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면 바가지 쓰는 원화

원화 유통지역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늘었지만…
외국계 은행이 주도 4단계 유통 경로 탓
단계마다 마진 챙겨 국내보다 훨씬 비싸
  • 등록 2007-08-06 오전 8:32:14

    수정 2007-08-06 오전 8:32:14

[조선일보 제공] 장면1: 지난 7월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독일에 여행 갔던 기자는 세금(소비세) 일부를 돌려받기 위해 세금환급(Tax Refund) 창구를 찾았다.

기자가 구매물품 영수증과 여권을 내밀자, 창구 직원은 “원화(Korea Won)로 받을래요? 유로화(Euro)로 받을래요?” 하고 물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원화요?”라고 되묻자, 직원은 보란 듯이 세종대왕 얼굴이 선명한 1만 원짜리 신권 뭉치를 흔들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원화로 달라고 했다. 하지만 돈을 받은 뒤 낭패감을 느껴야 했다. 1유로당 1050원밖에 쳐주지 않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환전하면 유로당 1220원은 받는데….’

적용 환율이 왜 이렇게 낮으냐(원화 값이 비싸냐)고 묻자, 직원은 “우리가 (원화를) 사올 때 수수료를 많이 물고 사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장면2: 6월 초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 부근 사설 환전소. 유로화 현금이 떨어져 비상금으로 가져간 원화를 환전하러 이곳을 찾은 여행객 강모(35·회사원)씨는 환율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원화를 유로로 바꾸는 데(원화 매도) 무려 유로당 1500원씩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유로를 원화로 바꿀 땐(원화 매입) 1유로당 800원밖에 안 주고 있었다. 강씨는 “원화 매입·매도 환율 격차가 거의 2배나 돼 기가 막히더라”고 말했다.

원화 유통 지역이 중국·일본·동남아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호주·뉴질랜드 등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은행이 아니더라도, 유명 관광지나 공항·호텔 등에 설치된 큰 환전소에 가면 원화를 사거나 팔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해외 여행자 1160만 시대(2006년), 여행자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정작 해외에서 원화를 바꾸는 소비자들은 그 혜택을 제대로 못 누리고 있다. 현지 환전소의 ‘바가지 환율’ 때문이다. 소비자가 원화를 살 때는 원화 값을 지나치게 비싸게(환율을 낮게) 받고, 원화를 팔 때는 싸게(환율을 높게) 쳐주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유통되는 원화 환율은 왜 이렇게 소비자에게 불리한 걸까? 기자는 독일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한국은행과 시중은행 등을 상대로 취재에 들어갔다. 결론은 외국계 은행이 주도하는 ‘복잡한 유통 경로’ 때문이었다.

▲ ※원화 수출이란 국내 은행이 외국금융기관이나 국내 은행 해외 점포에 원화를 판매(대신 외화를 수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4단계나 붙는 유통마진

한국은행 국제국 이종덕 과장은 “원화는 홍콩 소재 외국계 은행이 주로 사가서 세계 각국 은행, 환전소를 상대로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 1분기 중 해외 수출된 원화 393억 원 중 홍콩으로 수출된 물량이 70%(270억 원)를 차지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일본·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원화 시장의 대부분을 HSBC,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장악하고 있다”며 “이들 은행은 제3국 외국은행이나 환전소에 원화를 재판매할 때 10% 이상 마진을 받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즉, 해외에서 유통되는 원화는 ‘국내 은행⇒글로벌 투자은행(홍콩 소재)⇒제3국 은행⇒현지 환전상’ 등의 4단계 유통 경로를 거치고 있고, 단계마다 중간상들이 마진을 떼기 때문에 최종 소비자 단계에서는 원화 값이 국내보다 훨씬 소비자들에게 불리해지는 것이다.

◆해외직판(直販) 원화 늘려야

따라서 해외 원화 값 바가지를 줄이려면 직거래(直去來) 등의 방식을 통해 유통단계 축소를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은행의 해외지점은 본점에서 직거래로 원화를 사가기 때문에 훨씬 소비자에게 유리한 값에 원화를 공급하고 있다.

예컨대 외환은행 파리지점은 원화를 바꿀 때(원화 매입) 1유로당 1198원(8월1일 현재)씩 쳐준다. 사설환전소보다 150원 가량 높아 소비자에게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해외영업망이 빈약해 이 같은 ‘직판(直販) 원화’는 소비자들에게 그림의 떡에 가까운 실정이다.

국내은행들도 지난해 4월 정부의 해외 환전용 원화수출 자유화 이후 일본·중국·미국·영국·프랑스·호주·뉴질랜드·필리핀·홍콩·베트남 등 10여 개국으로 원화 환전 지역을 확대했지만, 은행 인지도가 떨어지고 지점망이 빈약해 환전 실적은 극히 미미하다.

우리은행의 경우 현재 7개국, 25개 지점에서 원화 환전 업무를 하고 있지만, 최근 1년간 환전실적은 총 4800여 건에 그쳐, 지점당 하루 평균 1~2건밖에 안 된다.

결국 국내 은행들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빈약해 해외 원화 시장을 외국계 은행에 뺏기고 있고, 그 결과 ‘원화의 국제화’가 소비자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외환은행 해외영업본부 남강우 차장은 “가급적 국내에서 환전해가고, 해외에서 세금환급을 받을 땐 원화 대신 현지 통화로 받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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