과자, 시인이 만든 과자….”

눈치챘는가. 윤 회장의 방점은 직원에 찍혀 있다. “직원이 아티스트가 되면 제품은 아트가 된다. 즐기게 하니 감성이 높아지고 일의 몰입도도 커지더라.” 생색내기식 인심이 아니란 말이다. “무엇보다 활기가 생겼다. 1000명 직원이 재미있어 하고 활기에 넘치는데 그 여파가 1000명에서 그치겠는가.” 결국 그는 직원을 즐겁게 해 득을 가장 많이 보는 건 그 자신이란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물론 아트밸리가 이윤을 남겨주는 테마파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장기적인 목표가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더 즐기게 해야겠다는 맥락에서다. 윤 회장에게 아트밸리는 여전히 “1000명의 직원이 놀 수 있는 공간”일 뿐이다.

▲“네 것으로 체득했느냐”

윤 회장은 시종일관 특유의 호방한 웃음을 꺼내놨다. 비록 그가 지금은 편한 웃음을 웃고 있다고 해도 그 인생 전부가 밝은 곳에만 있었겠는가. 1998년 부도와 2006년 또 다시 맞은 위기에서 일어선 일은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직접 하는 체험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 체험해봐야 제대로 알고 비로소 체득이 된다. 그러곤 바로 ‘네 것으로 만들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 내 생각은 이렇다. 하는 만큼 보인다.”

CEO에게 가끔 묻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제자백가 누구의 것과 경영철학이 닮았는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이 왔다. “‘삼국지’로 하면 안 될까. 제갈공명이다.” 0.1t이라고 몸무게를 공개한 그는 역시 ‘통큰’ 회장이었다. 그런 그가 이른다. “힐링? 와서 느껴라. 치유는 자연이 해준다. 나무를 보고 풀향을 맡고 열매를 맛볼 수 있다. 거기에 조각품이 있고 우리 가락이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윤영달 회장은…

1945년 서울서 태어나 서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물리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선친인 윤태현 창업주가 1947년 세운 영일당제과에서 출발, 1968년 법인을 전환한 크라운제과에 스물셋의 나이로 입사, 지금껏 한길을 걷고 있다. 회사경영에 참여한 건 1971년부터다.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난 기업을 일으켜 세워 2005년 크라운제과보다 덩치 큰 해태제과를 인수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꺼내놓은 건 2009년부터다. 서울오픈아트페어조직위원회 위원장(2009~2010), 서울국제조각페스타조직위원회 위원장(2012~2013), 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회 위원장(2013)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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