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땀을 흘리고 산에 올라가 마시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의 청량감은 더할 수 없이 크다. 그러나 물을 마셔갈수록 상쾌함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는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은 지경에 이르면 물의 한계효용은 ‘0’에 이른다. 억지로 더 마신다면 만족감보다는 오히려 고통스럽고 자칫하다 배탈이 날 수 있는데, 물의 한계효용이 제로가 되는 변곡점을 지나 마이너스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재물을 넉넉하게 가진 인사들이 한계효용이 제로를 지나 줄어들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조금씩이라도 나누기 시작한다면 아무 손실 없이도 사회의 총효용을 높여 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나의 작은 희생이 다른 사람에게는 커다란 혜택으로 돌아가는 만큼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베풂은 남에게 도움이지만 베푸는 마음은 자신이 간직하는 기쁨이다. 칸트(I. Kant)도 선한 의지야말로 행복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하였다. 빛과 소금이 되어 나누려면 먼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야 한다. 생각해보자. 근검절약하는 자세도 값지지만 거기에 베푸는 기쁨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겹겹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장자는 “뱁새가 큰 숲을 차지하였다 하더라도 정작 필요한 것은 오직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뿐이다”라고 하였다. 욕심을 억제하라는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뱁새도 쉬어야 할 나뭇가지 하나 정도 보금자리는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사람들을 안심시켜 덜 탐욕스럽게 만들고 나아가 천민자본주의 행태도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저만의 욕심을 자제하는 만큼, 사회의 총효용이 확대되어 더 여유로운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미래에 생활안정이 나름대로 내다 보여야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조바심과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