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의 싸움 특허범죄…대전지검 전문성 앞세워 속도전

특허범죄 처리 지연에 기업 파산 등 보호시기 놓쳐
중점검찰청 지정 후 檢 독자처리 탄력
신속처리절차인 특허기술변론절차 '무기'
변리사 출신 검사, 특허청 파견 자문관 등 합류
특허범죄 형사사건 대전지검 관할 문제 대두
  • 등록 2018-11-09 오전 6:00:00

    수정 2018-11-09 오전 9:05:32

[대전=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중소기업 대표 A씨는 지난 2006년 ‘하수관로의 토사유입방지 장치’ 특허권을 출원했다. 하수관에 물만 흘러들어가게 하고 패트병 등 쓰레기를 걸러주는 장치였다. A씨와 직원들이 수년간 수없이 밤을 새워가며 개발한 기술을 적용한 장치다. 차별화한 기술력을 앞세워 회사는 연 매출 2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문제는 2014년에 터졌다. 동업자 B씨가 회사를 떠나 동종유형의 상품 9종을 출시하면서 판매량이 급감했다. A씨는 B씨 제품이 자신 특허를 베낀 특허침해라고 판단했다. B씨에게 ‘침해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지만 B씨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A씨는 행정심판의 일종인 특허심판원 심결(결정)을 제기하고 이어 손해배상소송, 형사고소 등에 나섰다. 그러나 기나긴 법정싸움을 벌이는 동안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타검찰청건=타검찰청에 접수돼 대전지검으로 이송·수사촉탁·자문요청된 건 , 대전지검 제공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특허범죄는 시간과의 싸움

특허침해 당사자에게 가장 소중한 게 시간이다. 특허를 침해당하고 기술이 유출되면 주워담기 어렵다. 수사와 소송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유사제품은 이미 시장을 잠식해버린다. ‘하수관로 특허’ 사건을 담당한 김현곤 대전지방검찰청 검사(변리사)는 “고소인이 얼마나 억울했던지 특허법 고소만이 아니라 횡령·영업비밀침해 등 온갖 고소를 다했다”고 했다.

사실 특허범죄는 검찰에 부담스러운 사건이다. 신속한 판단을 필요로 하지만 기술의 유사성, 특허침해 여부 등을 판단하는 데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힌 탓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서다.

강지성 대전지검 특허범죄조사부 부장검사는 “특허범죄 한건은 일반 형사사건 30~40건의 수고와 노력이 들어간다”며 “검사가 쓰는 결정문 한건이 40~50페이지짜리 논문 수준”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검찰이 특허침해 고소 사건을 독자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이성희 대전지검 차장검사는 “특허범죄는 원래 특허심판원 심결과 손해배상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는 ‘시한부 기소중지’를 했었다”며 “그러다 당사자는 보호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돌이켰다.

검찰은 2016년 5월 특허범죄 시한부 기소중지를 폐지했다. 특허범죄 수사에 자신감이 붙어서다. 중심에 서 있는 곳이 2015년 12월 특허중점검찰청으로 지정된 이후 특허범죄 수사에 특화한 역량을 쌓아온 대전지점이다.

대전은 특허법원과 특허청, 대덕연구단지, 카이스트 등이 위치해 있는 지식재산권의 메카다. 대전지검은 특허중점청 지정 이후 변리사 경력 등의 검사 4명, 특허청 파견 자문관 4명, 지식재산권 전문교육 수료 수사관 6명 등 전문인력을 수혈해 수사 전문성을 높였다.

특허범죄와의 전쟁 특허기술변론절차 무기로

‘특허기술변론절차’는 대전지검이 시간이 생명이 특허범죄와의 싸움에서 꺼내든 주력 무기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등이 검사와 특허수사자문관 앞에서 공개변론을 벌임으로써 특허 침해에 대한 기소 여부를 빠르고 정확하게 가릴 수 있도록 한 신속처리절차다.

특허범죄 당사자들이 특허제품과 유사제품을 직접 가지고 나와 기술적 쟁점을 시연하고 피의자 신문, 기술자문, 대질조사 등을 한번에 끝내자 사건 처리에 속도가 붙었다.

검찰은 앞의 A씨 사건도 지난 6월 11일 특허변론절차를 거쳐 두달 만인 8월말 특허 침해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의 빠른 판단에 피해자 A씨는 “5년 묵었던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특허범죄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벌어진다. 생활용품 유통전문점 ‘다이소’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자 이에 편승한 상표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허청 제공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2014년부터 포털사이트 카페를 개설·운영하면서 홈페이지 화면에 ‘다이쏘 중고차’라는 간판을 내건 중고차업자 이모(28)씨는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부경법) 위반으로 기소돼 대전지법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마치 다이소가 중고차 사업에 뛰어든 것처럼 속여 다이소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고아라 대전지검 검사는 “인터넷 쇼핑물이나 개인 블로거가 범죄라는 생각없이 유명상표를 차용했다가 범죄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는 “특허범죄가 늘고 있지만 처리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사건처리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다이소 상표권 분쟁은 ‘헤어다잇소’, ‘빌라다이소’와 ‘원룸다이소’ 등 유사 사건이 이어졌고 모두 대전지검 자문을 거쳐 부경법 위반으로 기소돼 법원에서 벌금형이 선고됐다.

강지성 부장검사는 “사회 전반적으로 지식재산 보호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지식재산권 보호수준은 낮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은 국내 지식재산권 보호수준을 세계 44위, 54위로 평가했다.

대전지검이 특허범죄에 특화한 역량을 발휘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특허범죄도 직접 기소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대전지검은 피의자가 대전 외 지역에 살면 수사 자문 등을 해당 지검에 해줄 수 있지만 직접 기소를 할 수 없다. 관할권이 없어서다. 이렇다보니 공소유지에 어려움을 겪거나 자문 뒤 실제 관할 검찰의 기소 지연으로 특허침해 피해가 커지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허 범죄 사건을 재이송하는 경우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사건 처리가 지연돼 피해가 특허 침해를 받고 있는 피해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며 “특허 범죄 관할에 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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