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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이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예기치 못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몰려오는 데다 내년부터 새로운 예대율 규제도 적용 받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다소 공격적으로 대출을 했던 각 은행들이 하반기 들어 보수적으로 전략을 바꾼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분간은 은행 가계대출 문턱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최고 리스크관리 책임자(CRO)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비공개로 회동해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금융연구원 등은 물론 금융시장 인사들도 종종 찾아 강의를 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기업대출이든 가계대출이든 여신이 건전해야 은행이 건전해지는 것”이라며 “요즘은 대내외 악재들이 너무 많다 보니 대출을 보수적으로 가져갈 생각을 대다수 은행들이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은행들이 움츠러든 건 R의 공포가 첫 손에 꼽힌다. 기업과 가계에 빌려준 대출이 경기 침체로 부실화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는 탓이다. 은행권은 미·중 무역전쟁을 가장 큰 리스크로 보고 있지만, 그외에 일본의 수출규제, 홍콩 시위, 영국 브렉시트 등의 악재들도 주시하고 있다. 조재희 신한은행 CRO는 “글로벌 경기 둔화 흐름이 국내의 가계부채 누증과 취약업종 구조조정 등 경기 불안을 자극해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했다.
금융당국의 새 예대율 규제도 주요 요인이다. 예대율은 은행의 원화대출금을 원화예수금으로 나눈 비율이다. 이를 100% 이하로 맞추지 않으면 추가 영업에 제한을 받는다. 새 예대율 규제는 가계대출에 대한 가중치를 15% 올리고 기업대출에 대한 가중치는 15% 내리는 게 골자다. 가계대출을 무리하게 확대하지 말라는 당국의 엄포인 셈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권은 가계대출이 많았던 지난해 은행채를 통해 자금을 대거 조달해 여신정책을 폈다”며 “하지만 올해는 내년 예대율 규제를 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정기예금 같은 예수금 쌓기가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달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640조3823억원으로 한 달새 8조6377억원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