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藝인] 한 점 물방울이 감히 산같은 문자세상을 엿보는구나

갤러리현대서 14번째 김창열 개인전 '더 패스'
1972년 프랑스 마구간 화실에서 시작해
물방울 그리기 48년…거장 반열에 올라
'문자와 물방울 만남' 들여다 본 30여점
천자문등 문자 그린 배경에 물방울 얹어
  • 등록 2020-11-02 오전 3:30:02

    수정 2020-11-02 오전 7:36:42

‘물방울’을 그리고 있는 김창열 화백. 1972년 물방울이 탄생한 이후 화백은 물방울 변주에만 평생을 걸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가 김창열 개인전 ‘더 패스’에서 소개한 화백의 작업영상을 다시 촬영했다(사진=갤러리현대·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옛날 달마대사는 벽만 쳐다보고 앉아 9년 만에 득도해탈을 했다는데, 나는 미친놈처럼 캔버스를 마주하고 앉아 물방울 그리기로 40년을 보냈어도 득도는커녕 근처도 못 갔어.”

이 탄식을 꺼내놓은 게 이미 8년 전이다. 하지만 득도를 못했으면 어떠하랴. 인생은 8할이 과정인 것을. 그는 여전히 수련 중이다. 물방울에 우주의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수행을. 그러다가 결국 한 점 물방울이 감히, 산 같은 문자세상까지 엿보게 했다.

진짜 그랬다. 시작은 소소한 한 점에 불과했다. 물방울의 탄생이 말이다. 48년을 거슬러 보면, 작정해 찾은 것도 흉내를 낸 것도 아닌, 아주 우연한 계기였단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1972년, 화실처럼 쓴 고약한 마구간에서 물을 뿌려둔 캔버스가 계기라면 계기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화가는 말라붙은 유화물감을 떼어내 재활용할 요량이었던 거다. 다음 날 아침,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유화물감이 아니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이었다. 그이가 그날 유화물감을 떼어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물방울은 세상에 나왔다. 이후 ‘미친 변주’는 선택이 아닌 필수코스였을 거다. 유화를 기본으로 아크릴·수채·먹, 캔버스가 아니라면 신문지·모래·나무판·한지, 여기에 붓과 에어브러시 등등, 오로지 물방울 하나 맺히게 하는 데 동원한 도구는 차고 넘쳤다.

김창열의 ‘회귀 NSI91001-91’(1991). 가로길이가 333.3㎝(세로 197㎝)인 작품은 왼쪽에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으로 시작하는 천자문을 옮겼다. 단 한 점으로 새기듯 박은 물방울이 마치 이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사진=갤러리현대).


‘물방울 화가’라 불리는 김창열(91) 화백. 작가는 몰라도 물방울은 다 안다. 국민화가는 아니어도 ‘국민물방울’은 된다는 소리다. 이쯤 되면 사그라질 듯 살아 있는, 떨어진 게 아니고 바닥에서 배여올라온 듯한, 저 신비로운 물방울이 언제 어디서 흘러왔는지는 중요치 않게 된다. 그냥 모두 아는 것처럼 여겨지니까. 그래서 간혹 이런 얘기도 하지 않았을까. “평생 물방울 하나뿐”이라고. 과연 그런가. 그 물방울이 여전히 진화 중이라면, 작은 못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를 이뤄 누구도 가지 못한 곳에 이미 가 닿아 있다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 펼친 ‘더 패스’ 전은 그 방향을 가리키는 자리다. 물방울 하나가 세상만사에 치이다가 문자라는 세계, 그 진리가 이끄는 곁에 도달한 순간들을 목도케 하는 자리다. 1976년 인연을 맺고 화백의 개인전을 열네 번째 연다는 갤러리현대가 아직 못다 전한 화백의 장구한 스토리 중 한 편으로 이번 개인전을 마련했다. 화백의 화업 50주년을 기념한 2013년 이후론 7년 만이다.

갤러리현대에서만 열네 번째 개인전이라는 김창열의 ‘더 패스’ 전 전경. 왼쪽 ‘회귀 NSI91001-91’(1991) 옆으로 비스듬히 2000년대 다채로운 색을 입혀 완성한 작품들이 보인다. 차례로 ‘회귀 SP201404’(2013), ‘회귀 PBL08007’(2008), ‘회귀’(2009)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물방울의 탄생, 문자와의 만남

길, 보도, 통로를 지나 행로, 방향, 궤도까지, 전시명 ‘패스’(path)가 가진 의미 그대로다. 전시는 화백의 작품세계 중 묵직한 축이고, 심오한 맥이라 할 ‘문자와 물방울’을 들여다봤다. 한 획, 한 자씩 ‘그린’ 문자에, 이를 경외하듯 감싼 물방울의 조화 혹은 합일을 이룬 작품을 선정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재석 갤러리현대 디렉터는 “화백의 작품세계에서 물방울과 문자가 어떻게 만나고 변화했는가에 초점을 맞춘 전시”라고 소개했다. “어린 시절 화백이 조부에게 배웠던 천자문과 붓글씨를 그림에 들이고 나아가 우주의 철학을 옮겨내는 경지에 이른 과정을 드러내려 했다”는 거다. 보이는 건 물방울인데 왜 굳이 문자가 깔려야 했는지 말이다.

김창열의 ‘회귀 PK91003’(1991). 물방울보단 글씨가 강렬한 작품이다. 초록색 바탕의 배접한 한지를 캔버스에 올리고 행서로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이라 ‘썼다’. 하늘과 땅은 검고 누르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는 뜻. 화백은 어린 시절 조부에게서 천자문과 붓글씨를 배웠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김창열의 ‘회귀’(1987). 한자 붓글씨에서 가장 기본적인 필획만 남긴 위로 물방울이 영롱하다. 195×330㎝ 규모의 작품은 먹을 쓰지 않고 유화물감만으로 완성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사실 화백의 ‘문자’는 그이가 전념해온 세월에 비해 덜 알려졌다. 동양철학의 텍스트라 할 천자문·도덕경이 말하는 문구를 때론 해서체로 초서체로, 때론 인쇄한 듯, 때론 겹치고 겹쳐 버리고 버려 형체는 온데간데없이 필획만으로 옮겨냈던 수고에 비해 말이다. 그 작업에 화백은 ‘회귀’란 타이틀을 붙였다.

전시는 ‘회귀’ 연작이 절정에 도달한 1990년대를 중심으로, 멀리는 1975년부터 가까이는 2018년까지, 가히 ‘김창열 대표작’이라 할 30여점을 걸었다. 시작점은 ‘휘가로지’(1975)다. 화백이 다락방에서 찾아냈다는 신문 ‘피가로’ 1면에 물방울을 얹었다. 직접 그린 문자 대신, 현실세계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신호가 잡히는 작품이랄까. 무장강도 세 명이 은행을 털었다는 기사 위에 맺힌 물방울이라니.

김창열의 ‘휘가로지’(1975). 프랑스신문 ‘피가로’ 1면에 수채물감으로 물방울을 얹었다. 전시는 이 작품을 ‘문자와 물방울이 만난 시작점’으로 봤다. 10호 규모(53.5×42㎝)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000년대 들어서 ‘회귀’는 색을 입는다. 노랗고 붉은, 또 초록의 바탕이 등장하는데. 가장 많이 봤다 할, 갈색의 거친 마대를 기억한다면 더없이 신선하고 강렬하다. 기법도 다채로워졌다. 물감을 뿌리기도 하고 배접한 한지를 붙이기도 하고, 그 위에서 화백은 자유롭게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을 주선했다. 문자를 쓰고 그리고, 라텍스로 만들어 붙였다 떼어 음각을 만들고. 물방울은 또 어떤가. 돋보기처럼 가리개처럼 번지고 숨으며 문자와 랑데뷰를 한다.

김창열의 ‘회귀 PBL08007’(2008). 화백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회귀’에 색을 입혔다. 라텍스로 문자를 만들어 붙였다 떼는 기법으로 새기듯 남긴 음각이 선명하다(사진=갤러리현대).


△세상 만물은 사라지기 직전 가장 아름답다

평남 맹산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은 1945년 월남했다. 격랑과 혼란을 피해 떠나온 고교생 신분이었다. 이후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했다. “내 유일한 스승”이라고 했던, 한국 리얼리즘 회화의 거장 이쾌대(1913∼1965)가 운영하는 성북회화연구소에서였다. 기량이야 어디 가겠는가. 1948년에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한국전쟁으로 이내 학업은 중단되고 만다. 그뒤 얼마간은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 강제 입대, 경찰학교 졸업, 경찰전문학교 근무까지. 물방울을 탄생시킨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건 한참 뒤인 1969년이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도움을 받아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한 직후였다고 했다. 그러곤 3년 뒤, ‘물방울 회화’가 공식적으로 탄생을 신고한다. 파리에서 연 살롱전에 걸린 거다. 다시 3년 뒤엔 드디어 한국에 왔다. 1976년 갤러리현대(당시 현대화랑)서 연 첫 개인전이었다. 이미 프랑스화단에 번진 파문은 한국에서도 예외일 수 없었나 보다. 모든 작품이 ‘솔드아웃’ 되는 대성황을 이뤘다니.

김창열의 ‘회귀 PA1991’(1991). 세로길이가 2m에 달하는 작품(194.5×162.5㎝)은 천자문을 옮겨 그린 문자를 배경으로 마치 대치하듯 물방울을 배치하고 있다. 마치 두 세계가 조우하기 직전의 상황을 지켜보는 듯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이의 물방울은 끊임없이 움직였고 지금도 움직인다. 어느 각도인가에 따라,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보는가에 따라, 내 속이 편안한가 들끓고 있는가에 따라 달리 보인다. 화백은 이미 다 거쳤을 과정이 아닌가. 그게 수양인 거고, 그게 성찰인 거니까. 가라앉히고 반복하고 다독이고 비우는.

화백은 2009년 프랑스생활을 정리하고 서울에 온전히 정착했다. 구순 노화가는 스스로의 ‘회귀’를 오래전부터 작품으로 예고해왔던 거다. 물방울 하나로 세상 만물은 사라지기 직전 가장 아름답다는 것도 알렸고, ‘진짜’와 ‘진짜 아닌 것’의 경계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가도 보여줬다. 그러니 이젠 물방울이 거대한 문자진리를 미혹하는, 절정의 그 순간에 한번 빠져보라고 한다. 전시는 29일까지.

‘물방울’을 그리고 있는 김창열 화백과 작업실 전경. 1972년 물방울이 탄생한 이후 화백은 물방울 변주에만 평생을 걸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가 김창열 개인전 ‘더 패스’에서 소개한 화백의 작업영상을 다시 촬영했다(사진=갤러리현대·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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