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누군가가 특별한 상상을 했다. 혹시 이곳에 변화를 주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실험부터 해보기로 했다. 직원들에게 하루에 커피타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15분 줬을 때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역발상이다. 보통의 경영진이라면 아깝기만 할 15분이 아닌가. 그런데 3개월간의 실험결과는 놀라웠다. 연간 1500만달러(약 163억원)의 비용절감이 생기더란 거다. 직원들의 스트레스지수가 6% 떨어졌고 이직률은 12% 선을 지켰다. 업계 평균 이직률 40%와 비교할 급이 아니었다.
촘촘하게 엮인 직무체계만을 고집했던 경영진으로선 기절할 일이다. 생산성 향상이라 하면 으레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이 따라오는 법. 만만한 것이 IT시스템 구축이고 거창한 것이 조직전략 재편성이니. 그런데 생산성이 늘었는데 비용은 줄었다?
이 실험은 MIT 미디어랩의 혁신가로 불리는 저자가 벌였다. MIT 연구진과 함께한 실험의 대상은 뱅크오브아메리카 콜센터 상담원 80여명. 그저 호기심만은 아니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단 얘기다. 바로 ‘빅데이터’다. 그렇다고 엄청난 것은 아니다. 상담원들의 성별·나이 등 인구통계학적 정보와 설문조사, 이메일 자료 등을 모았다. 인간행동분석데이터도 활용했다. 소시오메트릭배지란 센서를 이용해 이동거리, 목소리 높낮이, 동료와의 접촉 횟수 등을 측정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의도한 ‘교훈’이 ‘여유시간을 주면 생산성이 높아지더라’일까. 아니다. 주역은 따로 있다. 빅데이터다. 말 그대로 ‘방대한 자료’를 활용했더니 긴가민가한 가설도 신통하게 입증되더란 거다.
잠깐 2000년대 초부터 빅데이터에 관심을 가져온 MIT 연구를 한번 들여다 보자.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가설은 ‘남성은 정말 치마만 두르면 좋아하나’. 앞서 본 소시오메트릭배지의 전신이라 할 소시오미터를 들이대 남성과 여성의 데이트 수십건에 따라붙었다. 대화내용엔 관심이 없었다. 무의식적 메시지에만 집중했다. 어조의 미세한 변화, 대화의 끊김과 속도, 눈썹을 치켜 올리는 행위 같은 신호 말이다. 결과는? 남성은 여성이 보내는 그 많은 힌트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여성의 목소리에만 반응을 보이더란 거다. 바꿔 말해 최소한 남성의 목소리만 아니면 ‘OK’더란 뜻이다. 거대한 데이터가 결국 입증했다. ‘남성은 정말 치마만 두르면 좋아하더라.’
책은 데이트 실험에서 한껏 고무된 MIT 연구진이 축적한, 그 이후의 빅데이터 행보라고 봐도 될 듯하다. 다만 좀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옮겨갔다. 기업이다. 그러곤 수없는 관찰과 축적과정을 거쳐 명쾌한 결론을 하나 뽑아낸다. 이젠 “빅데이터가 기업을 경영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
‘기업경영이 직관에 휘둘리던 때는 끝났다.’ 저자는 이 장담에 방점을 찍었다. 이젠 기업 내 지형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먼저 최신 센서기술로 쌓은 빅데이터 활용 경영사례를 즐비하게 늘어놨다. 아마존, IBM, 제너럴일렉트릭뿐만 아니라 프로농구팀 마이애미 하트, 매사추세츠 지하철, 스포츠전문채널 ESPN까지 살폈다. 새로운 센서와 빅데이터 분석의 강력한 가동력을 가늠하란 뜻이다.
한 가지 덧붙인 게 있으니 인간행동분석데이터. 기업에서 수집한 이들 데이터의 폭발적인 증가가 경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직원들의 이메일, 인터넷검색, 채팅, SNS의 기록을 다 끄집어내면 ‘그 직원의 일하는 방식’이란 쓸만한 데이터가 만들어진다는 논지다. 따지고 들자면 개인정보수집 논란이 당장 불거지겠지만 일단 접어두자. 여기선 ‘감’이 아닌 과학적 논거가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는 데 목적이 있으니.
▲구글이 해커톤을 하는 이유
무엇보다 저자가 유심히 살핀 건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자주한다는 ‘해커톤’이다. 해커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24시간 프로그램 경영을 펼치는 것. 컴퓨터, 의자, 피자, 커피가 가득한 큰 회의실에 불러 놓곤 쪼개진 작은 팀들이 새로운 프로그램의 최종 데모를 완성할 때까지 서로를 북돋운다. 이것이 제대로 될까. 되더란다. 어떻게? 빅데이터 덕이다.
▲빅데이터가 빅브러더일 수도
저자의 ‘촉’은 이미 내일로 뻗어 있다. 미래의 기업과 과거의 일터가 갈리는 건 오직 빅데이터의 활용여부에 달렸다고 단언한다. 기업구조는 물론이고 미래경제가 혁명적으로 진화할 거란 장밋빛 전망이 가득하다. 왜 아니겠는가.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파악하는 건 기본이고 이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법도 꿰찰 수 있는데. 심지어 팀을 꾸리기 전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효율성은 극대화되고 긴밀한 유대관계는 배가될 터.
그런데 세상일이 데이터대로만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게다가 저자가 ‘특단’으로 내놓은 인간행동분석데이터에는 마땅히 프라이버시 침해란 치명적 약점이 따른다. 해명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데이터에 대한 새로운 합의는 필수’란 조건을 달았다. 그럼에도 기업이 이를 제대로 지켜낼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을 게다. 알아서 잘들 해보란 말밖에는. 시간이든 기술이든 뭐든 좀더 필요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