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가 언제 인문학이 밥 먹여준다고 했나"

인간본성, 과학 잣대로 보면
탐구·모방·공감·신앙·융합 5가지
다양성으로 '진짜 융합' 이룰 때
잡스 강조한 건 인문학 아닌
과학·예술 포함한 '핵심교양'
………………………………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장대익|336쪽|바다출판사
  • 등록 2016-06-08 오전 6:17:30

    수정 2016-06-08 오전 7:36:34

인간은 이질적인 것을 섞어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발전을 해왔다. 서로 다른 지식으로 씨줄과 날줄을 엮는 ‘융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가 됐다(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과학이 대세다. 그것도 최첨단과학. 이름하여 ‘인공지능’(AI).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언감생심 아니었나. AI에 인간의 영혼이 팔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긴장할 건 없다. 아직 뭘 팔았다는 건 아니니. 석달 전 ‘알파고’에 잠시 정신을 놓고, 없던 위기감에 우왕좌왕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쨌든 한반도의 인류는 그간 가장 똘똘한 기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스마트폰 따위가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세상에 불현듯 발을 내딛게 됐다. 자의든 타의든.

굳이 한판 싸워 보자고 한 건 아닌데 이후의 현상은 두 갈래를 타게 됐다. AI 낙관론과 AI 비관론. AI가 인간의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문명화된 기술이란 게 낙관론이고, 지능은 물론 감정까지 품은 AI가 결국 인간의 자리를 꿰차는 통제불능의 기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비관론이다.

어차피 미래야 가봐야 아는 거니. 그런데 이 대결 아닌 대결에서 양쪽 모두에 걸친 묘한 실마리가 잡혔다. 인문학이다. 과학이야 이미 멈추지 못하는 바퀴처럼 굴러갈 것이고, 속도를 잡든 제어장치를 달든 스톱 스위치를 누르든 그 역할은 인문학의 몫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문학적 상상력과 소양을 가르친 뒤에 기술을 가르친다면 최소한 AI란 거대한 권력이 세상을 뒤흔드는 미래를 염려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 한 학자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다. 그는 인문학 열풍이 자칫 과학에 대한 저평가로 이어질 것을 걱정한다. 이렇게 나아가단 과학이 테크닉이나 도구 혹은 실용으로만 여겨질 가능성이 점쳐지기 때문이란다. 차가운 과학이 메우지 못하는 빈자리를 따뜻한 인문학이 채워야 한다는 발상은 아예 잘못된 것이라고. 그래서 특별한 제안을 한다. 과학의 시각에서 인간의 본성을 한번 보자는 것이다. 책의 저자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얘기다.

그렇다고 저자가 한쪽이 꽉 막힌 과학자인 건 아니다. 과학과 인문에 양발을 하나씩 담근, 흔치 않은 학자다. 덕분에 저자를 소개할 때는 이력이 먼저 따라붙는다. 평범치 않은 행보가 관심을 끌어서다. 시작은 공학으로 했다. 하지만 ‘단순·무식·과격 공돌이’(오해는 마시라. 저자의 표현 그대로를 옮기다 보니 이렇게 됐다)의 공부에 흥미를 잃고 만다. 그러다 대학원에서 철학이란 걸 접하게 됐는데 신세계가 열리더란 거다. 개념어 하나로 두세 시간씩 토론하는 재미에 비로소 ‘배우는 즐거움’을 터득했단다. 이후 과학사와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참여하며 ‘겹치기 학문’에 눈을 떴고 마무리는 생물철학 나아가 진화생물학으로.

공부는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뜻밖의 시련을 맞게 됐으니 철학과에선 생물학을 했다고, 생물학과에선 철학을 했다고 ‘따돌림’을 당한 것인데. 이른바 ‘경계인의 외로움’을 혹독하게 치렀나 보다. 하지만 독은 약이 됐던 듯했다. 결국 그는 ‘인문적 과학’ ‘과학적 인문학’의 교류에 앞장서게 됐다. 책은 저자가 옛 경계를 승화해 공감과 소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일종의 제안서다.

▲태권V 만드는 데도 사람공부는 기본

그럼에도 저자는 심장을 인문보다는 과학에 뒀다. 과학이 인간의 조건과 문명을 송두리째 바꾼 가장 큰 원동력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판단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꾼 가장 중요한 힘인 것도 틀림없고. 결국 과학은 인간 삶을 고민하는 상상력의 원천이란 거다. 그러니 인간에 대한 분석은 과학이 하는 게 맞단다.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시대적인 성찰의 화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가 과학의 잣대를 빌려 정리한 인간의 본성은 다섯 가지. ‘탐구하는 인간’ ‘따라하는 인간’ ‘공감하는 인간’ ‘신앙하는 인간’ ‘융합하는 인간’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기본기로,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행동을 따라하며 문명을 발전시켰고, 뛰어난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키웠다. 하지만 앞날을 예측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되레 불안감을 쌓아 종교가 필요했고, 이질적인 것을 섞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발전에 가속도를 붙이기에 이르렀다.

▲인간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게 과학

“인간을 달에 보내주는 것이 과학이긴 하지만 인간이 왜 이런 존재가 됐는지 알려주는 것도 과학이다.” 저자의 전폭적인 과학사랑은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를 둘러싼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잡스가 생전에 반복해 강조한 ‘사용자 경험과 인간직관의 결합’이란 건 기술과 인문학의 만남이 아닌 핵심교양과의 만남이었다는 거다. 하이테크가 역사·철학과 만나야 한다고 한 적도 없단다. 핵심교양과 만나야 하지. 그렇다면 핵심교양은 뭔가. 인간·사회·자연을 통틀어 당대 가장 신빙성 있는 지식이란 건데. 여기에 이제야 인문학이 등장한다는 거다. 과학·사회과학·예술 등과 더불어.

따라서 과학의 빈틈을 인문학이 메운다는 접근은 억측일 뿐이라고 했다. 이 기준으로 로봇의 미래를 한번 보자. 로봇이 진정으로 감정을 얻게 되는 날은 동물·인간·기계가 한 직선 위에 나란히 서는 역사적인 날이 될 거란다. 그런데 그때가 되면 정작 로봇은 자신이 부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까지 갖게 될지 모른단다. 똑같은 모델로 양산됐다는 사실에 좌절할 수도 있고. 그때 인간은 로봇에게 무엇을 해줄 건가. 선거권을 쥐어줄 수도, 노동법을 만들어 줄 수도 없다. 인문학으로 설득할 짬은 더더욱 없다.

▲짜장면으로 통일? 다양성 높이는 게 답

책은 3년 전 출간한 동명 저작의 개정증보판으로 출간됐다. 굳이 책을 꺼내 본 건 한가지 이유에서다. 3년 새 무엇이 바뀌었나가 궁금해서다. 사실 세상은 책에서 이미 한 걸음 성큼 걸어 나왔다. 그새 AI가 세상을 돌리고 있지 않나. 정말이지 디지털시간은 갈수록 간격이 좁아져 이젠 한달 전 정보조차 구닥다리가 될지도 모른다. 덕분에 책에선 미래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도 건질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저자가 분류한 인간본성 중 마지막에 찍은 융합은 여전히 ‘핫’하다. 진짜 융합은 역설적으로 다양성과 이질성에서 시작한다는 강조. 급변하는 환경에서 생각의 다양성이야말로 지식생태계를 강건하게 다질 수 있는 결정적 한방이라고.

그럼에도 경계인답지 않게 과학만을 품어낸 건 못내 섭섭한 대목이다. 최첨단과학 열풍이 자칫 사유를 빼버린 기술만 쌓을 게 걱정된다는 얘기 한토막 들어갔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그의 말처럼 ‘기술이란 것도 생물처럼 진화하는 것’인데 알맹이 없이 몸뚱이만 키우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그 한마디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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