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전자책 시장이 드디어 꿈틀했다. 이 미동까지 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태블릿PC와 스마트폰 등 진보를 거듭해가는 IT기기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올초 출판계 빅이슈는 단연 열린책들이 내놓은 ‘세계문학’ 앱. 국내 도서로는 처음 애플 앱스토어의 매출 1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금전적인 성공도 놀라웠지만 더 큰 성과는 ‘고전’ 콘텐츠에 있다. 단순한 앱이 아니란 얘기다. 전자책 업계에 질적 양적 전환을 알리는 이정표가 됐기 때문이다.
교보문고·예스24·인터파크 등 대형 유통사들이 내놓는 전자책 전략도 ‘먹혀들고’ 있다. 예스24는 지난해 9월 단말기 ‘크레마 터치’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었다. 맞불을 놓은 건 지난 2월 나온 교보문고의 단말기 ‘샘’. 인터파크는 100쪽을 미리볼 수 있는 ‘라이트이북’ 서비스로 책탐을 부추긴다.
그런데 전자책 시장은 달랐다. 종이책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거다.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게다가 유통사별로 판매되는 전자책도 각기 다른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요즘 잘 팔리는 전자책’으로 잘 묶이질 않는다는 말이다.
▲전자책의 강자는 로맨스·장르소설
이달 유통사별 도서 베스트셀러 순위는 거의 변화가 없다. ‘꾸베씨의 행복여행’(오래된미래)이 몇 주째 1위를 지키고 있다. 정신과 의사 꾸베씨에게 밀려난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이 3~5위를 오르내리는 사이 차동엽 신부의 ‘희망의 귀환’(위즈앤비즈), 신경숙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 등이 치고 올라온 정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종이책 얘기다. 전자책 베스트셀러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전자책 베스트셀러는 유통사 하기 나름
물론 예외는 있지만 로맨스·장르소설의 강세는 전자책 베스트셀러의 일반 성향으로 꼽힌다. 불을 붙인 건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출간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시공사). 예스24에서만 10만부가 판매되며 지난해 전년대비 184% 성장세를 기록한 전자책의 약진에 단단히 한몫을 했다.
이 같은 성향은 유통사별로 판매순위가 현저히 다른 특이점과도 연결된다. 윤미화 예스24 마케팅팀 대리는 “눈에 띄는 소설이 출간되면 전자책 반응이 좀더 빠른 편”이라며 “목록의 편차는 유통사가 확보한 회원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각 유통사가 벌이는 할인행사, 기획이벤트 등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남창임 인터파크INT 홍보팀 차장은 “전자책 독자층이 종이책보다 적어 유통사가 미는 데 따라 등락폭이 클 수밖에 없다”며 “전자책은 저장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 일단 특가행사가 있으면 신·구간 가리지 않고 판매율이 오른다”고 전했다.
▲주요 구매층은 종이책과 크게 다르지 않아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앱은 전자책이 가벼운 일회용이란 인식을 깨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 2월 예스24가 단말기 크레마에 선뵌 ‘박경리 조정래 에디션’도 다르지 않다. 총 41권으로 구성된 이 에디션은 두 달여만에 540여개가 판매됐다.
크레마에 맞대결 중인 교보문고의 단말기 샘은 누적판매 1만여대를 넘겼다. 성격은 좀 다르다. 전자책 대여가 목적이기 때문. 이로 인해 출판계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지만 전자책 보급 측면에선 ‘고무적’이란 평가도 듣는다. 독자를 전자책에 끌어들이는 동인이 됐다는 얘기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의 진영균 씨는 “기존 전자책 사용자들을 끌어들여 시장을 확대하자는 차원”이라며 “유통업체들의 다양한 시도들이 전자책 시장을 키우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자책이 종이책과 다르지 않은 것도 있다. 독자층이다. 현재 종이책 시장의 ‘큰 손’인 30~40대 여성층은 전자책 구매에도 가장 적극적(지난해 기준 예스24 통계로 30대 22.4%, 40대 13.5%)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20대는 남·여 모두 종이책(같은 통계서 남성 7.0%, 여성 10.3%)보다 전자책(남성 7.9%, 여성 15.0%) 구매율이 더 높은 추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