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친손주 사랑과 외손주 사랑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등록 2020-07-03 오전 5:00:00

    수정 2020-07-03 오전 5:00:00

손주를 돌보느라 갈수록 정신없이 지낸다는 노인들을 주위에서 자주 본다. 올 들어 코로나19 때문에 이런 추세가 더 두드러졌다. 개학이 늦어지거나 또 개학했더라도 정상적인 수업이 어려워 아이들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뒤치다꺼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늘어난 일의 상당 부분이 친조부모 보다 외조부모의 손길을 더 많이 기다리는 것이 근래의 우리 사회 풍경이다. 우리 집도 거의 가까운 것 같다.

이런 모습은 우리 세대의 어린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친정 나들이가 거의 드물던 시절, 큰 행사라도 있어야 따라가서 외조부모를 뵙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죽하면 ‘외손자를 귀애하느니 방아깨비를 귀애하라’는 속담까지 생겼을까. 이에 반해 그 시절 친조부모와는 한집에 살거나 이웃해 살았다. 당시 은퇴한 조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일터로 나간 아들 며느리들을 대신해 한세대를 건너뛴 손자·손녀를 격대교육(隔代敎育) 하는 것이었다. 자연히 너그러운 인성교육이 이루어지면서 할아버지와 손자, 할머니와 손녀 간에 돈독한 조손(祖孫) 관계가 형성되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하는 마음은 필자만이 아니리라.

그런데 이러한 직계가족 중심의 친족문화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강조되던 17세기 중반부터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 이전까지는 남녀 간, 아들과 딸 사이에 별 차등이 없었다. 족보에도 아들딸이 출생 순으로 기재되었고 재산도 아들과 딸이 똑같이 나누는 남녀균분상속이 이루어졌다. 제사 역시 아들딸 구분 없이 돌아가며 모시는 윤회봉사(輪回奉祀)가 행해졌고 딸이 죽으면 외손자가 다 물려받아 외손봉사(外孫奉祀)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래서 16세기 이전에는 재산을 물려받고서 외가와 처가 근처에 자리 잡은 집안이 매우 흔했다. 그러다가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뿌리내리고 점차 한정된 토지를 대대로 모든 자녀에게 나누어 줄 수 없게 되자 장자 중심의 상속문화로 바뀌게 된 것이다. 동족 부락이 형성되고 가문의식이 싹튼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뒤를 이을 세대의 교육이 중요해지자 그 역할을 조부모가 수행하였던 것이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야 한다. 우리 시대는 농업사회와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를 차례로 넘어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촌인구의 도시집중이 일어나면서 대가족제도가 핵가족제도로 바뀐 지 오래다. 그 결과 친조부모와 한집에서 사는 친손자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맞벌이로 수입을 더 늘려야 하고 여성의 사회진출도 당연히 권장해야 하는 시대다. 이런 때에 그전처럼 친손주와 외손주를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자식이 귀여우면 그가 낳은 손주도 귀엽기 마련이다. 내가 도와주는 만큼 자식이 그만큼 고생을 덜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천륜(天倫)이다. 하늘이 맺어놓은 부모 자녀 형제간 변할 수 없는 관계이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어린 친·외손주를 맡기는 자녀의 입장은 어떠해야 할까. 황혼을 바라보는 부모들이 힘에 부침에도 왜 기꺼이 손주를 돌보겠는가. 이것을 떠올린다면 돈과 물질로 보답해 드리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임이 자명해진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모일수록 돈을 내세우면 자존심에 더 상처받는다. 자존심은 나이가 들수록 존중받고 싶고 어려운 처지일수록 간직하고 싶을 것이다. 2500년 전 공자는, 효도는 부모의 몸을 봉양하는 것(養口體)보다 뜻을 받는 것(養志)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몸을 위하는 것은 애완동물에게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부모는 애완동물과 다르다. 나를 낳고 키워주신 아름다운 기억을 갖고 계신 분들이다. 따라서 노부모의 그 마음을 헤아리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고 공자는 깨우쳐 주고 있다. 부모에게 바치는 그런 마음 씀이 새끼 사랑만 할 줄 아는 뭇 동물과 달리 인간만의 고귀한 관계로 다시 이어지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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