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찾은 울산과 거제는 조선업이 휘청이면서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조선산업이 어떻게 되느냐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수주절벽에 몰린 조선산업의 현실을 안타까워 했고 국제유가 반등과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강화가 발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까지 꿰고 있었다. 다들 남편이, 자식이, 부모가, 아니면 본인이 조선소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었다. 세상 좁다고 얘기하지만 울산과 거제는 특히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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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 화정동에서 대박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최영자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울산동구 부지회장도 그런 경우였다. 그의 남편은 현대미포조선을 다니고 있다. 중형 조선소인 현대미포조선(010620)은 빅3와의 경쟁에서 비껴나 MR탱커나 석유화학제품운반선 등 주력분야를 집중 공략해 나름 양호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현대중공업(009540)그룹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작년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최영자 소장은 “원룸 방 빠지는 거 보면서 뉴스보다 먼저 분위기를 실감했다”며 “해양플랜트사업본부 근처 원룸촌인 꽃바위는 한때 투자 1순위였지만 지금은 투자광고 전단지에 ‘꽃바위 아님’이라고 인쇄할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매매 거래 중개를 월 4~5건은 해야 사무실을 유지할 수 있는데 작년에는 한건도 성사시키지 못한 달도 많았다”며 “공인중개사 업계 동료들을 만나보면 다들 ‘힘들다.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다’라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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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마찬가지다. 거제시청 인근 고현동에서 5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중인 노학일 거일R&I관리 대표는 “작년 4월 이후 중개를 한건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거제시 고현동이나 상문동 등에서 현재 건설중인 아이파크, 힐스테이트, 자이, 푸르지오 단지도 모두 미분양 상태일 정도로 시장이 얼어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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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울산 동구에서 가장 붐비던 월봉시장은 평일 낮시간에도 문닫은 점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물건을 사러온 사람보다 점포를 지키는 상인들이 더 많았다.
월봉시장에서 10년 넘게 식품장사를 했다는 한 상인은 “정치인들이 자기 필요할 때만 한번씩 와서 악수하고 사진찍고 간다”며 “상인들이 왜 어려운지,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생각을 하긴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울산 전하동에서 나고 자랐다는 한 50대 대리운전 기사는 “울산 동구는 IMF 때도 끄떡없었을 정도로 경기가 안타는 동네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대리운전 콜수 뜨는 걸 보면 경기 상황을 알수 있다”며 “그나마 남구에 석유화학 단지, 북구에 현대자동차(005380) 공장 등이 있어 동구의 불황에도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단말기에는 반경 5km 내 콜수 ‘0’가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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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식 한국외식업중앙회 울산동구지부 부장은 “현대중공업(009540) 구조조정 여파에 김영란법 시행, 경주 지진 등이 작년에 겹치면서 시내 음식점들의 매출이 평균 30~40% 감소했다”며 “건물주들은 해가 바뀌니 월세를 올리려고 하고 임대해 장사하시던 분들은 월세 감당이 안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내놓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점포를 인수할 희망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도 구조조정 지속..지역 실업률 상승
국내 조선·해양 업종 종사자 수는 지난 2014년 20만4635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작년 상반기말에는 18만3193명으로 약 10% 감소했다.
동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2월 울산 실업률은 4.3%로 1년전보다 1.3%포인트 상승했다. 전월보다는 0.4%포인트 올랐다. 실업자는 1년만에 8000명이 늘어 2만6000명에 달했다.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 취업자가 20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6.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5월부터 8개월 연속으로 제조업 취업자 숫자가 전년동월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거제를 포함한 경남지역 실업률은 작년 3%를 웃돌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7년만이다. 선박 및 보트 건조업에 대한 생산지수(2010년 100)는 작년 3분기 52.6까지 추락했다.
김영순 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작년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경남에서만 2만명 정도의 실업자가 생겨났다“며 ”조선업 위기가 올해도 계속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만큼 군함, 경비정, 관광선 등 공공선박 발주 등을 통해 수주절벽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R&D(연구개발)와 전문인력 양성으로 고부가가치화를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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