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월출산 자락에 밴 다산의 묵향과 차향에 취하다

다산 정약용의 흔적찾아 간 전남 강진
18년 강진 유배길 중 10년을 지낸 '다산초당'
다산초당~백련사까지 이어진 다산유배길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히는 '백운동 별서정원'
  • 등록 2017-12-22 오전 6:00:01

    수정 2017-12-22 오후 12:25:55

전남 강진의 백운동 별서정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월출산 밑으로 넓게 펼쳐진 강진다원의 차 밭 정경이 장관을 이룬다.
백운동 별서정원으로 가는 길은 드넓게 펼쳐진 강진다원의 차 밭 정경이 장관을 이룬다. .


[전남 강진=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한국의 차 문화는 언제쯤 시작되었을까. 기록상으로는 신라시대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문무왕이 가야의 시조 김수로 왕의 제사에 차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 널리 민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불교와 함께 급격히 쇠퇴했다. 조선 후기 들어 비로소 대중적인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이 있다. 다산은 초의(草衣) 의순(1786~1866), 그리고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와 함께 조선 후기 차 중흥기를 이끈 인물로 꼽힌다. 이들 중 으뜸은 다산이다. 초의는 다산에게서 차를 배웠고, 추사는 차 보다 서예로 더 이름을 날렸다. 다산의 남다른 차 사랑은 전남 강진 땅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동시에 수많은 ‘뒷이야기’를 남겼다. 다산의 흔적이 차향처럼 그윽하게 베여있는 강진으로 향한다.

만덕산 기슭에 자리잡은 다산초당. 이곳은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기간 중 10여년 동안 생활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500여권의 책을 저술한 곳이다.


◇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의 유배지 ‘다산초당’

만덕산 기슭에 자리잡은 다산초당 가는길 중간에 있는 뿌리길.
강진읍에서 남서쪽을 향해, 구강포 서쪽 길모퉁이를 끼고 비스듬히 내려오면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이다. 이 마을을 병풍처럼 휘감고 있는 만덕산 기슭에 바로 다산의 유배지이자, 다산학의 산실인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茶山)은 차나무가 많았던 만덕산의 별명. 정약용의 호 ‘다산’도 여기서 따왔다. 다산은 장장 18년에 걸친 강진 귀양살이 가운데 다산초당에서만 10년을 지내며, 언제 끝날지 모를 귀향살이를 한겨울 동백꽃처럼 학문과 사상을 붉게 피웠다.

마을을 지나면 다산초당을 향해 가는 숲길이 이어진다. 돌계단을 오르면 대숲이다. 대숲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동무삼아 걷다보면 원시적인 야성미를 느끼게 하는 길을 만난다. 수백살 먹은 소나무 뿌리들이 땅위에 온통 얽혀 있다. 200여년 전 다산도 이 뿌리들을 밟고 묵묵히 올랐을 길이다. 그는 생치기투성이 손을 내밀어 땅을 움켜진 뿌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파른 길을 오르면 다산초당이 묵직하게 서 있다. 초당은 여전히 와당(瓦堂)이다. 원래 작은 초가였는데, 허물어진 것을 1957년 다시 지으면서 기와를 덮은 것이다. 초당 양 옆으로 역시 기와로 이은 동암과 서암, 그리고 좀 떨어진 산머루에 천일각이 있다.

만덕사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여기저기서 집자해 만들었다.
다산이 거주하기 전에는 해남 윤씨 가문에서 산정(山亭)으로 쓰던 곳이다. 윤선도를 배출한 해남 윤씨와 다산은 먼 친척뻘이다. 다산의 모친이 바로 그 집안 출신이다. 유배 중이라 하더라도 핏줄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터. 주막에서 유배를 시작한 다산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서야 비로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초당에 걸린 ‘다산초당’ 현판과 동암에 걸린 ‘보정산방(寶丁山房, 정약용을 보배롭게 모시는 산방)’ 현판은 모두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긴 것이다. ‘다산초당’ 현판은 추사의 글씨를 여기저기서 집자해 만든 것이지만, ‘보정산방’은 추사가 직접 쓴글이다. 동암에는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다산동암’이라는 현판도 함께 걸려 있다.

다산초당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넓은 돌 ‘다조’는 다산이 찻물을 끓여먹었던 차 부뚜막이다.


◇ 유배지에서 차를 배우고, 친구를 얻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다산유배길’ 끝자락에는 수백년 나이를 먹은 동백숲이 우거져 있다.
다산의 흔적들도 여기저기 남아있다. 초당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넓은 돌은 다산이 찻물을 끓였다는 ‘다조(茶俎·차 부뚜막)’다. 뒤뜰에는 가뭄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는 샘 ‘약천’이 있다. 다산은 이 물로 차를 끓였다. 왼편 산비탈로 올라가면 다산이 바위에 손수 쓰고 새겼다는 ‘정석(丁石)’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다. 한 획 한 획에서 옛 사람의 고독을 읽는다. 오른쪽에는 연못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 있다. 연못 한가운데 돌로 산을 쌓고 대롱으로 폭포도 만들어 놓았다. 이 네 가지가 이른바 ‘다산사경(茶山四景)’이다.

다산은 강진 땅에 유배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차를 마셨다. 유배 중 얻은 병 때문에 차를 찾았는데 때마침 강진 만덕산 백련사에서 야생차를 발견하는 행운을 얻는다. 다산초당과 백련산의 거리는 지척(800m)이다. 당시 다산은 아암(兒菴) 혜장이 대흥사에서 백련사로 건너와 머물며 다산을 만나려고 애를 쓴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신분을 감춘 채 백련사로 놀러가 한나절 대화를 나눈다. 둘은 급격하게 친해졌다. 이후 다산은 혜장에게 주역을 가르쳐 주면서 사제관계를 맺는다. 또 차를 만드는 법도 혜장과 백련사 승려들에게 알려준다.

다산이 혜장선사를 만나러 간 백련사. 신라 말에 창건해 1211년 원묘국사 유세가 중창했다.
다산이 혜장을 만나러 가던 길이 바로 다산유배길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800여 미터의 길이다. 걸어서 30분 남짓이지만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서로 어울려 짙은 향기를 뿜어댄다. 동암을 거쳐 천일각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간다. 천일각은 다산이 초당에 거주할 때에는 없었던 정자다. 정자에 올라서면 강진만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다산 또한 이 언덕에서 바다를 자주 바라보았을 것이다. 백련사 인근에는 야생차나무와 수백 살은 족히 넘었을 동백나무 1000여 그루가 있다. 겨울 중턱임에도 볕 좋은 몇 그루에는 동백꽃이 고개를 내밀고 봄이 어디쯤 왔는지 가늠하고 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면 백련사다. 신라 말에 창건해 1211년 원묘국사 요세가 중창했다. 원래 산 이름을 따 ‘만덕사’라 했지만, 현재는 ‘백련사’로 부르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8대 국사를 배출해 전국에서 으뜸가는 명찰로 알려졌다.

호남 3대 정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백운동 별서정원의 정경.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조선중기 처사인 이담로가 조영한 정원이다.


◇호남 3대 정원 ‘백운동 별서정원’

백운동 별서정원으로 들어서면 동백터널이 짙은 숲그늘을 만든다.
다산의 흔적은 백운동 별서정원으로 이어진다. ‘호남의 3대 정원’이라 일컫기도 한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과 견줄 만하다는 것이다. 이곳은 400여 년 전 선비 이담로(1672~?)가 말년에 둘째 손자 이언길(1684~1767)을 데리고 들어와 가 은거하며 짓고 가꾼 별장이자 정원이다. 월출산의 암봉인 옥판봉 아래 세 칸짜리 초가를 짓고, 마당에는 계곡 물을 끌어들여 아홉 굽이 물길을 만들었다. 기기묘묘한 바위는 그대로 두고, 주위에는 100그루의 홍매화를 심었다. 이담로는 세상을 뜨며 ‘평천(平泉)의 경계’를 남긴다. 이는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가 그의 별서인 평천장을 두고 자손에게 “절대로 남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당부해 나온 말이다. 백운동 별서정원은 세기가 4번 바뀌는 동안 아들에서 손자로 12대째 이어졌다.

이곳은 이담로 당대부터 명원(名園)으로 손꼽혔다. 5대 동주(主) 이시헌은 강진에 유배와 있던 다산 정약용의 막내 제자가 됐다. 정약용은 이곳을 방문한 뒤 ‘백운동 12경’을 명명하고 1경 옥판상기(玉版爽氣·옥판봉의 상쾌한 기운)부터 12경 운당천운(穿雲·운당원에 우뚝 솟은 왕대나무)까지 그 아름다움을 시로 읊었다. 다산은 자신을 스승처럼 섬긴 초의선사에게 백운동 뿐 아니라 다산초당까지 그리게 한 뒤 합쳐 백운첩(白雲帖)을 남겼다. 백운동과 다산초당 중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운지 겨뤄보려 한 것이다.

초의선사가 그린 백운동도


별서 마당에는 유상곡수(流觴曲水·술잔을 띄울 수 있도록 만든 구부러진 물길)가 굽이친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정원 마당으로 끌어와 한 바퀴 돌아가도록 설계했다. 민간 정원에 유상곡수가 남아 있는 곳은 이곳뿐이라고 한다. 이 정원은 호남 지역 차 문화의 산실로 꼽힌다. 다산의 차 관련 편지와 한국 최초의 차 전문 저작인 ‘동다기’ 등이 여기서 발견했다.

현재의 백운동 별서정원의 건물은 백운동 12경의 그림을 근거로 재현한 것으로, 과거 자연과 인공을 적절히 배합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까지 완벽하게 다시 만들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먹을수록 젊어진다는 ‘회춘탕’


◇여행메모

△가는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천안분기점에서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논산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까지 간다. 동림IC를 조금 못 가서 나주로 나가는 길로 빠진다. 이후 나주-영암-강진 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면 된다. 고속철도(KTX)를 탄다면 나주역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먹을곳= 강진군도서관 인근의 강진한정식전문점 ‘다강’은 살이 꽉찬 싱싱한 꽃게를 구입해 배, 사고, 다시마 등으로 고아낸 육수와 간장이 더해진 단맛나는 간장게장이 일품이다. 강진읍 중앙로의 ‘하나로식당’은 회춘탕 원조격인 곳이다. 소금을 한 톨도 넣지 않고 12가지 한약재를 1시간 이상 푹 고아서 담백하게 우려 낸 국물에 문어와 전복, 닭을 넣고 끓여 영양은 물론 식감이 아주 좋다. 읍내의 동해회관은 강진만의 갯벌을 누비는 짱뚱어로 만든 탕이 유명하다.

△잠잘곳= 강진의 푸소(FU-SO) 체험 운영농가에서 숙박할 것을 추천한다. 푸소(FU-SO)는 ‘필링-업(Feeling-Up)’과 ‘스트레스-오프(Stress-Off)’의 줄임말이다. 푸소는 ‘덜어내시오’라는 뜻의 전라도 방언이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모두 떨쳐버리라는 뜻이다.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훈훈한 농촌의 정과 감성을 경험할 수 있다. 현재 120곳의 푸소 체험 운영농가가 참가하고 있다. 1인당 5만원(1박 2일 기준)이다.

강진 한정식전문점 ‘다강’의 한정식 한상차림 중 대표메뉴 ‘간장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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