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24시]한수원이 투잡 뛴 직원에 '경고'만 한 이유

한수원 시간제 근로자 주말 병원서 알바하다 적발
겸업금지 불구 생계형 알바 감안해 '경고'조치로 그쳐
"근무형태 다변화…겸직제한 기준 재정립해야" 지적
  • 등록 2020-05-01 오전 6:30:00

    수정 2020-05-01 오전 10:50:26

정부 산하엔 340개의 공공기관이 있습니다. 41만594명(2019년 말 기준)이 이곳에서 일합니다. 개중에는 2만여 명이 일하는 한국전력 같은 대형 공기업도, 영화진흥위원회 처럼 직원수가 100명이 안되는 소규모 공공기관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우리 삶과 밀접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들입니다. ‘신의 직장’이라며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고된 일과에 치이기는 공공기관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데일리는 앞으로 [공공기관24시]를 통해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 또 이들이 하는 일을 조명해봅니다.

이미지투데이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한국수력원자력가 운영하는 A발전소 정문에서 출입증 발급 업무를 하는 김성태(가명)씨. 그는 주 20시간 시간선택제 근로자다. 김씨는 2016년 4월부터 4년째 이곳에서 일했다. 시간제 근로자지만 성실히 근무에 임해 주변 평판도 좋다.

한수원 감사실은 지난 2월 김씨에 대해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그가 모 병원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이중 취업해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이라면 당연히 징계 대상이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은 한수원과 같은 공공기관 직원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다른 일을 하지 못하게 제한한다. 한수원 자체 지침에 따르면 최소 견책에서 해임까지 가능한 사안이었다.

조사 결과 제보 내용은 사실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1년 동안 공휴일에 주 2회씩 인근 병원에서 접수 아르바이트를 했다. 타인 명의의 위장취업이 아니었을 뿐 겸직 자체는 김씨도 인정했다.

문제는 김씨의 딱한 사정이었다. 김씨는 평균 연봉 9065만원(2019년 정규직 기준)인 한수원 소속 직원이지만 주 20시간짜리 시간제 근로자인 탓에 한수원에서 받는 급여로는 생계유지조차 어려웠다.

세금과 4대 보험을 제외하고 김씨가 손에 쥐는 돈은 월평균 109만3200원(2019년 기준)이었다. 2019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105만4316원)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김씨가 월 6~7회씩 병원 접수일을 겸업하며 받은 50만1667원(12개월 평균)을 더해봤자 2인 가구 최저생계비 174만3917원에도 못 미쳤다.

김씨는 감사 과정에서 “생활고로 부득이하게 겸직할 수밖에 없었고 회사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병원의 주말 파트타임 일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한수원 감사실도 고민에 빠졌다.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한수원 감사실은 결국 이달 17일 담당 본부 총책임자가 김씨에 대해 엄중 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사안을 종결했다. 한수원 법무실이 현행법을 최대한 포괄적으로 해석해 김씨의 겸업이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영리 업무의 범위라고 결론 내린 덕분이다.

공운법은 원칙적으로 공공기관 임·직원의 영리 목적의 업무 겸직을 금지한다. 그러나 공운법 시행령의 기준이 되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5조에 ‘시간제 공무원은 기본 생활에 필요하다면 본업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겸직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법무실은 이를 근거로 김씨의 겸직을 합법적 테두리내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고 한수원 감사실은 김씨가 사전에 회사에 이를 신고하지 않은 것만 경고처분했다.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기는 했지만 사실 김씨가 사전에 겸직 신청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수원에서 여태껏 영리 목적 겸직을 신청한 사례는 전무하다. 한수원 임직원이 최근 3년 동안 겸직한 사례는 총 76건인데 모두 비영리 목적이고 사전에 허가를 받았다. 원자력 관련 학회나 협회, 재단, 위원회 참석이나 대학 강의 같은 일이었다.

영리목적의 겸업은 공공기관 뿐 아니라 민간기업에서도 엄격히 금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업인 회사일에 차질을 빚고 비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지난 2018년 한국공항공사에서는 팀장급 간부가 본인이 맡고 있는 업무와 관련한 회사를 차려 일감을 몰아준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 사례에서 드러나듯 기업의 채용방식과 근로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무조건적인 겸업금지가 능사가 아닌 경우가 늘고 있다. 신한은행이 최근 내놓은 보통사람 금융생활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 중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투잡족’ 비율은 2018년 8.1%에서 지난해 10.2%까지 늘었다. 투잡 이유는 65.7%는 생계문제를 들었다.

한수원도 이같은 문제에 대한 해법 마련을 고심 중이다. 경고조치를 받은 뒤 김씨는 병원 일을 그만 뒀다.

한수원 감사실 관계자는 “채용조건과 근무형태가 다양해지고 회사 내 전일제-시간선택제 직원이 혼재돼 근무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임직원 겸직 제한금지 규정에 대한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이 지난 27일 발간한 보통사람 금융생활보고서 중 ‘투잡족’ 본-부업을 병행하게 된 이유 설문사 결과. 신한은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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