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방관이다]소방관 아버지 생일날 순직한 소방관 아들

故 박재석 소방교 시민에 산소호흡기 벗어준 뒤 질식사
사망 10년 지나 MB정부 때 靑서 보낸 선물에 고마워 눈물
국립묘지 묻히고 싶어한 故 정상태 소방교 법개정 지연 소원 못 이뤄
  • 등록 2018-01-15 오전 6:30:00

    수정 2018-01-15 오후 6:47:34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바보죠 바보. 본인부터 살았어야 했는데….”

송명옥(54)씨는 22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바보라고 했다. 1996년 3월, 박재석(당시 36세) 소방교는 LPG 가스통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쓰러져 있던 시민에게 자신이 쓰고 있던 산소호흡기를 벗어준 뒤 자신은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그래도 남편의 선택을 존중해요. 소방관이 천직이었던 사람이니까.” 송씨는 남편의 순직 표창장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다는 긍지로 살다 사명감에 숨져 간 순직 소방관들의 가족을 만났다.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평택의 한 카페에서 만난 故 박재석씨의 아내 송명옥(54)씨가 남편의 순직 표창장을 들고 있다.(사진=이슬기 기자)
존경하는 소방관이던 아버지, 아버지 생일에 숨 거둔 소방관 아들

故 박재석씨가 자신이 근무하던 평택소방서 팽성파출소 앞에서 서 있는 모습.(사진=송명옥씨 제공)
박씨의 아버지는 미군속 소방관으로 30년 넘게 근무하고 정년 퇴임했다. 박씨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는 소방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나도 아버지처럼 보람된 삶을 살고 싶다’. 박씨는 그렇게 소방관이 됐다.

“갑자기 소방서에서 일이 생겼다며 전화가 왔죠.” 1996년 3월 13일 오후 3시. 송씨는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한다.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달려간 병원에서 송씨는 영안실 냉동고에 누워있는 남편과 마주했다.

소방관이던 아버지를 본받아 그 자신도 소방관이 됐던 박씨는 공교롭게 아버지의 생일에 숨을 거뒀다. 송씨는 “남편은 아버님 따라서 보람되고 자랑스러운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남편 별명이 홍익인간이었어요. 그런 사람이었으니 소방관이 천직이라고 생각했죠”라고 회상했다. 이어 송씨는 “아마 산소호흡기도 기꺼이 벗어줬을 거에요. 자긴 천상 소방관이고 무사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겠죠”라고 했다.

송씨에게 남편은 영원한 ‘36살의 영웅’이다. 그러나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고 기억은 풍화된다. 송씨와 남은 가족들을 돕던 손길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몇년이 지나자 끊겼다.

송씨는 “아무리 영웅이었어도 금방 잊혀지더군요. 그래도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임기 내내 명절 때면 청와대에서 선물세트를 보내줬어요. 그게 그렇게 고마워서 펑펑 울었죠”라고 회고했다. 박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청와대에서 명절 선물을 보내온 것은 이 전 대통령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송씨는 소방관 후배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송씨는 “제천도 그렇고 화재 사고가 나면 출동이 늦었다는 둥 소방관 탓만 하더군요. 소방관을 탓하기 전에 국가가 소방 예산을 증액하고 소방관을 증원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故 박재석씨가 1993년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며 자살을 시도한 노동자를 구조한 뒤 쓴 글. 당시 박씨의 활약은 지역 언론에 언급이 됐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사진=송명옥씨 제공)
“국립묘지에 묻히고 싶어한 남편 올해는 소원 이루길”

이광순(57)씨는 28살 때 남편을 잃었다. 남편 정상태(당시 35세)소방교는 1987년 7월 4살 딸과 돌이 막 지난 아들을 두고 부산의 한 나이트클럽 화재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다 숨졌다.

“지휘차가 별안간 집으로 찾아와서 급하게 갈 데가 있다고 했어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못했어요.”

이씨가 도착한 곳은 병원 영안실이었다. 중환자실에 가겠거니 생각한 이씨에겐 청천벽력같은 현실이었다. “전업주부였고 아이도 어렸죠. 막막하기만 했죠. 하도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남편을 보냈는지 기억도 안나요.”

이씨는 장례식장에서 동료 소방관이 “너 좋아하는 거 마지막으로 한대 피우라”며 영정 앞에 불붙인 담배를 놓았던 기억만은 생생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몸놀림이 재빨라 인명구조요원 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던 정씨다. 이씨는 “겨울에 화재현장을 다녀오면 내복이 시커맸어요. 다쳐서 오는 날도 많았죠. 사고현장을 다녀오면 며칠씩 밥을 못먹을 때도 있었어요.”

故 정상태씨(사진=이광순씨 제공)
정씨는 걱정하는 아내에게 “조심하겠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사람이 보호를 받는다. 소방관은 내 천직”이라고 했다고 한다.

정씨가 시민들을 구하다 세상을 떠났을 때 함께 슬퍼해 준 부산 시민들을 이씨는 잊지 못한다.

이씨는 “당시 부산시장 이름으로 5일장을 치렀어요.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많은 분들이 부의금을 내줬죠”라고 돌이켰다. 일면식도 없던 많은 부산 시민들의 도움 덕에 20대 젊은 미망인과 어린 아이들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

이씨에겐 마지막 소망이 있다. 30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소원을 이뤄주는 것이다. 정씨는 평소 동료들에게 ‘시민들을 구하다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어요. 이제는 남편이 현충원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어요”라며 흐느꼈다.

2005년 관련법 제정 당시 1994년 9월 1일 이후 순직한 소방관만 국립묘지에 안장하도록 한 규정 때문에 정씨는 끝내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지난해 10월 안장대상자에서 제외된 순직 소방공무원의 안장 자격을 소급적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故 정상태씨의 5일장에 부산시민들이 부조금을 낸 기록(사진=이광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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