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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기주 김보겸 기자] 올여름 휴가를 준비하고 있는 이모(30·여)씨는 여행의 설렘과 동시에 불안함에 떨고 있다. 지난해 여름 겪었던 아슬아슬한 사건 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 떠난 휴가지에서 낯선 남자들이 즉석만남(헌팅) 제안을 거절하자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됐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혹여 이번 휴가지에서도 비슷한 일을 당할까 걱정이다.
최근 신림동 강간 미수사건 등 여성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여성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휴가철을 맞아 여러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같은 범죄의 가능성은 더 위협적으로 다가서는 게 현실이다.
지난 2년간 피서지 범죄만 455건…여성 대상 성범죄 16%, 숨겨진 범죄 더 많을 듯
경찰은 지난 7월부터 두 달간 부산 해운대와 충남 대천 등 주요 피서지를 중심으로 여름경찰관서 66개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피서지 치안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이 경찰관서는 특히 피서지 주변의 불법촬영을 비롯한 성범죄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경찰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여름경찰관서에서 적발된 범죄는 총 455건으로 이 중 대부분 피해자가 여성인 성범죄의 경우 72건에 달했다. 전체의 약 16%에 달하는 수치, 경미한 성범죄의 경우 신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서지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몇 년 새 문제가 커지고 있는 불법촬영 문제에 대한 경계감이 컸다. 특히 최근에는 유튜브 등을 통한 1인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장모(24)씨는 “최근 휴가로 다녀온 바닷가에서 어떤 사람이 스마트폰을 켜고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을 봤다”며 “그 전에 한 유튜버가 해변에서 인터뷰를 한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영상 댓글에 성희롱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난 뒤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기에 휴가를 위해 집을 비웠을 때 생길 수 있는 빈집 범죄에 대한 우려도 신경이 쓰이는 사안이다. 여성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신림동 피에로’라는 영상이 논란이 된 것처럼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혹은 알아낸) 누군가가 집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걱정에 맘 편히 휴가를 떠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휴가지 범죄 막기 힘들어…주변 신고가 결정적”
전문가들은 휴가지 특성 때문에 경찰이 범죄를 모두 막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범죄가 일어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도 적발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신고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결국 이를 목격하는 주변인들의 적극적인 신고 등 도움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피서지는 (여성 대상 성범죄 등) 범행을 하기에 유리한 구조”라고 평가하면서 “이미 범행을 저질렀던 경험이 있었던 범죄자들이 검거되지 않거나 검거된다 하더라도 교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사회에 나오면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 때문에 제 3자인 주변인들이 사회적 개입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범죄 예방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성 대상 범죄는 휴가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이러한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는 휴가지 여성의 노출 등이 어떻든 간에 어떤 상황에서도 인권을 침해해도 된다는 분위기나 교육이 체화되지 않은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해도 여성이 신고를 하지 못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이 많은데 이젠 신고 등과 관련해 여성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진 상황”이라며 “그런 행위가 범법행위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주변 사람이 이를 알리는 등 도움을 줄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