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이렇게 됐다. 빈대떡은 피자에게 불을 내줬고 잔치국수는 스파게티의 미끈하고 쫀쫀한 탄력에 붓기를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이젠 좀 알아둬야 하겠다. 피자가 도대체 뭔지. 스파게티는 또 뭐고. 때마침 이탈리아 역사저널리스트가 이들 이탈리아의 맛에 대해 제대로 설파했다. 기원과 변천사, 성공스토리까지 시시콜콜히 엮어낸 것이다. 엄선한 17가지를 리스트에 올렸다. 당연히 피자를 1번으로 스파게티, 마카로니, 샐러드, 모짜렐라치즈, 에스프레소, 발사믹식초, 티라미슈 등. 이름만 늘어놓은 건 아니다. 중세 레시피부터 현대 세계적인 식품기업의 성장비화까지 수많은 얘깃거리를 옴니버스식으로 쏟아낸다. 단 하나의 연결고리인 이탈리아 음식만으로. 덕분에 책은 식문화로 꾸민 장구한 인문역사서가 됐다.
▲고대 납작한 접시빵이 ‘피자헛’으로 진화하기까지
이탈리아 국민음식인 피자와 관련해선 황당한 에피소드가 있다. 피자의 본고장 나폴리의 어느 피자집 주인이 화덕에 피자를 구울 장작이 모자르게 됐다. 어찌했을까. 불법벌목? 천만에. 공동묘지에서 관을 파내 그 나무를 불쏘시개로 썼단다. 중세 때 얘기일 거라고. 그것도 틀렸다. 고작 6년 전 일이란다.
그만큼 ‘절대음식’이란 뜻도 된다. 나폴리 사람들은 “피자 한판 먹자”고 말하지 않는단다. “피자 한판 하자”고 한다나. 한국인이 소주를 두고 늘 하는 말과 비슷하지 않나. “소주 한병 마시자”가 아니라 “소주 한병 하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요깃거리였던 것도 맞다. ‘거리의 모퉁이에 서서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먹는 음식’이라고.
그런 피자가 처음부터 피자였던 건 아니다. 고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쓴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통보리로 만든 접시”로 등장한 납작한 빵이 바로 그거다.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올리는 접시였다는 소리다. 당시 배가 너무 고팠던 이들이 접시까지 먹어치우면서 음식이 됐다는 거다. 공식적으로 피자란 말이 등장한 건 1570년 교황 피오 5세의 요리사 바르톨로메오 스카피가 쓴 요리책. 생김새도 달랐나 보다. “두께가 손가락 마디 하나 반이 넘지 않도록 한다”고 정해뒀다니 차라리 케이크였던 셈이다. 현대의 모양에 가까워진 건 역시 나폴리에서란다. 17∼18세기 보급된 토마토가 결정적 역할을 했을 거라고 했다.
▲셰프 전성시대? 다빈치가 셰프였다
요즘 한국은 이른바 ‘셰프의 전성시대’다. 그런데 아마 이 일화 앞에선 명함 내밀기조차 쑥스러워질지도 모른다. 인류역사에서 특별한 천재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셰프였다는 사실. 엄청난 탐식가를 배출한 이탈리아에서도 다빈치는 좀 요란했던 듯하다. 미술 공방의 견습생으로 먹고살 수 없던 젊은 다빈치는 ‘세 마리 달팽이’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그런데 그 다빈치가 어딜 가겠나. 요리에서도 창조본능을 발휘해 접시 위에 빵 한조각과 바질잎 한장을 얹어내는 파격을 선보였다는 거다. 그릇 한가득 음식을 담아 먹던 관습을 과감히 깨고.
▲음식이든 역사든 그냥 생기는 건 없어
스파게티의 역사도 만만치 않다. 초창기에는 ‘베르미첼리’라고, 우리말로 ‘지렁이’란 이름까지 얻었다고 했다. 18세기 요리서는 스파게티 면을 삶는 적정시간을 3시간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와선 90분. 시간이 20분 안쪽으로 줄어든 건 1940년대에 이르러서란다.
모짜렐라치즈가 목장에서 우아하게 방목한 소의 젖에서 나온다고 믿는다면 그 착각도 부숴야 한다. ‘모짜렐라는 물소젖’이란 게 이탈리아에선 진리란다. 물론 세계로 퍼져 나가며 팜유·콩기름까지 동원한 변종을 양산했다지만.
파스타도 그리 편한 음식은 아니었다. 1930년대에는 논쟁이 치열했다. “녹말로 가득한 음식이 가져오는 건 연약함과 비관적인 태도, 무기력함과 중성주의뿐”이라고. 한마디로 야만인의 음식이란 힐난이었다.
음식이든 역사든 그냥 만들어지는 건 없다. 치열한 검증과 다툼을 거쳐 오늘에 이를 뿐이다. 물론 내일도 장담할 순 없다. 다만 저자가 오스트리아 작가 카를 크라우스의 말을 굳이 책 첫장에 박아둔 까닭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통적인 것은 비정통적인 것 속에서 부각되기 마련”이라고. 국적을 잃고 세계를 떠도는 이탈리아 음식의 마지막 자존심을 살리자는 의도였겠지만, 굳이 ‘맛의 천재’가 따로 있는 건 아니란 의미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