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멀리 가기엔 너무 가까운 단풍

늦가을 서울 '등잔 밑' 단풍산책 명소 4선
- 서울숲
은행나무 300그루 빽빽…하늘도 땅도 '노란 세상'
- 덕수궁 돌담길
연인 헤어질까 두려운 길?…만나지 않기에 아까운 길
- 메이필드호텔 산책로
형형색색 참나무 벚나무…유럽풍 건물과 어우러져
-...
  • 등록 2015-11-13 오전 6:15:00

    수정 2015-11-13 오전 6:15:00

개장 12년을 맞는 올해, 최근 리뉴얼을 마친 서울 서편의 메이필드호텔 산책로. 호텔 내에 조성한 약 3㎞ 정도의 길에서는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대왕참나무부터 단풍나무, 화살나무, 생강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 형형색색의 늦가을 정취를 즐길 수 있다.


[글·사진=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낙엽이 지고 있다. 길거리에 단풍이 흩날린다. 가을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가 보다. 바람이 스산하니 마음이 심란하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늦가을 풍경이다. 꽉 막힌 도로를 뚫고 서울을 벗어나자니 준비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서울을 떠날 필요가 없다. 서울 도심에서도 얼마든지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아볼 곳은 수두룩하다. 꼭 멀리 가야만 하는 게 여행은 아니지 않나. 가까운 곳에서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이 곧 여행이고 힐링이다. 단 하루만 시간을 내도 충분하다. 그것도 어려우면 몇시간만 투자하자. 눈이 호강한다. 올가을 마지막 단풍이다.

◇서울의 허파에 노란 물들다 ‘서울숲’

미국 뉴욕에는 도시의 허파인 센트럴파크가 있다. 서울에도 있다. 많은 서울시민이 뚝섬으로 기억하고 있는 서울숲이다. 뚝섬은 조선시대부터 한양의 교통요충지였다. 한양과 경기, 강원 일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둑섬, 둑도라고 했다. 군대가 출병할 때 둑기를 세우고 제사를 지낸 것이 유래다.

근대에 들어서는 용도가 조금 바뀌었다. 1908년 이곳에 정수장이 국내 최초로 들어섰다. 뚝도 정수장이다. 당시 궁과 사대문 일대 주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던 곳이다. 이후 1986년 서울시가 뚝섬체육공원으로 만들어 서울숲 조성 전까지 서울시민의 휴식처 역할을 하게 했다.

지금의 서울숲을 조성한 건 2005년 6월이다. 서울시는 뚝섬에 4조원대에 달하는 개발이익을 포기하고 서울시민을 위한 ‘웰빙공간’을 조성했다. 규모만 115만 6498㎡(약 35만평)다. 이 가운데서 아직 덜 알려진 은행나무길은 서울숲의 숨은 보석이다. 다른 곳과 달리 은행나무를 촘촘하게 심어 조성한 것이 특징.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300그루의 은행나무가 색다른 운치를 선보인다. 해가 잘 들면 노란잎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아직 은행나무 수령이 많지 않아 아름드리나무가 아니라는 게 단점이지만 가늘고 길게 뻗은 은행나무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다가 산책길 군데군데 놓인 벤치에 앉아 샛노랗게 물든 나무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멀어져가는 가을의 마지막 운치를 느껴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서울숲 은행나무길


◇그윽한 옛 정취와 함께 걷다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의 으뜸가는 산책로다. 시청역 출구 앞 덕수궁 대한문을 출발해 경향신문사까지 약 1㎞ 남짓한 코스다. 일명 정동길로 불린다. 요즘 이 길에선 덕수궁 돌담 너머 노란 은행나무며 빨간 단풍나무가 가을을 붙들고 있다. 마치 가을을 보내기 싫다는 듯 발길을 잡는다. 고궁 담장 아래 남아 있는 빛 고운 단풍잎이 한차례 내린 비에 젖을 때면 이 가을도 막을 내릴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에는 한국 개화기 역사의 숨결이 살아숨쉰다. 본래 덕수궁은 조선시대 세조가 남편을 잃고 궁을 떠나는 맏며느리 수빈 한씨(인수대비)를 가엾게 여겨 개인 사저로 마련해 준 것. 그 뒤 한씨 장남 월산대군의 집이었다가 임진왜란 뒤에는 선조가 임시 거처로 사용한 것이 계기가 돼 경운궁(慶運宮)이 됐다. 광해군, 인조, 고종황제가 이곳에서 즉위했고, 순종 즉위 직후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대한제국의 황궁이 됐다.

이 배경 덕에 부근에는 당시 미국이나 영국, 러시아의 공사관이 자리를 잡았다. 또 선교사가 세운 정동교회, 국내 최초의 호텔인 손탁호텔, 그리고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들어섰다. 개화기엔 영국공사관 부근 길에 가구점이 즐비했는데 당시 외국인은 이 거리를 가구거리 혹은 장롱거리라 불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덕수궁 돌담길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연인이 이 길에서 데이트를 하면 헤어진다는 것. 풍수가는 덕수궁 안에 왕의 승은을 입지 못한 후궁이 모여 살던 처소가 있었는데, 그들의 원혼이 질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로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가다보면 서울가정법원을 만나기 때문이란 얘기도 있다. 지금은 옛 서울가정법원이 있던 자리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덕수궁 돌담길 전 구간이 131년 만에 길을 텄다. 그동안 영국대사관의 보안문제로 대사관 정문부터 170여m가 ‘통행금지’ 구역으로 막혀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마음껏 그 앞을 걸을 수 있다. 올가을 마지막 풍경이다.

덕수궁 돌담길


◇서울 서편에 숨은 단풍 명소 ‘메이필드호텔’

서울의 서쪽, 정확히 말하면 김포공항 옆에 자리한 메이필드호텔도 늦가을 정취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물론 서울에는 신라호텔이나 밀레니엄 서울 힐튼 같이 산책로가 잘 가꾸어진 호텔도 있다. 하지만 늦가을 산책로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단연 메이필드호텔이다.

메이필드호텔의 전신은 국내 대표적인 조경회사인 정림조경. 호텔이 들어선 곳이 바로 정림조경이 수목을 가꾸던 자리다. 50년 동안 키운 수목 사이로 약 10만㎡(약 3만 2000평) 부지 위에 호텔을 세운 것이다. 말 그대로 숲 속의 호텔이다.

메이필드호텔은 호텔 내에 산책로를 조성했다. 약 3㎞ 정도의 가벼운 산책 코스다. 특이한 것은 도심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것.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대왕참나무부터 단풍나무, 화살나무, 생강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 형형색색의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수목도 함께 있어 늦가을 조용한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18세기 유럽의 한 교회를 옮겨 놓은 듯한 고풍스러운 외관도 늦가을 풍경과 어울린다. 특히 메이필드의 랜드마크인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면 마치 중세의 한 성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메이필드호텔은 올해로 개장 12주년을 맞았다. 최근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쳤는데 콘셉트는 ‘자연’과 ‘휴식’이다. 사계절 내내 도심 속에서 가족과 여가, 문화를 모두 즐길 수 있는 복합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마련해 자연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했다. 먹는 음식도 마찬가지. 전통한식당 ‘낙원’과 궁중음식체험 인증식당인 ‘봉래헌’은 슬로푸드의 정수를 제공한다. 음식을 통한 힐링을 맛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최근 뜨고 있는 에코힐링이다.

메이필드호텔 한옥 돌담길


◇저무는 단풍잎을 밟아볼까 ‘남산둘레길’

서울의 단풍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남산이다. 11월 중순의 남산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마지막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남산의 단풍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남산둘레길(7.5㎞)를 걸어보는 게 좋다. 남산을 한바퀴 둘러보는 코스다. 최근 서울시가 남산의 남측 숲길을 새로 복원해 기존 북측 순환로와 연결, 남산둘레길을 완공했다. 남측 숲길은 소나무숲이 울창한 폭 1.2~2m의 좁은 산길로 조성했다.

남산둘레길은 크게 보행 전용로인 북측 순환로(3.4㎞)와 팔각정 정상에 오르는 차량·보행 겸용 남측 순환로(3.1㎞)로 나눌 수 있다. 북측 순환로는 남산의 허리를 감싸고 돌아가는 길이다. 삼순이계단 인근 3초소 입구부터 국립극장 방면 순환로 입구에 이르는 산책로다.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가능한 ‘무장애 산책로’다. 남산 1호터널에 가기 전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남산을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는데 그 한쪽에 와룡묘가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책략가 제갈공명을 기리는 사당이다. 와룡묘를 지나면 한옥으로 멋스럽게 지은 목멱산방이 나오는데 북측 순환로의 사실상 종점이다.

남측 순환로 중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명동역 1번 출구에서 N서울타워로 가는 길이다. 근처의 명소는 우선 남산도서관. 명동역 1번 출구를 나와 소파길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된다. 남산도서관에는 천문대 모양의 돔지붕이 있는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과 안중근의사기념관 등이 있다. 이곳에서 나무데크로 조성한 계단을 따라 잠두봉 포토아일랜드를 거쳐 N서울타워로 갈 수 있다. N서울타워는 남산의 정상이자 케이블카의 종착점이다. 여기서 서울의 남쪽 조망을 즐길 수 있다.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은 포토아일랜드가 있는 곳. N서울타워 주차장에서 10분쯤 내려오면 만날 수 있다. 전망이 탁 트인 곳으로 봉긋하게 솟은 N서울타워의 모습이 늦가을 붉게 물든 단풍과 함께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다.

남산 북측 순환로


◇여행메모

멀리 가지 않고 서울에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100곳의 단풍길은 서울시 홈페이지(seoul.go.kr/story/autumn)에서 찾을 수 있다. 합쳐서 176.67㎞에 이르는 길이의 이들 단풍길은 이달 중순까지 낙엽을 치우지 않는다. 시민들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면서 늦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라는 배려다. 단풍길에 몇가지 주제를 담았다. ’물을 따라 걷는 단풍길’ ‘나들이하기 좋은 단풍길’ ‘공원과 어우러지는 단풍길’ ‘산책길에 만나는 단풍길’ 등. ‘물을 따라 걷는 단풍길’은 왕벚나무와 느티나무의 단풍을 볼 수 있는 중랑천과 안양천, 홍제천 등 주로 하천 둑길에 조성된 산책로다. ‘나들이하기 좋은 단풍길’로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에 묻힌 갤러리 등을 구경할 수 있는 삼청동길, 덕수궁길, 이태원 일대를 선정했다. ‘공원과 어우러지는 단풍길’은 올림픽공원과 월드컵공원, 남산 북측 산책로 등이, ‘산책길에 만나는 단풍길’로는 관악산 입구와 서대문 안산 산책로 등을 뽑았다.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메이필드호텔 소나무정원 뒤 오솔길
메이필드호텔 한옥 돌담 오솔길
메이필드호텔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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