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소말리아해적의 공통점은?

양적증가·이동·의식 혁명
거대권력 쇠퇴·분산 불러
완력→두뇌, 대기업→벤처 등
비주류 세력 새 강자로 부상
기득권 견제 긍정적이지만
사회 무질서 초래할 수도
……………………………
권력의 종말
모이제스 나임|528쪽|책읽는수요일
  • 등록 2015-03-11 오전 6:42:30

    수정 2015-03-11 오전 6:42:30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구글과 소말리아해적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힌트는 권력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조직이 딱 하나 일치되는 지점에 놓일 수 있는 배경에 권력재편이란 것이 있단 얘기다. 구글은 애초에 ‘뉴욕타임스’나 ‘타임워너’ 같은 미디어기업의 지배를 무너뜨릴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터져 버렸다. 당장 미국 내 유력 미디어기업의 매출액 비교가 압도적인 숫자 이상의 시장지배력을 보여준다. 지난해 구글의 매출액은 700억달러(약 77조 8000억원)다. 이는 최근 ‘디지털 퍼스트’를 선언한 뉴욕타임스(2억달러)의 35배, 페이스북(18억달러)의 3.9배. CNN과 타임 등을 보유한 미국 최대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30억달러)의 2배 이상이다. 그러면 소말리아해적은? 낡은 소형배와 AK-47 자동소총이 최대 무기인 이들은 대형선박을 나포하며 첨단기술로 무장한 군대와 함대를 농락했다.

처음부터 거창한 장악전략은 없었다. 하지만 두 조직은 기존 거대권력을 헤집고 생태계를 바꿔놨다는 점에서 우위에 섰다. 권력이동의 결정적 현장을 연출한 셈이다. 정치적 파워게임으로서의 권력쟁취는 여기에 없다. 경쟁 격화로 시장서 어떤 자원에 대한 통제가 더 중요해지거나, 공권력의 장벽을 약화시키는 움직임이 도드라지거나, 다른 경쟁자의 진입을 쉽게 하는 신기술이 부상할 뿐.

이 과정을 단순하지만 압축적으로 드러낸 말이 있다. ‘권력의 종말’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알던 그 권력이 우리가 알던 그대로 작동하질 않는다는 뜻이다. 모이제스 나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최고연구원이 내놓은 이 핵심어에는 정치·경제·금융·미디어 등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지배권력과 ‘미시권력’의 권력투쟁 장면이 다 들어 있다. 중심에서 밀렸던 비주류가 주류를 위협하고 신지배층으로 떠오른다. 이동도 한 방향이 아니다. 완력에서 두뇌로,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뚱뚱한 기업에서 날렵한 벤처로, 독재에서 사이버공간으로, ‘전방위로 튄다’.

서른여섯 살이던 1989년 베네수엘라 무역산업부 장관이란 파격 임용 이후 세계은행의 요직까지 두루 거친, ‘진정한 권력자’이던 저자의 역설인지라 양 갈래로 읽힌다. 권력의 무상이냐 권력의 혁신이냐. “권력은 지금껏 우리가 이해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중이다.” 결국 답은 이 열쇠문장의 행간에 있다.

▲권력 붕괴 세 요소…양적증가·이동·의식

무한 경쟁과 극단적 선동으로 오로지 집단이득을 향해 달려드는 권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이유는 심플하다. 권력유지에 필요한 위계질서, 조직력, 자본 등이 허물어지고 있어서란다. 거대기업이 철옹성으로 쌓아놨던 시장진입벽에 균열이 생기고, 정부·정당정책이 거센 비판과 도전에 좌초되기도 한다.

왜? 혁명적 변화 때문이다. 인구가 늘고 상품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양적 증가’, 노동력·제품은 물론 가치까지 빠르게 옮겨가는 ‘이동’, 이로 인해 나도 권력주체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의식’이 그것이다. 게다가 양적증가는 권력통제를 어렵게 하고, 이동은 권력의 벽을 뛰어넘으며, 의식은 권력의 틈새를 공략해댄다. 무너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차라리 승강기에서 내리시지요”

권력구조 다극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됐다. 개인과 작은 세력이 새로운 지배력을 꾸릴 수도 있으니. 가령 미국의 버드와이저를 인수해 세계를 제패한 브라질·벨기에의 복합기업인 앤호이저부시인베브, 오히려 가벼워서 거침없는 비정부기구(NGO)도 권력의 주체란 말이다.

흔히 권력의 득세는 승강기를 타고 오르는 일에 비유된다. 하지만 이젠 버튼을 눌러대는 미시권력의 손가락에 층층이 승강기의 문이 열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국이 패권국가인지 저물어가는 제국인지,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건 정말 소모적이다. 누가 승강기를 탔는지보다는 같이 타고 있는 사회·정치운동, 기업과 산업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권력 쇠퇴’ 긍정의 신호냐 부정의 신호냐

그렇다면 ‘쇠퇴하는 권력’은 어떻게 받아들일 건가. 저자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 강고한 지배세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이룬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사회는 자유로워지고 정치는 민주적이 되며 소비가 다양해질 수 있다. 하지만 치명적 약점도 있다. 정부의 통치력이 무력화된다면 사회의 무질서는 곧 따라붙는 옵션이 될 터. 격렬한 가격싸움이 붙으면 산업을 통째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래도 해법은 미시권력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거대권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범위를 축소할 순 있다. 다만 목적이 패권이 된다면 곤란하다. 무엇보다 ‘내가 주체’라고 말하게 된 그들 간의 신뢰회복이 우선이란다.

올해 초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 이용자와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추천하면서 국내선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됐다. 주커버그는 “전통적으로 정부·군대 같은 거대조직만 가졌던 권력이 개인에게 어떻게 옮겨가는지 탐색했다”란 평을 달았지만, 사실은 좀더 전투적이다. 저자의 관심은 이미 권력개념이 쇠퇴한 ‘새로운 권력세계’로 이동한 뒤다. 그러니 장차 어떤 권력이 어떻게 이동할지를 알아내려 애쓰는 일은 헛수고가 된다.

국가나 도시, 산업과 기업, 정치나 경제지도자가 득세하고 몰락하는지에만 촉각을 세우는 권력강박증부터 내다버리라는 조언도 보인다. ‘권력의 허망함’이란 의미로 밀어붙일 건 아닐 텐데. 사실 그렇게 읽히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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