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성기 최정희 기자] 주요 시중은행들이 내년엔 대출확대를 통한 자산불리기 경쟁을 자제하는 등 ‘돈줄 죄기’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9년 반 만의 미국 금리 인상과 내년부터 본격화할 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 모드에 돌입한 모습이다. 미 금리 인상이 단기적으로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지만,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예년보다 최대 두 배 이상 자산 증가 폭을 키운 은행들이 보수적인 방향으로 경영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 금리 인상이 신흥국의 위기나 국내 기업의 위기로 번질 경우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기업부실 등 업계 전반에 불어닥칠 수 있는 파장에 맞춰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내년도 은행권 가계대출 목표치 예년 대비 ‘반 토막’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내년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5% 내외로 잡고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2016년 경영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는 안심전환대출을 포함해 올해 평균 두 자릿수 이상의 가계대출 증가세를 보인 것과 비교해 절반 이상 줄어드는 셈이다. 그만큼 은행들이 보수적인 대출 영업으로 경영 전략의 초점을 ‘성장’보다는 ‘안정’에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른 은행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신한은행은 올해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보다 17%(13조 3000억원) 가량 늘어넜지만 내년엔 대출 목표치를 대폭 줄일 예정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내년 대출 목표치가 올해 증가율보다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 역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인 11.4%(12조 7000억원) 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4~5%를 증가율 목표치로 잡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내년에 성장 보다는 안정에 초점을 맞춰 영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풍선 효과’ 등 급격한 부작용은 없을 듯
임형석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시중은행들이 대출 총량을 늘릴 수 없게 됐고 기업 여신 강화로 대손충당금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미 금리 인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 은행들로서는 조심스럽게 경영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목표치를 줄였다고 해서 당장 ‘풍선 효과’ 등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형석 실장은 “‘풍선 효과’는 수요는 그대로 있으면서 공급이 급격히 줄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내년에는 수요 자체가 줄어들 판”이라며 “주담대 규제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올해보다 안 좋아지면서 자연스레 대출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개인금융팀장은 “정부도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자산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주택담보대출은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니 중금리 상품 등을 통해 신용대출 쪽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