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걸의 사진이야기] 사진에도 양극화가 있다

  • 등록 2012-08-02 오전 7:53:33

    수정 2012-08-02 오전 7:53:33

“예컨대 저 아름다운 자연도 지칠 줄 모르는 아마추어 사진광들의 손길에 무릎을 굽히지 않았던가. 이렇듯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면 저녁 노을조차 진부해져 보이는 법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저녁 노을은 사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7년전 작고한 고(故) 수잔 손탁의 저서 <사진에 관하여>에 나오는 글이다. 중독의 무서움은 더 강한 것을 찾는 데에 있다. 그리고 중독은 환각을 동반한다. 환각은 현실과의 거리감이 있을 수록 더 짜릿하다.

얼마 전 태풍 카눈이 한반도에 상륙하던 즈음에, 한 메이저 신문이 1면에 3년전 해운대 앞바다의 험한 파도를 실었던 사건이 있었다. 사진을 찍은 당일, 부산은 태풍의 영역권에 들지 않아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잔잔한 바다였음이 알려지면서 허위보도로 알려지게 됐다.

그 사진이 실리게 된 경위나, 이후 대처과정의 문제는 해당 언론사의 몫이니 여기서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다.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잘 못 나간 사진의 수위였다. 거대한 쓰나미를 연상시키는 사진에서 주변 건물은 당장이라도 쓸려나갈 태세다. 태풍이 연상시키는 시각적 환상이 모두 담겨 있다. 신문 편집자도, 독자도 사실 모두 보고 싶어하는 “그림”이지 않았는가?

평범한 이미지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둘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이미 머리 속에 어떤 상황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옭매여 있다. 그리고 그것에 현실을 꿰어 맞춘다. 주객이 전도된, 현실이 오히려 사진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에도 큰 트렌드가 존재한다. 주로 상업사진들에 그 흐름이 잘 반영된다. 온화한 수채화풍의 사진이 유행할 때가 있는 반면, 컨트라스트 강한 사진들이 인기를 끌 때도 있다. 세상 사람들의 감성을 선도하기도 때로는 반영하기도 하는 결과이다.

팍팍한 현실, 중산층이 증발하고 있는 현실. 국내외 일반 사진애호가들이 즐겨찾는 사진사이트들을 둘러보자 . 과장된 색감, 극단적인 콘트라스트, 현실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광경들로 가득 차 있고, 그런 사진일 수록 호응도도 높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색감과 톤을 가진 사진들은 오히려 외면 받고 있다.

중간톤들이 생략된 극한의 채도와 컨트라스트. 사진의 톤에서도 양극화는 진행 중이다. 우리네 세상만큼 불편한 사진들이다. 자극적 색감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관심을 위한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한, 악순환의 반복까지 닮아 있는.

세상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 이성과 합리성의 역할이 더 중요해 지 듯이 사진에도 원칙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저널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곡되지 않은 정보의 전달과 진실이며, 파인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진정성이다. 스펙트럼과 관용성은 원칙 위에 존재할 때만이 풍부함을 유지한다.

모든 것이 돈과 이익으로 환원되는 자본주의, 예술품의 가치마저 돈으로 평가 받는 시대에 예술가의 순수성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예술품이 거래 되는 시장논리에서의 소비자가 아닌 예술향유자로서의 소비자마저 왜곡된 감성으로 무장될 때 감성의 영역은 타락할 수 밖에 없다.

빛은 편견이 없다. 풍부하다. 세상 역시 그렇다.

풍족한 삶이란 다양성 위에 다채로운 빛깔의 꿈들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풍부함을 담는 사진들, 오랜 시간의 다양성을 담는 사진들. 그리고 그런 사진을 변별해낼 수 있는 기획자와 편집자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져야 할 시점이다. 형식은 내용을 담보하는 그릇이라 하나, 혁명적 시기에는 역으로 내용이 형식을 담보해낸다.

신자유주의의 영향 하에 물질에 대한 탐욕이 극한으로 치닫는 시기, 지금이 바로 내용이 형식을 바꿀수있는시기이다. 변신하라. 사진가들이여

<사진가>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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