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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사건이 없어 몸을 비틀어대길 3주째. 애꿎은 제인 왓슨을 타박하는 셜록 홈즈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자네는 밥을 3주마다 먹나.”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홈즈에게 사건의뢰가 떨어진다. ‘루시를 찾아주시오.’ 그런데 루시를 찾는 의뢰인이 한 사람이 아니다. 영국 런던 명문 앤더슨가의 애덤과 에릭 형제가 차례로 홈즈를 찾더니 그들의 숙부인 포비경까지 은밀히 홈즈와 접촉한다. 도대체 루시가 누구인가. 1890년대 말 영국 런던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이 사건은 뮤지컬 ‘셜록 홈즈: 앤더슨가의 비밀’의 배경이다.
‘셜록 홈즈’를 창작뮤지컬로 만들 수 있으리라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처음 공연이 오른다고 했을 때만 해도 다들 한 번씩은 되물었다. ‘라이선스가 아니라고?’ 뮤지컬 ‘셜록 홈즈’의 힘은 이처럼 보란 듯 그 허를 찌른 데 있다. 그것도 아주 ‘잘 찔렀다’.
무엇보다 충실하게 만들었다. 3년에 걸쳐 다듬은 치밀한 대본 위에 드라마가 어우러진 적절한 음악과 넘버를 심었다. 악센트를 주되 하나하나가 튀지 않는 적절한 조화는 강점이 됐다. 작품은 1887년 영국서 첫 출판된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착안했다. 그러나 ‘앤더슨가의 비밀’이란 에피소드조차 창작된 것이다.
미스터리물이 흥미를 부추겼다. 추리 장르의 특징이라면 끝까지 끌어올린 절정이 한순간 물 빠지듯 해결되며 카타르시스를 내뿜는 것 아닌가. 여기에 속도감까지 붙었다면 몰입은 배가된다. 물론 단단한 구성력은 필수다. 누구나 뻔히 알 만한 구도는 피해가야 하는 거다. ‘셜록 홈즈’는 이 모든 항목에 대부분 부합한다.
평가는 빠르게 퍼졌다. 지난해 대학로 초연 땐 입소문만으로 378석을 꽉 채우며 ‘소극장 무대가 비좁다’는 아우성까지 끌어냈다. 예매율 98%란 대기록도 세웠다. 앙코르는 당연했다. 올 봄 546석의 중극장으로 옮겼다. 중극장 객석 수 역시 대단할 건 없었다.
이 기세를 몰고 그들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620석 극장이다. 이에 걸맞게 캐스팅 폭을 줄여 ‘선택과 집중’의 효과를 노렸다. 초연 이후 한국형 홈즈의 교과서를 만들어낸 배우 송용진이 한번 더 나선다. 지난 앙코르에서 처음 홈즈로 선뵀던 김도현과 교대로다. 지난 공연서 4명의 배우가 투입됐던 왓슨 역도 구민진과 방진의로 추려서 세운다. 이들 역시 초연부터 홈즈와 호흡을 맞춰온 배우들이다. 다만 루시 역엔 선우를 올려 이제껏 배다해가 꾸려오던 역할에 변화를 줬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넬라판타지아’를 부르며 나란히 유명세를 탔던 이들의 다른 인연이다.
진두지휘는 연출가 노우성이 이어간다. 강약을 준 음악을 입혀 완성도를 높인 극의 흐름은 유지한다. 대신 홈즈 캐릭터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했다. 행동보단 대사들로 홈즈를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얘기다. 영화서나 볼 수 있는 기법을 쓴 빠른 진행, 19세기 분위기 물씬 풍기는 공간을 순간이동 시키는 장치까지, 뮤지컬계에 추리극 신드롬을 낳은 그 전형이 한 번 더 살아났다. 이데일리 주최로 11월4일까지 공연한다. 서울시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다. 02-588-7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