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후의 세상읽기] 벤처로 도전하기 두려운 시대

  • 등록 2020-11-21 오전 8:00:00

    수정 2020-11-21 오전 8:00:00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



배민과 딜리버리히어로의 합병에 대해 거의 합병하지 말라는 식의 공정위 중간 결과가 나왔습니다. 발표를 보면서 과연 이런 공정위가 있는 나라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배달의민족은 수많은 투자자들의 투자로 적자를 버티면서 성장해 온 회사죠(그리고 현재도 적자입니다). 수확 없는 농사를 짓는 농부가 없듯이, 투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는 데 투자할 투자자가 과연 있을까요?

대한민국 벤처의 가치를 인정받은 사례

딜리버리히어로의 배민 투자자 지분인수는 건국 이래 가장 비싼 값으로 대한민국 벤처의 가치를 인정해 준 사례입니다. 먼저 왜 이러한 딜리버리히어로의 파격적 제안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그 이면에는 딜리버리히어로의 파상적 한국 공략에도 배민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사실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딜리버리히어로는 김봉진 의장의 실력을 인정하고 싱가포르에 조인트벤처를 세워 11개 국가의 경영을 맡기는 계약을 했습니다. 함께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자는 뜻이죠. 그리 되면 한국인 스타트업 창업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성공신화를 쓰게 됩니다.

김봉진 의장이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11개 나라에서 경영을 해본 우리 경영진들이 어떤 공력을 쌓아서 대한민국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라고요. 가슴이 뛰었습니다.

독과점 논란에 막힌 글로벌 진출

그러나 눈앞에 닥친 현실은 글로벌은 먼 나라 이야기고 독과점이라는 단어에 앞길이 막히게 생겼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항공이 아시아나 인수를 나라돈을 들여 하게 한다는 뉴스가 같은 날 나왔죠.

공정위의 요기요 매각 조건부 승인이라는 관점은 시장점유율이 높으면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과연 공정위는 기업이 나쁜 짓을 하면 막을 방도가 없는 조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공정위는 언제라도 대한민국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치면 규제할 수 있는 조직이죠. 그런데도 공정위는 막 자라나는 유니콘 기업의 날개를 꺾으려 합니다.

이미 시장에서는 배달 경쟁력을 가진 음식을 포함한 e커머스 시장을 두고 합종연횡이 일어나고 있고, 쿠팡이츠를 비롯해 네이버, 카카오 등 강자들의 파상공세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말이죠. 쿠팡이 상장한다면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경쟁은 더 활성화될 것이죠.

공정위는 이러한 시장 상황을 알기나 하는 걸까요? 배달앱 시장만 보고 편협하게 경쟁제한성을 평가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배달앱 시장으로 편협하게 평가한 공정위

이런 상황이라면,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유니콘 기업 수십 개를 만들겠다는 정부 정책을 믿을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만약 만든다 해도 또 어떤 명목으로 성장의 발목을 잡을까 하는 걱정이죠.

일본 국적을 가진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한국의 피가 흐르는 자랑스러운 사람이고, 무일푼으로 기업을 일으킨 한국 국적의 김봉진 의장이 독일기업에서 일한 경험으로 나중에 대한민국에 기여할 계획이라면 게르만민족 앞잡이인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러한 국수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 벤처기업인들에게 글로벌이라는 꿈은 접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배민을 통해 어려운 코로나19 시국을 건너온 가게들의 말도 들어봤으면 합니다. 워낙 경제가 팍팍해지니 어려움을 세상에 호소할 수는 있지만, 만일 공격을 위한 공격이라면 그런 마음을 접고 진심으로 소통했으면 합니다.

답답합니다. 후배들에게 대한민국에서 벤처로 도전해보라는 말을 하기 두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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