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대내외 극심한 수요 부족, 정치 리더십의 붕괴에 따른 국정공백과 예기치 못한 미국 대선 결과…. 며칠전 한은 금통위의 화두는 불확실성이었다.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주열 총재는 ‘불확실성’이란 단어만 15차례 사용했다. 국내외 정치 불안이 불길이 되어 위기를 증폭하고 있다.
불안심리의 확산은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를 통해 투영된다.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의 대규모 재정지출 공약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과 임박한 미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경기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현상과 달러화 강세. 주식·채권·원화는 트리플 동반 약세를 보이고 시장은 요동을 친다. 금융시장의 불안심리는 가뜩이나 허약해진 실물부문으로 전이, 경제를 동면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04년 3월12일 오전 11시55분. 이헌재 부총리는 신속히 움직였다. “경제는 확실히 챙기겠다.책임은 내가 지겠다.” 고건 총리와의 회동 이후 대국민성명을 발표한다. 금융기관장, 경제 5단체장과의 연이은 회동. 이어 국제 신용평가사, 해외 투자자들에겐 1000여통의 이메일을 보내 불안심리 차단에 적극 나섰다. 탄핵 당일 폭락하던 증시는 곧바로 반등했고 경제는 며칠 후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이른바 ‘이헌재 효과’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기각 결정이 내려진 5월14일까지 64일. 바로 그 탄핵 정국 기간 한국 경제는 표면적으로는 단절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경제운용 과정에서 리더십의 공백은 느낄 수 없었다. 후일 이헌재는 토로한다. “탄핵 소식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시장’이었다. 당장 뭔가 터진 건 아니지만 ‘불안 심리’가 문제였다. 직접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는 곳마다 ‘시장은 끄덕없다.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다.”
정답은 모두 알지만 각자 계산기만 두드리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 대응하는 일은 물론 녹록지 않은 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건 유감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경제부총리 임명만은 여야 합의로 신속히 진행할 일이다. 정치리스크가 더 이상 경제회생의 발목을 잡는 우(憂)를 범해선 안된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잠재우는 첫 걸음은 결국 경제컨트롤타워의 구축, 바로 경제리더십의 복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